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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재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김지수(가명)씨는 생활하는 것마저 고역이다.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해 살고 있는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의 생활비를 번다. 생활비는 학기의 시작과 관계 없이 계속해서 지출됐다.

이 때문에 학기 중에도 그는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최저 임금으로는 받는 돈은 녹록지 않았다. 돈을 아껴 빠듯하게 살고 있던 그는 예상하지 못한 이유로 돈줄이 끊겼다. 학업, 아르바이트 노동, 대외 활동 등을 하던 그의 몸은 힘겨웠는지, 병이 나고야 만 것이다. 그 달에 쓸 생활비는 병원비로 사용됐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한 달가량 쉬었다. 그러자 당장 문제가 생겼다. '생활빚'이 쌓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생활빚'은 '생활'에 있어서 '경제적 비용'이 필수적으로 필요로 하지만, '경제적 비용의 부재'상황이 발생함에 따라, 생활비가 '빚'으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특히 경제적 비용의 지속성이 불안전한 '대학생', '취준생', '비정규직' 등이 생활빚에 직면하고 있다. 생활빚의 굴레에 있는 이들은 쉽게 수면 위로 나타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생활비는 '개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점과 '적은' 돈 임에도 스스로 충당하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이 생활빚의 발생에 있어 '숨겨야 할 이유'가 되고 만다.

생활빚의 생성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 고용 불안정 등 노동 구조와 밀접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최저 임금으로는 장시간 노동을 하지 않고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어렵다. 또한 노동의 연장선이 끊어지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어(비정규직), 개개인의 '삶'과 '일상 생활'에 '경제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삶을 영유할 수 없는 노동 구조는 더더욱 개인의 삶을 '빚'의 속박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김씨는 '생활빚'에 대해 이야기하기 꺼려했다. "쪽팔린다"는 말이 먼저였다. 그는 수중에 돈이 없었다. 아팠던 탓에 아르바이트를 쉰 것이 생활비에 큰 타격을 준 것이다. 남아 있던 현금을 버스 카드 충전으로 사용하고 나니, 남는 돈이 한 푼도 없었다.

그마저도 몇 번 타지도 않았건만, 버스카드는 100원 단위로까지 곤두박질 쳐 있었다. 돈이 없으니 학교 다니는 게 당장 문제가 됐다. 김씨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T머니 앱으로 충전하면 당장 돈이 없어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핸드폰 결제'기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다음 달 핸드폰 비용에 교통비 빚도 함께 결제하기로 했다.

교통비는 어떻게 해결했지만, 삼시 세끼 배가 고픈 것은 해결하지 못했다. 배고픈 걸 참고 참아도 한 끼는 먹어야 했다. 그 때쯤 김씨에게 전화가 왔다. 은행이었다. 은행에서는 김씨가 사용하고 있는 체크카드에 30만 원 한도로 신용을 부여해 줄 수 있다고 했다. 김씨의 머리 속에는 앞으로 지출해야 할 생활비가 눈에 그려졌다. 학원비도 내야 했고, 책값도 지불해야 했다. 뭐니 뭐니 해도 배고픔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에, 체크카드에 신용한도를 부여했다. "몸이 다 낫고 나면 일을 열심히 해서 갚을 생각이었어요" 그는 그 때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은행사와 빚을 결제하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몸이 회복되고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했지만, 쉰 기간이 있어서인지, 돈이 많이 들어오지 않았다. 때 맞춰서 핸드폰 비 결제일도 다가왔다. 적은 아르바이트 비용으로 은행사와 핸드폰 비를 모두 지불할 수 없었다. 선택을 해야 했다. 김씨는 핸드폰 비를 완납하고 은행사의 빚을 다음 달로 유예하기로 결심했다. 아르바이트 비용을 그렇게 사용하자, 수중에 남는 돈이 또 없었다. 그렇다고 카드를 사용할 수도 없었다.

연체 때문에 사용이 중지됐기 때문이다. 끼니는 해결해야하기 때문에 집에서 밥을 싸오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날에는 최대한 굶었다. 굶는 것이 한계치에 도달할 때면 김씨는 편의점에 들어갔다. 그래도 빚을 줄여보기 위해 800원짜리 컵라면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다시 다음 달 핸드폰 비용에 식비를 추가해, 결제했다. "이번 달에 빚을 모두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죽어라 한다"는 그는 아르바이트에서 잘리기라도 할까 노심초사다. 짧은 기간 동안 '나의 생활'이 어떻게 '빚'이 되어 돌아오는지를 경험했기 때문이란다.

경기도 부천에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세자매가 생활고로 자살했다고 한다. 청년들의 삶, 비정규직의 삶은 '생활'하기에 힘겹다. 노동 구조는 날이 갈수록 유연해져 가는데, 학자금의 빚, 생활빚의 등 빚의 굴레는 확대되고 재생산된다. 어쩌면 이러한 사회가 이 세 자매에게 삶을 '끊어내도록' 내몰았는지도 모른다. 생활이 곧 빚이 되는 사회에서 말이다.


태그:#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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