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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나무로 진입로를 단장한 시골집
 단풍 나무로 진입로를 단장한 시골집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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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링톤 탑 국립공원(Barrington Tops National Park)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호주 시골에서 은퇴 생활을 시작한 지 1년이 되는 것을 기념해 찾아온 국립공원이다. 이 공원은 제주도 면적의 반 정도가 되는 큰 공원이며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등록돼 있다.

텐트 생활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사치스러울 정도의 리조트에서 아침을 맞는다.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다. 그러나 전날 밤보다는 빗줄기가 약하다. 베란다에 나가 신선한 공기에 온몸을 맡긴다. 빗소리와 새소리만 들리는 산속에서 맞는 신선한 아침이다. 마음도 신선해 지는 것 같다. 모든 사람과 웃으며 지낼 자신감이 생긴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것임을 새삼 생각한다.  

간단한 아침을 끝내고 40여 킬로미터 떨어진 윌리엄즈 강(Willams River)이 있는 산책로를 찾아 나선다. 비포장도로는 아니지만 도로가 좁고 많이 파여 있다. 전날과 다름없이 소들은 비를 맞으며 들판에서 서성대고 있다. 비가 흩날리는 길에는 자동차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20여 분쯤 운전하니 열 채쯤 되는 집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는 동네가 나온다. 단풍나무가 많은 동네다. 곱게 든 단풍도 있지만 아직 단풍이 들지 않은 나무가 더 많다. 한국과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에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국립공원에 들어선다. 비포장도로다. 조금 들어가니 주차장이 나온다. 비가 오는 날이라 그런지 조용하다. 안내판에 90분 정도 걸린다는 산책길을 골라 걷는다. 커다란 우산 하나로 옷을 적실만큼 오는 비를 가리며 걷다 보니 30미터 정도 되는 제법 큰 다리가 나온다. 다리 아래 계곡에는 많은 양의 물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용트림을 한다. 이곳까지는 휠체어도 올 수 있도록 길을 잘 포장해 놓았다. 신체적으로 어려운 사람에 대한 배려를 산골짝에서 느낀다.

다리를 지나 좁은 산책길을 걷는다. 숲이 우거진 산책길이라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비가 와서 일까, 모든 식물이 싱싱하다. 빗물을 머금은 푸른 이끼가 아름답다.

산책길에 한 마리 야생 칠면조가 길을 가로막는다. 우리를 보고도 놀라지 않으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앞서 가다가 산속으로 들어간다. 대낮임에도 안개 때문에 산속 풍경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산책길을 사진도 찍으며 천천히 걷는다. 예정 시간 보다 30분 이상 걸려 산책을 마친다. '느림의 미학?' 어디서 들었던 구절이 생각난다.

산책길에서 만난 귀여운 버섯
 산책길에서 만난 귀여운 버섯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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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도착해 젖은 신발을 벗는데 양말이 피에 젖어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거머리가 붙어 있다. 아내도 발목에 거머리가 있다며 떼어낸다. 잘 떨어지지 않는다. 간신히 종아리에서 떼어내면 떼어낸 손에 거머리가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거머리 같다는 표현이 무엇인가를 실감하며 작은 소동을 끝낸다.

간단한 점심을 끝내고 다른 산책로를 찾아나선다. 숙소에서 가까운 산책로다. 왔던 길을 우회해서 운전하며 주위 환경을 즐긴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곳이 있는가 하면 가끔 햇빛이 비치는 맑은 하늘이 보이기도 한다. 높은 산이 많아 구름이 걸리기 때문일 것이다.

변덕스러운 날씨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운전하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제법 넓은 주차장도 있고 깨끗한 바비큐장과 묵직한 나무로 만든 식탁 서너 개가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예루살렘 계곡(Jerusalem Creek)이라는 장소다.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다. 예루살렘에 이러한 계곡이 있을까?

비가 흩뿌리는 산책길을 걷는다. 거머리가 들어오지 못하게 양말 속에 바지를 집어넣었다. 거머리를 조심하며 산책길을 내려간다. 이곳에도 짙은 안개가 주위를 맴돈다. 조금 내려가니 물소리가 요란하다.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 보니 거대한 물줄기가 가파른 계곡을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사진을 찍어 보지만 안개 속이라 그런지 만족할만한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

내려가서 보면 더 웅장할 것 같아 내려가는데 길이 막혀 있다. 며칠 전에 온 큰 비 때문에 산책로를 차단한 것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주차장으로 돌아와 혹시나 해서 신발을 벗고 거머리를 찾아본다. 아니나 다를까 짧은 양말을 신었던 아내 종아리에 거머리 한 마리가 피를 빨고 있다. 나도 신발을 벗으니 신발 사이에 거머리 두 마리가 진을 치고 있다. 비가 많이 내리고 습기가 많아 거머리가 평소보다 더 극성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도 없고 휴대전화도 연결 안 되는 산속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향한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해도 집보다는 불편하다. 그래도 가끔은 삶에 변화를 주고 싶다. 삶의 변화, 얼마나 매력적인 말인가!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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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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