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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성찰하랴 주린 배 채우랴 고생이 많다 얘들아
▲ 우리동네 파수꾼들 자아성찰하랴 주린 배 채우랴 고생이 많다 얘들아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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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7일. 가을이가 십 년간 신세지던 보호소를 나와 도시에 처음 발을 디딘 날이다. 세상이 이렇게 넓고 다채로운 줄 처음 안 가을은 벌름거리는 코를 멈출 수 없었다. 길은 끝없이 이어졌고 온갖 냄새를 쫓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양한 생물의 군상도 놀라웠다. 발이 많은 생물, 발보다 작은 생물, 발처럼 생긴 생물, 생물 같지만 생물 아닌 물(物)들. 인간, 특히 남자에 대한 거부감은 버림받은 기억과 관련 있는지 현재도 극복이 어렵지만 이젠 동네의 파수꾼처럼 제법 당당하게 산책에 임한다.

건물이 올라가는 공사 현장을 들여다보고 문이 열린 이웃집에 관심을 갖고, 짐을 내리는 트럭, 캐리어를 끄는 관광객, 컵볶이를 먹는 학생, 장 본 아주머니 등을 놓치지 않고 관찰한다. 물론 여느 개들처럼 꼬리를 치며 정면으로 다가가는 게 아니라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린 후 뒤에서 몰래 냄새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헤벌쭉 웃는 강아지, 골몰하는 고양이

 골목을 지나가는 중일 뿐이다!' 가을은 재빨리 길냥의 눈을 피하고 반대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골목을 지나가는 중일 뿐이다!' 가을은 재빨리 길냥의 눈을 피하고 반대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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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엔 다른 강아지들을 만나면 길을 건너서라도 코인사를 나누고 싶어 했으나 한 사나운 개에게 혼쭐이 난 이후론 기피하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바람 쐬러 나온 토끼에게도 그야말로 소 닭 보듯 했으니 외계인이 온다 한들 가을이는 궁금증을 억누르고 뒤에서만 지켜볼 것이다.

'한결 같음'은 고귀한 덕목이지만 조금의 의외성도 없다면 경상도 사투리로 '답대비', 다소 매력 없는 캐릭터이지 않을까 싶다. 초지일관으로 세상 만물에 외경심을 갖는 가을이도 비둘기에게 만큼은 임꺽정 못지 않은 용맹성을 과시한다.

날개를 펼쳐 땅으로부터 가볍게 날아오르는 구조가 신기한지, 멀리서도 비둘기 무리를 보면 반갑게 달려간다. 만면에 웃음이 가득, 뒷발의 도약이 힘차지만 근처까지 다가가 멈추는 것을 보면 사냥에서 나온 본능은 아닌 건 같다. 비둘기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겠지만.

전격 개엄마 생활 2년 3개월 차인 나는 요즘 고양이들의 두 얼굴에 푹 빠져있다. 고양이는 개와 함께 인간과 가장 가까운 포유류 'TOP5'에 들었지만 개와는 완연히 다른, 알면 알수록 진귀한 개체다.

작고 납작한 얼굴이 통과할 수 있다면 어디든 들어가는 능력부터 시작해, 평상시엔 솜사탕처럼 사랑스러운 발이지만 공격 개시의 상황에선 무시무시한 발톱을 내비치고, 그 발톱의 힘인지 벽이나 나무를 타고 내리는 능력. 또 그 네 개의 발 중 두 개의 앞발은 사람의 손처럼 자유자재로 쓰는 능력까지.

내가 생각하는 개의 이미지는 헤벌쭉 사람 좋게(?) 웃는 모습이고, 고양이는 입을 앙다물고 눈에 불을 켠 채 생각에 골몰한 모습이다. 때론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책망하듯 바라보고 있는 길고양이와 맞닥뜨리기도 하니까. 그래서인가 학계에선 개보다 고양이의 지능이 더 높다거나 고양이는 자아 성찰(!)을 한다는 설도 나오고 있단다.

작고 낮은 집이 모여 있는 동네에 살다 보니 고양이들의 재능을 원 없이 감상할 수 있다. 가을이와 산책에 나서면 기다렸다는 듯이 담벼락 위에서 '나오'하고 아는 체를 하는 치즈색 길냥이가 있다. 한 뼘 남짓 땅으로부터 서 있는 가을이에겐 하늘에서 들려오는 매혹의 소리일 것이다.

나도 발돋움을 해야 겨우 발견할 수 있는 위치에서 자릴 잡고 이제 오냐며 '나오나오'하니 말이다. 한 번은 그 애가 유독 토론회에 나온 발언자처럼 격렬하게 '나오'거리기에 무슨 요구인지 알아들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자 대문을 열고 나온 여자 분이 한숨을 쉬며 바닥에 내려놓았던 밥을 그 애 발치에 올려놔주더라.

설마 자기 코앞에 밥을 대령하라고 그리 울었던 것일까? 맞다, 그런 것이라 했다. 코앞에 들이민 밥을 먹을 땐 또 얼마나 사랑이 가득한 목소리로 나오나오 거리던지. 밥 먹으며 종알대는 계집 아이의 모습, 딱 그것이었다.

그네들이 나눠 먹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느새 나도 집 앞에 밥그릇과 물그릇을 내놓는 사람이 됐다. 규칙적으로 사료를 먹을 수 있는 고양이들은 쓰레기 봉투를 찢지 않는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들과 나의 식량을 나눠 먹는 수준이었지만 건강을 생각해서 고양이 전용 사료를 주문하게 됐다.

집안엔 가을이 때문인지 결코 들어오지 않는다
 집안엔 가을이 때문인지 결코 들어오지 않는다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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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량이 커질수록 저렴해진다는 것을 안 후론, 집에는 가을이를 위한 노견용 사료와 고양이용 대용량 사료가 두둑하게 배치돼있다. 워낙 도도한 그들이기에 밥을 먹는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다음 날 깨끗이 비운 그릇을 보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캣맘'혹은 '냥집사'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

밥 잘 먹고 아프지만 않아도 고마울 텐데 최근엔 내게 인사를 하는 녀석이 생겼다. 배는 하얗고 등은 까만 그 애는 나를 안다. 어떤 귀엽고 작은 애가 나를 안다는 것은 생각보다 대단히 설레는 일이다. 퇴근길,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끄는 찰나, '누아'하며 다가오는 고양이라니!

집에서 기다리는 흰둥 강아지도 감격이지만 골목에서 마주치는 이 아이도 무척이나 반갑다. 내 차를 알고, 내 발걸음을 알고, 내 목소리를 안다. 확실하다. 다른 사람이 오면 비호같이 숨는데 나에겐 그렇지 않다. 보석 같은 눈을 깜박이며 '누아'하는 모습에 피곤함도 잊고 후다닥 사료를 챙겨 밖으로 나가게 된다. 가을이도 나의 귀가만을 기다렸을 텐데. 하지만 침대 생활하는 가을이 보다는 그 애가 더 가혹한 상황일 테니 가을도 이해해주리라.

유기견 보호소에 대한 편견

이 까만 매력둥이와 가을이는 친하지 않다. 호기심으로 다가간 가을이를 그 애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재규어 같은 몸놀림으로 잡아채려했다. 가을은 꽁지가 빠지게 달아날 수밖에. 그 한 번의 학습으로 가을이는 고양이과 생물이 서있는 길목엔 입장조차 하려 하지 않는다. 내게는 그렇게 앙살을 부리면서 어찌 순해빠진 가을이에겐 뱀파이어처럼 이를 드러낼까? 놀라운 양면성이다.

조금 더 지켜보니 그 애는 나에게만 애교를 부린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윗집 아주머니는 '나비야'라고 불렀고 앞집 외국인 부인은 '스위리'하고 불렀으며 조신한 여학우들은 '야옹아'하며 반겼다. 때론 그 애의 '누아'하는 소리를 듣고 달려 나온 세 명의 여자가 세 개의 밥그릇을 어째야할지 난처한 웃음을 지은 적도 있다. 배고픈 다른 애들도 많으니 밥이 남을 걱정은 없다만, 뭐랄까, 그 애가 '나만의 무엇'은 아니란 생각에 아쉽기도 했다.

인간의 두 얼굴은 어떨까? '청순한 그녀가 섹시한 면도 있습디다'하는 이야기를 하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용서할 수 없는 인간의 양면성이 먼저 떠오른다. 족보며 혈통을 열심히 따져 입양해놓곤 나몰라라 버리는 잔인성, 훌륭한 보호자가 되겠다 선언해놓고 오히려 학대를 일삼는 변태성. 유기동물 보호소엔 병들고 나이든 동물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애견샵이나 전문 브리더로부터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금액을 주고 수년을 기다려야 겨우 입양이 가능한 소위 '고급 품종'도 많이 있다. 이 녀석들이 단순히 길을 잃은 거라면 차라리 다행이겠다만은, 명백히 버려진 아이들이다.

또 보호소에 제 발로 찾아와 데려가겠다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로 생각해 그냥 보낼 것 같지만, 악의 소굴로 끌고 간 결과가 되는 경우도 있다. 보호소에 걸려온 전화, 방문객에게 마냥 웃는 낯일 수가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금도 각자의 터전에서 멀쩡한 얼굴로 삶을 영위하고 있을 그들. 이면엔 생명을 그저 액세서리로 취급하고 무책임하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 추악한 면이 도사리고 있다니,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동물 유기, 학대의 기사들을 보며 오늘도 하루살이 같이 힘겨운 하루를 살아내는 동물들이 가엽다. 세 얼굴도 좋고 네 얼굴도 좋으니 약한 것들이 강건하게 살아나가길 빈다.   


태그:#가을이, #길고양이, #유기동물, #밥을주세요, #물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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