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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동성애를 배척하는 게 옳을까. 혹자는 자신이 보기 불편하고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혐오스럽다며 동성애자를 살해한 범인을, 그의 감정을 고려해 감형시킨 사례도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상'의 반대말은 집단적 사고를 수반하며 변모했다. 이는 '흔치 않다'는 말이 됐고, 바람직하지 않다는 관념이 됐다. '정상'적 범주 안에 들어야만 적절하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부지런히 따라가지 않으면 수치스럽거나 나쁘다고 치부된다. 정녕 옳게 가고 있는가.

유사 이래 특정한 혐오의 속성들은 반복적이고 변함없이 일정한 집단들과 결부되어 왔으며, 실제로 그들에게 투영되어 왔다. 특권을 지닌 집단들은 이들을 통해 자신들의 보다 우월한 인간적 지위를 명백히 하려고 한 것이다. 유대인, 여성, 동성애자, 불가촉천민, 하층 계급 사람들은 모두 육신의 오물로 더럽혀진 존재로 상상되었다. - <혐오와 수치심>에서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혐오와 수치심>
▲ 책표지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혐오와 수치심>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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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카고대학 로스쿨의 마사 너스바움 교수는 <혐오와 수치심>을 통해 어떤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에 대해 얘기한다. 그의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법에 '분노와 두려움'은 넣되 '혐오와 수치심'은 빼자"가 된다.

법에 '분노와 두려움'은 넣어라

그는 '감정을 배제한 법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다만 각각의 감정이 가지고 있는 인지적 내용을 신중히 살펴 법적 근거를 검토해보자며 이를 책에서 구현한다. 700쪽에 이르는 장대한 분량을 온전히 그 주장에 할애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동물'에서 출발한 논의는 스토아 철학자들과 공리주의를 거치며 역사적 함의를 추적한다. 결국 모든 인간의 평등한 존엄성을 존중하는 자유주의 사회는 우리 모두가 너무나 불완전하고 취약한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단 결론에 이른다. 그렇기 때문에 법에서 '분노와 두려움', 그리고 '혐오와 수치심'은 엄격한 구분이 필요하다.

저자는 폭행에 대한 분노나 자신의 생명이나 평판에 해를 끼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타당하다고 여긴다. 이런 감정은 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형사소송의 양형 단계에서 무분별한 동정심에 기초하여서는 안 되지만, '모든' 동정심을 배제하는 결정을 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수치심은 자신이 약하고 불충분하다는 깨달음을 수반하는 고통스러운 감정이므로 수치심 주기는 '당신은 결함을 지닌 사람'이라고 표명하는 것이다. 지배적인 집단은 그들의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별하고 비정상인들로 이루어진 집단을 대상화한다. 따라서 수치심은 사회 구성원을 서열화하는 작용을 한다. -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혐오와 수치심> '추천사'에서

이분법적 사고를 만드는 '혐오와 수치심'

그러나 저자는 공적 판단의 근거로써 '혐오와 수치심'은 배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감정들은 인간의 근원적인 나약함을 숨기기 위한 욕구가 수반되며, 타자를 배척하기 위해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이어 약자와 소수자를 짓밟고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자들의 부당한 논리로 확대 재생산될 수 있단 우려를 표했다.

단순히 공정한 '경쟁'을 하는 사회는 개인이 느끼는 무력감을 완화시켜 줄 수 없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선택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제공하는 사회,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이나 경쟁 자체를 할 수 없는 사람도 적절한 삶의 기회를 얻고 존중받는 사회, 가난·장애·성적 취향 때문에 수치심을 겪지 않는 사회에서만 개인이 지닌 공격성은 줄어들 수 있다. - <혐오와 수치심> '해제'에서

민주주의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의 토대에 선다. 민주주의에서의 평등한 대화는 서로의 문제를 비난하기보단 스스로의 오류 가능성과 부족함을 인정할 때만이 가능하다. 인간의 취약함을 받아드린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잘못에는 분노하되, 자신도 그럴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스스로 경계한다는 의미다.

완벽한단 착각을 버리고 자신 또한 많은 불완전함을 안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고귀함과 연약함이 공존하는 그 자체로의 인간을 바라볼 수 있다. 사회 속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인 사람의 처지가 곧 나와 내가 아끼는 사람의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법과 정치의 영역에서 '인간성'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함을 이토록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책은 드물다. 학술성 저서가 가지는 특유의 딱딱함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이라면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저작이다.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법이다.

덧붙이는 글 | <혐오와 수치심> (마사 너스바움 지음 / 조계원 옮김 / 민음사 펴냄 / 2015.03 / 3만3000원)



혐오와 수치심 -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마사 너스바움 지음, 조계원 옮김, 민음사(2015)


태그:#혐오와 수치심, #마사 너스바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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