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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3일(현지시각) 새벽 4시. 캄보디아 남부 휴양도시 시하누크빌에 위치한 개인 주택 마당에 주차된 랜드로버 승합차 한 대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강한 폭발음을 내며 순식간에 불타버렸다. 이 고급외제차는 불과 10여분 만에 전소됐지만,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차량 소유주는 러시아 출신 부자 니콜라이 도로셴코의 아들 오스탑 도로셴코(36)로 밝혀졌다.

그의 아버지 니콜라이 도로셴코(54)는 현지 해변에 '스네이크하우스'라는 호텔 겸 레스토랑을 소유하고 있는 러시아출신 사업가로 캄보디아 시민권까지 보유한 이 지역 30년 터줏대감이다. 차주이자 아들인 오스탑 도로셴코는 외국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지방경찰청 대위다.

오스탑 도로셴코는 사건 발생 당시 이웃나라 태국에 체류 중이었는데, 그는 이번 사건이 단순 방화가 아닌, 자신의 부모를 살해하거나 또는 위협할 의도로 이루어진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 증거로 지난 1월 "'랜드로버' 차량을 끝장내겠다"는 내용이 담긴 암호화된 이메일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누가 그 이메일을 보냈는지는 분명하지 않음에도, 오스탑은 이메일을 보낸 자들로 추정되는 동일인물로부터 지난해 11월 말에도 테러공격을 당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는 현지 주요언론들을 상대로 이번 사건의 주범이 누군지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밝혔다. 그런데 그가 지목한 이름은 놀랍게도 다름 아닌 러시아 출신 재벌 세르게이 폴론스키(42)였다.

사기 치고 도망 온 러시아 재벌이 유명인사 된 이유

캄보디아 남부 휴양도시 시하누크빌 해안에서 자신의 호화유트를 타고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러시아 재벌 세르게이 폴론스키(42)
▲ 러시아 출신 괴짜 재벌 세르게이 폴론스키 캄보디아 남부 휴양도시 시하누크빌 해안에서 자신의 호화유트를 타고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러시아 재벌 세르게이 폴론스키(42)
ⓒ 폴론스키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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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굴지의 대형건설기업 미락스그룹 오너였던 그는 과거 포브스지 선정 러시아 14번째 부호(약 43억 5000만 달러)로 꼽힌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한때 러시아에서는 꽤나 잘 나가던 재벌중 한명이었지만, 지난 2007~2008년 갑작스레 찾아온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결국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후 그는 무려 1억7400만 달러가 넘는 거액의 주거단지건설 투자금 명목으로 80여명으로부터 돈을 착복한 뒤 캄보디아로 도망쳤다. 남부해안도시 시하누크빌에 정착한 후에는 10억 달러 상당의 생태관광리조트를 짓겠다고 주장해왔으며, 캄보디아 현지에서는 끊임없이 크고 작은 문제와 사건을 일으켜온 인물이다.

'거액사기횡령 후 도주한 러시아출신 재벌'이란 사실 때문에 그가 일찌감치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맞지만, 그를 캄보디아 전국구 유명인사(?)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지난 2013년 1월 발생한 '캄보디아인 선원 폭행사건'이다.

그는 당시 자신의 호화요트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선장을 감금하고, 나머지 현지인 선원 6명을 무자비하게 폭행, 칼로 위협해 이들을 바다에 빠지게 한 혐의에 불법총기류 소지죄까지 더해져 현지 교도소에서 3개월 이상 수감생활을 하다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적이 있다(관련기사 : 골칫덩어리 괴짜 졸부 감싼 대법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의문의 차량폭발사건에 대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피해자 오스탑 도로셴코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폴론스키측은 '한 마디로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범행사실 자체를 강력 부인했다. 현지 경찰조차 '용의자로 지목된 폴론스키가 본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어떠한 단서나 증거도 찾지 못했다'며 그를 옹호하는 자세를 취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 의문의 사건은 단순 미제사건으로 종결되고 만다.

하지만 그 후로도 양측간 갈등은 전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차량폭발사건의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양상으로 갈등은 번져갔다. 이번 역시 세르게이 폴론스키가 그 불을 댕겼다. 부동산관련 공문서 위조혐의로 폴론스키가 도로셴코 측을 고소한 것이다. 고소장에는 니콜라이 도로셴코가 서류를 위조해 폴론스키의 재산을 갈취 했다는 것이 기재되어 있다.

결국 이 고소사건은 니콜라이 도로셴코가 법원의 출두명령을 두 차례 거부한 끝에 공문서 위조혐의 등으로 체포, 구속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경찰 역시 범죄사실이 확인 될 경우 도로셴코가 최소 3년~8년형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언뜻 봐서는 이번만큼은 폴론스키의 확실한 승리로 끝나는 듯싶었다. 그런데 니콜라이 도로셴코는 지난달 말 항소법원 판결 끝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사이 좋던 러시아 두 재벌, 왜 이렇게 됐을까

캄보디아 작은 해안도시에 거주하는 이 러시아인들간 물러섬 없는 잦은 충돌과 다툼이 현지뉴스 사회면을 장식하며 끊임없는 뉴스거리를 제공해왔지만, 지난 2013년까지만 해서 세르게이 폴론스키와 니콜라이 도로셴코, 두 사람은 사이가 매우 좋았다고 전해진다. 도로셴코 역시 같은 러시아 출신에 나름 재력을 갖춘 사업가로, 둘은 성격상 잘 맞아 서로 의기투합하며 현지에서 공동투자사업을 벌일 계획을 하며 상호신뢰를 쌓았다고 한다.

그러던 두 사람이 갑자기 철전지 원수된 이유는 뭘까? 이는 니콜라이 도로셴코의 배신을 둘러싼 갈등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폴론스키가 이런 저런 사건에 연루되며 법정과 교도소를 오가는 틈을 이용해 도로셴코가 각종 서류와 서명을 위조해 폴론스키가 소유한 섬 등 거액의 재산을 가로챘다는 것이 폴론스키측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도로셴코측은 자신이 합법적인 방법으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폴론스키측과의 소송전도 불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왔다.

이렇듯 양측의 갈등이 첨예해진 가운데, 그동안 폴론스키는 보복차원에서 자신의 하수인들을 시켜 협박과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등 여러 차례 도로셴코측을 압박해왔다. 심지어 최근에는 양측이 폭력배들을 동원해 대리전 양상으로 크고 작은 유혈폭력사건을 일으킨 적도 있다.

결국 '러시아 마피아'로 통칭되는 폭력배들간 막장 싸움이 신문지상에 자주 오르자, 식당과 여행사를 운영하는 현지주민들은 도시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현실에 불안감을 감출 수 없게 됐다. 이에 캄보디아 정부 역시 더 이상 수수방관만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고, 도시치안과 외국인 관리에 적극대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난 4월 초 시하누크빌 주경찰청장을 전격 교체하는 조치를 취하며 수습에 나섰다.

러시아 출신 재벌 세르게이 폴론스키가 보유한 호화요트의 모습. 그는 러시아에서 1억 7천만불이라는 거액의 투자금을 사기 횡령한 후 캄보디아 시하누크빌 해안 섬 8개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러시아 재벌의 요트 러시아 출신 재벌 세르게이 폴론스키가 보유한 호화요트의 모습. 그는 러시아에서 1억 7천만불이라는 거액의 투자금을 사기 횡령한 후 캄보디아 시하누크빌 해안 섬 8개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폴론스키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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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부임한 경찰청장이 곧바로 '외국인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했고, 한동안 시끄럽고 어수선하던 이 작은 도시가 외형상만큼은 다소 진정국면에 접어드는 듯했다. 하지만 현지주민들의 예상은 달랐다. 폴론스키가 여전히 건재한 이상, 이권다툼을 둘러싼 러시아인들간 갈등이 언제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다시 발생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렇지만 불과 한 달여 후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지리라 확신하는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었다.

지난 5월 15일(현지시각) 오전, 세르게이 폴론스키가 보유한 시하누크빌 해안 별장 섬에 현지경찰 10여 명이 들이닥쳤다. 반바지차림에 웃통까지 벗은 상태에서 러시아어를 쓰는 측근 5명과 함께 전격 체포된 그는 곧바로 헬기에 실려 수도 프놈펜으로 압송됐다.

이민국에서 하룻밤 조사를 받은 폴론스키는 그 다음날인 17일 일요일 아침, 인터폴과 러시아수사당국자들에 인계돼 베트남 호치민을 경유, 모스크바행 항공편에 실려 송환됐다. 체포 직후 불과 이틀여 시간,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날 러시아 내무부는  "폴론스키가 러시아로 송환됐으며, 법에 따라 곧 기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지 언론들도 경찰당국의 말을 인용해 '비자 유효기간이 만료된 여권을 소지하고 있다가 당국에 체포돼 자국으로 추방됐다'고 보도했다. 거액의 투자금을 사기횡령으로 착복한 뒤 캄보디아로 도주 중인 이 러시아재벌의 강제본국 소환소식이 알려지자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AFP통신 등 주요외신들은 이 소식을 앞 다퉈 전 세계에 타전했다.

현지언론은 물론이고 러시아언론들도 이 사건을 매우 비중 있게 다뤘다. 대부분 전혀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송환이라 놀랐다는 반응이었다. 그동안 온갖 말썽을 저질러도. 돈으로 뭐든 해결해 그야말로 감히 손댈 수 없는 '언터처블'이란 인식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결국 러시아로 강제송환된 폴론스키

하지만 이 러시아 괴짜 재벌이 곧 러시아 본국으로 강제송환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전조(?)는 사실은 이미 두 달여 전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의문의 차량폭발사고가 나기 불과 10일여 일 전인 지난 3월 초 캄보디아 허 남홍 외무부장관이 모스크바를 전격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당시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부장관을 만났다. 회담 직후 라브로프 장관은 기자들에게 양국이 범죄인 인도조약안 작성의 최종 국면에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이후 폴론스키의 변호인인 카스파스 체코틴스 변호사가 양국간 범죄인 인도조약이 소급 적용되진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자신의 의뢰인인 폴론스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그 근거로 러시아의 강제송환 요청이 이미 캄보디아 항소법원과 대법원에서 기각됐다는 점도 지적했었다. 그렇지만 결과는 달랐다. 양국 정부가 협상을 통해 현지 대법원에서 승소판결까지 받은 러시아 재벌의 강제추방 건을 결국 '소급적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기 때문이다.

<크메르 타임즈>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현재 폴론스키가 보유한 섬은 꼬 다롱섬을 포함해 모두 8개로 알려져 있다. 현지 전문가들은 그가 가진 섬은 뿐만 아니라 호화요트와 별장 등 부동산 모두 정부가 압수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폴론스키의 본국강제송환을 지켜본 현지 국민들은 골칫덩어리였던 러시아인이 떠나 그나마 다행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현지에서 작은 서양식당을 운영하는 셍 멩(32)씨 역시 "러시아인들의 이권싸움 때문에 이 도시 이미지가 실추되었는데, 그나마 이렇게 해결되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현재, 세르게이 폴론스키는 러시아에서도 악명 높은 마트로쓰카야 티쉬 교도소에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마트로쓰카야 티쉬 교도소는 지난 1945년 생긴 이래 탈주사건이 불과 네 번 정도에 지나지 않는 곳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경계가 삼엄한 곳이다. 간수들에게 돈을 주고 호텔방처럼 생활할 수 있는 캄보디아 교도소와는 차원이 다른 곳임에 분명하다.

게다가 그는 과거처럼 수용소 안에서 인터넷을 즐기는 그런 생활은 감히 상상조차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가 종종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도구로 활용했던 페이스북에는 지난 5월 4일 이후로 더 이상 글이 올라오지 않고 있다.

갑작스런 본국 송환... 이유가 대체 뭘까

러시아 국빈 방문 선물로 러시아 재벌 폴론스키의 본국송환을 카드로 내세웠을 가능성이 높다고 현지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오는 6월 훈센총리의 러시아 국빈 방문이 성사될지 지켜볼 일이다.
▲ 캄보디아 훈센 총리 러시아 국빈 방문 선물로 러시아 재벌 폴론스키의 본국송환을 카드로 내세웠을 가능성이 높다고 현지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오는 6월 훈센총리의 러시아 국빈 방문이 성사될지 지켜볼 일이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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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재벌 세르게이 폴론스키에 대한 본국 강제송환이 급작스럽게 추진된 이유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굳이 정답을 알려고 애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직 현지 정부의 공식발표는 없지만, 캄보이다 훈센  총리가 금년 6월중 러시아를 국빈 방문할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러시아측에 마땅히 줄 만한 선물이 없는 가난한 캄보디아 입장에서는 러시아 국빈방문을 성사시키기 위해 폴론스키를 괜찮은 협상 카드내지 선물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캄보디아 훈센 총리가 굳이 러시아를 가려는 이유는 뭔지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긴다. 30년 장기집권자 훈센 총리의 외교 스타일상 뭔가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절대로 그냥 양국우호증진이라는 나들이성 외유에 나설 인물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벌써부터 다양한 짐작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중 가장 설득력이 높은 것은 역시 미국 등 서방의 공세로 판로가 막힌 러시아의 값싼 석유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캄보디아 총리의 러시아 6월 국빈방문이 실제로 성사되고, 그 대가가 석유라면, 러시아 괴짜 재벌 세르게이 폴론스키가 본국으로 급작스레 강제송환된 이유에 대한 보다 분명하고 확실한 정답이 될 것이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캄보디아, #세르게이 폴론스키, #니콜라이 도로셴코, #러시아 재벌 , #SERGEI POLON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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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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