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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해서 산다고 하니 사람들은 '심심하겠다, 조용해서 글 많이 쓸 수 있어서 좋겠다'라고들 한다. 그럴 때면 대답하기 난감해서 대충 얼버무릴 때가 많다. 친구가 없으니 심심한 건 맞지만, 조용하고 혼자 있다고 해서 글이 잘 써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눈 뜨면 오늘은 무얼 하면서 알찬 시간을 보낼지를 궁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시간 맞춰서 출근하거나, 긴한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니 딱히 계획을 세울 필요는 없다.

대개의 아침 나절은 집안일과 풀을 뽑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지만 낮 동안은 절기에 따라서 정말 할 일이 없을 때가 있다. 특히 요즘 같은 하절기에는 더욱 그렇다. 하절기에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이른 아침에 일하고 한낮에는 쉬고 해거름에 다시 일터로 나간다.

귀촌한 사람들이 겪는 '귀여운' 실수

귀농이 아닌 귀촌한 사람이라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지, 얼마 전에 장성으로 귀촌한 사람들끼리 만나는 모임을 하나 만들었다며 들어오라길래 냉큼 '옛 써!'하고 한 가랑이에 두 다리 끼우고 달려갔다. 그 사람들을 만나고부터 대화할 상대가 생긴 것은 물론 배울 점도 많아졌다.

그들은 말은 귀촌인데 텃밭농사를 짓느라고 코가 석자나 빠져서 마치 귀농한 것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나이 60이 넘도록(거의 60세 이상임) 직업 일선에서 열심히 일했으니 이젠 좀 쉬어야지'하고 귀촌했는데 막상 시골에 와서 보니 심심하기도 하고 욕심이 슬슬 생기기도 한 것이다.

처음에는 토마토 5주가 다음 해에는 20주가 되고, 쌈 채소로 상추와 쑥갓만 심었다가 나중에는 채소농장을 방불케 하기도 한다. 시작은 마당이나 뒤뜰 한 귀퉁이에 손바닥만 하게 시작한 텃밭이 해가 거듭될수록 욕심 아닌 욕심이 생겨서 봄 여름 가을은 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이 모두가 일의 가늠이나 양의 가늠을 잘 못해서 생긴 사달이다. 귀촌한 사람들이 겪는 웃지 못할 귀여운 실수이기도 하다.

장흥토요시장 꼬시래기 장사 앞에 모인 사람들, 사람사는 맛이 난다
▲ 장흥토요시장 꼬시래기 장사 앞에 모인 사람들, 사람사는 맛이 난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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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귀촌한 사람들이 모이는 날. 지난달 모임에서 '장흥토요시장'구경을 가자고 했기에 이것저것 한 보따리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그 모양을 본 남편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묻는다.

"아니, 장보러 가는데 웬 짐이 이렇게 많아, 이게 다 뭐야?"
"어, 이건 콩, 이건 통밀, 이건 이것들 다 튀겨서 담을 주머니와 장 봐서 갖고 올 장바구니, 이건..."
"알았어 알았어, 하이고야, 장보기도 전에 이 짐 좀 봐! 오늘 난 죽었다."

그렇게 신바람이 나서 '장흥토요시장'으로 달려갔다. 기대를 너무 해서 그런지 장터의 크기는 그냥 그만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랜만에 들른 시골 장은 옛날과는 많이 변해 있었다.

그 첫 번째가 시장에서도 시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묵, 꼬시래기, 어묵, 젓갈 등, 먹을거리들은 거의가 맛을 보고 살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볼거리와 참여할 거리를 만들어서 상인과 손님이 한데 어우러지는 상설 무대도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디자인의 누더기를 걸치고 재미난 분장을 하고 손에는 가위를 들고 흥겹게 엿을 파는 엿장수를 볼 수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나는 엿장수의 가위 장단을 무척 좋아해서 가끔 넋을 놓고 구경할 때가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재래시장의 명물로서 한 자리매김하던 그 엿장수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배꼽잡게 만든 '엄마 빤스'

뻥튀기 고무 대야로 줄을 세웠다가 손님이 오면 할머니들이 일어서서 줄을 선다.
▲ 뻥튀기 고무 대야로 줄을 세웠다가 손님이 오면 할머니들이 일어서서 줄을 선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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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뻥튀기하는 곳을 찾아갔다. 할머니 몇 분이서 의자에 앉아서 잡담을 나누시다가 내가 들어가니 얼른 일어나서 줄을 서신다. '너의 순번은 이쯤이여'하는 무언의 질서 잡기 같은 것이랄까. 할머니들의 지혜와 센스에 또 한 번 즐거운 마음이 배가 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뻥튀기의 인기는 정말 대단하다. 순서가 먼 것 같아서 튀길 것을 맡기고 시장을 먼저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재래시장의 맛과 멋으로 빠질 수 없는 덤! 꼬시래기를 만원어치 샀더니 만원어치는 더 주는 것 같았다. 상설무대와 먹을거리 장터를 지나서 좀 더 안으로 들어가니 옷 가게가 즐비하다.

아니, 우째 이런 일이! 우리 일행은 그만 배꼽을 잡고 말았다. 땅바닥에 깔개를 깔고 그 위에 물건을 쭉 늘어놓은 어느 속옷 가게 앞. 그곳에는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어림짐작으로도 넉넉한, 105 사이즈는 족히 되어 보이는 '엄마빤스'를 펼쳐 놓고 팔고 있었다.

속옷 홍보 서울 방산시장 앞에서 본 속옷 홍보
▲ 속옷 홍보 서울 방산시장 앞에서 본 속옷 홍보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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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보는데 민망스러운 게 아니라 모두 재미있어하고 있었다. 내가 여성용 팬티를 '엄마빤스'라고 하는 데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어서다. 어느 날, 서울 방산시장 앞을 지나는데 위와 비슷한 노점상 앞에 파란 접착테이프로 땅바닥에 붙인 '엄마빤스 1000원'이라는 애교 있는 홍보지(?)를 봤던 기억이 나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본 우리 일행들의 손에는 장 본 것 외에도 웃음보따리도 한 아름씩 안고 있었다.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 올 때 야심차게 준비한 무쇠솥이 하나 있다. 근 일 년이 되도록 닦지를 못해서 못 쓰던 것이었는데 오늘은 마음 먹고 무쇠솥 길을 내 보기로 했다. 솥을 꺼냈더니 기름이 찐득하니 배어 나왔다. 녹이 시뻘겋다. 남편이 닦아서 기름을 먹였다는데도 이 모양이다.

샌드페이퍼로 녹을 닦아내고 솥과 뚜껑에 식용 콩기름을 안팎으로 잘 발랐다. 불에 올리고 바짝 구웠다. 굽는 동안 기름이 타느라 내뿜는 나쁜 연기가 목을 매케하게 했다. 얼른 피신을 했다가 연기가 안 날 때쯤 불을 끄고, 식혔다가 다시 콩기름을 바르고 굽기를 세 번 했다. 솥 안팎을 손으로 문질러 보니 파리가 낙상하도록 매끄럽고 새까맣게 잘 굽혔다. 길이 잘 난 것이다.

시험으로 당장 길 낸 솥에다 점심밥을 했다. 그저께 하고 남은 나물을 얹고 또 나물밥을 했다. 밥을 다 하고보니 전기밥솥 밥과는 비교가 안 되게 밥의 비주얼부터가 다르다. 밑에는 약간 눌었지만 누룽지가 잘 일어났다.

흠이라면 솥이 좀 무거운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불편함은 충분히 커버가 되는 매력이 있다. 다가오는 무더위에 반찬 여러 가지 하느라고 땀 뻘뻘 흘리지 마시고 나물 밥 한 번 해 드시면 어떨까 싶어서 나 나름대로 개발한 레시피를 올린다.

무쇠솥 무쇠솥에 나물밥을 했다. 반찬도 나물투성이다
▲ 무쇠솥 무쇠솥에 나물밥을 했다. 반찬도 나물투성이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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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 : 솥(아무거나, 단, 전기 압력밥솥 제외), 쌀(잡곡 포함), 집에서 음식하고 남은 채소들(뿌리채소든 잎채소든 상관없음), 들기름, 양념간장.
밥준비 : 쌀은 씻어서 불린다. 채소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밥하기 : 불린 쌀을 솥에 안쳐서 애벌 끓으면 최대한 불을 줄이고 들기름을 두른다(밥 지을 때 물의 양은, 나물에서 나올 물을 감안하여 일반 밥보다 조금 작게 잡는다). 그 위에 준비한 채소를 얹고 솥뚜껑을 덮는다. 이때 무쇠솥이 아니면 솥뚜껑 위에 무거운 사기그릇이나 깨끗한 돌 같은 것으로 솥뚜껑을 누른다. 위의 일이 다 끝나면 2~3분 후에 불을 끄고 약7분가량 뜸을 들인 후에 밥을 퍼서 양념간장과 곁들여 낸다.

이렇게 해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뒷산에 올랐다. 뒷산 비스듬한 곳에는 시부모님 산소가 있고, 그 일대는 평지인데 매실나무를 심어서 해마다 매실을 수확했다. 매실나무가 많지는 않지만 우리 식구 먹고 이웃에 인심 좀 쓸 만큼은 된다.

매실이 제법 굵었다. 올해는 '도선생'이 매실을 안 갖고 갔으면 좋겠다. 매실은 노리끼리하게 익어야 제 맛이 나기 때문에 우리는 해마다 익혀서 딴다. 그런데 작년에는 유난히 탐스럽게 크고 많이도 열렸는데,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어느 양심 없는 도선생이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다 따 가버렸다.

산 높은 곳에 서니, 멀거나 가까운 곳에 마을들이 옹기종기 정겹게 처마를 맞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참으로 평화로워 보인다. 저 집 안에 사는 사람들 마음도 행복하고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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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e-mail : ok_0926@dau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