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연휴에 새벽기차를 타고 딸아이와 좀 먼 곳으로 여행을 갔다. 남해 여행이었다. 아이와 함께 보리암까지 헉헉거리며 올라 두 손 합장해서 기도하고, 다랭이 마을 아래로 내려가서 유자막걸리를 마시며 가슴 속에 묵혀뒀던 이야기도 풀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린 탓에 돌아오는 길이 막혔다. 예약했던 표를 취소하고 2시간 더 늦은 오후 8시 차표를 사서 진주역에서 승차했다.

항상 정확한 시간에 출발한 대신 안내방송이 나온다.

"차량 점검문제로 약간 출발이 늦어지겠습니다."

약간이라... 얼마일까...? 10분가량 늦게 출발하였는데 5분도 못 가서 다시 정차하였다. 이번에는 안내방송이 없다. 그러다 갑자기 암흑같은 정전이다. 정전인데도 아무 방송이 없다. 다행히 암흑같은 정전은 20~30초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다시 불이 켜졌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출발하였다. 갑자기 딸과 나는 조바심이 났다. 출발하는 기차의 속도가 빠르지 않았고 우리는 대전역에 내려서 환승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제때 도착하지 않으면 차를 못 타기 때문이다.

기차가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앞의 안내 영상 티비에서 자막이 나왔다. "점검하느라 잠시 정차하겠습니다." 딸이 말했다." 엄마! 이 열차 손발이 안 맞네~! 아까 정차할때는 자막이 안 나왔는데 지금 달리고 있는데 정차했다는 자막이 나오잖아!"

기차는 다시 멈추었다. 그리고 안내방송이 나왔다. 차량에 문제가 있어 다른 열차를 준비했으니 바꾸어 타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짐을 챙겨 우르르 몰려나와 대기하고 있는 다른 열차에 탔다. 차는 출발했지만 기차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바꾸어 타게 해서 죄송하다든지, 그러한 사과방송도 없었다.

우리의 관심은 이 열차가 우리가 환승할 역인 대전역에 제 시간안에 무사히 도착하느냐는 것이었는데 이미 두 번의 정차와 차량의 교환승차로 불가능할 것 같아 예약한 표를 취소했다. 대전역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기차 안에서 편하게 있지 못했다. 왜냐하면, 기차가 바뀌다 보니, 역마다 새로 타는 승객들이 들고 있는 좌석 표와 좌석이 일치하지 않았다. 승무원들은 왔다 갔다 하며 빈 좌석을 배정하느라 바빴다.

환승역인 대전역에 도착했다. 예매했던 기차표는 취소하고 30분 뒤 기차표를 샀다. 밤 11시가 지나고 원래 계획보다 늦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더 피곤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기차를 놓칠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실소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탄 기차가 20~30분 연착이면 그 다음 기차들도 자동 연착이라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조금만 더 세심했다면 굳이 표를 바꾸지 않고 더 기다라지 않아도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내가 피곤을 느낀 건 출발하기 전에 미리 점검을 완벽하게 해서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았던 열차 때문이었다. 더구나 나를 이렇듯 피곤하게 만든 건, 비싼 요금을 내고 타야 하는 KTX였다.

아이가 말했다.

"엄마! 어떻게 무궁화도 아니고 고속전철이 이럴 수가 있어? 이런 것 처음봤어."
"너한테는 처음이지만 아마도 우리가 불편해도 참고 그냥 타고 온 것처럼, 수도 없이 크고 작은 많은 착오들이 고속전철에 자주 일어났을 터이고 그래서 지금도 일어나고있는 거겠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는 귀가길... 정차보다도 더 깜짝 놀랐던 것은 고속전철 안에서의 암흑같은 정전이었다. 자정이 넘어 무사히 집에 와서 어젯밤은 아무 생각없이 그냥 잠을 잤지만 오늘 되새겨보니 어이없는 일이었다. 차비가 아까웠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 어이없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에도 장거리이동을 할 때 고속전철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태그:#케이티엑스의 불편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삶과의 소통 그리고 숨 고르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