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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신기한 우리 반
 어쨌든 신기한 우리 반
ⓒ 고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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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여러분이 우리 교실에 들어서면, 아이들 표현처럼 "신기하게도" 일반 교실과는 다른 점을 금방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교실에서는 보통의 교실들처럼 책상들이 나를 향해 바라보고 있지 않다. 항상 4~5명씩 모둠을 만들어 친구끼리 서로 마주 바라보며 앉아 있다. 수업 활동에서, 일상생활 속에서 서로의 생각을 듣고 공유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조정해가며 정제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격이나 생각의 속도, 깊이, 범위까지도 다른 아이들끼리 뭉쳐서 모둠활동을 해쳐나가는 일은 분명 쉽지 않다. 어른들에게도 물론 어려운 일이겠지만,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아이들의 모둠에 대한 불평과 불만은 항상 멈출 틈이 없다. 모둠을 바꿔 주지 않으면 지각하겠다는 귀여운 협박부터 모둠에서 사용한 가위는 도대체 누가 가져다 놓을 것인지와 같은 사소한 다툼까지 아주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단연 가장 많이 듣는 불만은 "선생님, 얘는 모둠활동 참여 안 해요!"다. 하루에 적어도 한 번쯤은 듣는 불평이다. 꼭 내 귀로 들어오지 않더라도 교실을 스윽하고 둘러보면, 자주 눈에 띄는 부분이다. 이 문제 상황은 해결해주기에도, 그냥 알아서 해보도록 놔버리기에도 애매하다. 때로는 모둠활동을 주도하는 아이들의 엇나간 욕심이 문제가 되기도 하고, 때론 '난 안 해도 된다'는 식의 상관없다는 태도가 문제로 나타나기도 한다.

처음 모둠에 대한 불만들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나는 꽤나 침착했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기도 했고, 그런 갈등의 과정이 곧 모둠활동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둠활동이 아이들의 배움에 도움을 주고 있냐'는 스스로의 물음에도 나는 망설임 없이 "네"라고 답했다. 그러나 우리의 교실 상황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렀다.

"남자 셋 너희들, 밖으로 나와보세요. 영어 시간에 너희들 모둠활동에 전혀 참여 안 했다면서? 맞아?"
"처음에는 참여하다가… 나중에는 안 했어요."
"왜?"
"여자 둘이서만 마음대로 하고 우리 의견은 안 받아줘서요."
"저는 생각하고 있는데 빨리 안 하면 넘어가겠다고 해서요."
"그래? 알겠어. 3모둠 여자애들도 밖으로 잠깐 나와보세요. 남자 친구들이 자기네 의견은 받아주지 않았다는데, 맞아?"
"그건 맞는데요, 얘네는요. 너무 늦게 해요."
"그리고요, 우리 의견에 반대만 하는데요. 그럼 다른 의견 내놓으라고 해도 안 해요."
"아무 의견도 없이 그냥 그건 안 된대요."

1교시 영어 전담시간에 3모둠에서 벌어진, 모둠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는 남자 아이들과 둘이서만 모둠활동을 진행해버렸다는 여자 아이들 간의 갈등이었다. 처음 벌어진 일도 아니었다. 난 갈라서 버린 두 입장을 중재해줄 수가 없었다.

아니 도대체 누구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자기 의견을 내보이고 싶었던 남자 아이들? 아니면, 어떻게든 모둠활동을 마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었던 여자 아이들? 나는 이 물음에 도저히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서로 이해해보자는 식상한 말로 언제나처럼 아이들을 교실로 돌려보냈지만, 난 전혀 개운하지 않았다.

모둠활동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아주 간단한 이유

계속 발생하는 불만들은, '점점 나아지겠지. 처음에는 누구나 어려운 법이니까'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던 나의 생각에 물음표를 던졌다. 담임선생님으로서 중요한 결단을 내릴 시기였다. 내가 우리 교실에서 모둠활동을 왜 하고 있는지조차 흔들리고 있었다. 서로 배려하고 협동하면서 생각을 모아보라고, 그게 모둠활동을 하는 이유라고 아이들을 다독이지만, 그뿐이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난 다시 나 자신에게 되물었다. 과연 모둠활동이 아이들의 배움에 도움이 되고 있는가? 나의 대답은 분명 '아니오'였다.

아이들의 모둠활동에서는 내가 기대한 개개의 생각들을 모아 조정하고 정제하는 일련의 과정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억지로 생각을 모아보라고 하면, 모둠 안에서의 아이들은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거수투표로 모둠원들 중의 하나의 생각을 선택하기에도 바빴다. 분명, 내가 모둠활동을 통해 얻으려고 했던 '생각을 공유하고 조정해 나가는 과정'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었다.

그 무렵 난 '배움의 공동체' 연수에 참여했다. 이 연수 과정 속에서 기대하지도 않았던, 방향을 잃어버린 내 교실의 진짜 해답을 우연히 찾을 수 있었다. 분명 배움의 공동체에서 지향하는 수업의 뱡향은 나의 교실처럼 소집단 활동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수업과는 다르게 절대 모둠 안에서 '통일된 생각'을 요구하지 않았다. 단지 소집단에서의 아이들은 서로 생각을 나누고 질문하는 활동만을 하고 있었다. 모둠활동의 결과물들은 모두 개개인이 독립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왜 나는 이 간단한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을까. 사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남들과는 완전히 다르고 남들과 생각하는 속도도 다르다는 것은 내가 이미 알고 있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짧은 시간 안에(보통 10분에서 15분 정도밖에 주지 못한다) 모둠원 각자의 생각을 하나의 생각으로 통일시키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그 의미도 찾기 힘들다. 난 이 아주 간단한 사실을 모둠활동이라는 허울 아래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모둠에서 만들어낸 하나의 깔끔한 결과물을 보며 나는 '성공'을 생각했지만, 결국 '실패'한 것임을 깨달았다. 이것은 결코 내가 바랐던 통일된 생각이 아니다. 단지 '누군가'의 생각은 포기되고 희생되어 만들어진 가짜 생각일 뿐인 것이다. 아이들이 통일된 생각을 만들기 위해 투표나 가위바위보를 이용했던 것처럼 말이다. 통일된 생각을 만들기 위해 확보되어야 할, 생각을 나눌 충분한 시간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다.

모둠활동을 거부하거나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했던 아이들은 어쩌면, 가장 솔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그저 당연한 의사표현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난 이런 의견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저 의견과 생각이 다수의 의견이니까, 혹은 가위바위보에서 패했으니까 선택해서 따르라니. 아이들이 모둠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나라도 모둠활동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뚝하고 떨어져 나갈 것 같은데 말이다.

결국 모둠이 진짜 해야 할 역할은 통일된 생각을 만들어내어 겉보기에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조정하고 정제할 수 있도록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질문하는 자유로운 이야기의 '장'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통일'을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생각이 자란다

연수를 들은 후 맞이한 새로운 월요일. 난 내가 연수 전 미리 준비했던 모든 수업들을 깔끔하게 포기하고 새로운 생각으로 다시 구성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모둠은 하나의 생각을 만드는 공간이 아닌 그저 서로의 생각을 듣고 말할 수 있는 장소였다. 아직은 아이들이 새로운 모둠활동의 방향에 적응하지 못한 탓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모둠활동이 되는 곳도 있었지만 몇 모둠에서는 시끌시끌하게 각자의 의견과 생각들이 충돌되며 조정되는 과정들을 볼 수 있었다. 그 과정들은 더 이상 소음이 아니었다.

문제의 대화 상황을 보고 정부가 경제활동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제안해 봅시다.
병원 사장 : 아니, 돈도 없으면서 무슨 치료를 받겠다는 거야?
환자 보호자 : 아이고, 저희는 먹고살 돈도 없습니다. 제발, 저희 어머니 좀 살려주세요.
병원 사장 : 치료를 받으려면 정당하게 돈을 가져오란 말이야!

"와아, 이 병원 사장님 지인짜 못됐네."
"근데, 병원 사장님도 돈 벌어야 되지 않아?"
"그래도 병원에 찾아온 환자들은 치료해줘야지."
"그럼 막 환자들이 여기는 공짜로 치료해준다고 계속 찾아오면 어떻게 해?"
"크크크크, 그럼 망하겠다. 그 병원. 어떡하냐?"
"아, 그럼 정부에서 그런 사람들한테 돈을 좀 주면 되겠다!"
"오 좋은 생각이다. 근데, 정부에서 공짜로 치료해주는 병원을 만들면 될 꺼 같은데?"

두 아이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한 친구는 '정부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를 위해 돈을 지원해주기'로, 한 친구는 '정부에서 공짜 병원을 만들기'로 제안했다. 둘은 분명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조정하였다. 서로의 결론은 달랐지만, 자신의 생각은 모둠 안에서 벌어진 활발한 생각의 공유를 통해서 보다 정제된 결과물로 나타났다.

만약 내가 이전처럼 모둠 안의 통일된 생각을 강요했다면, 모둠 안에서 아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어땠을까? 다시금 교실의 기틀을 만드는 교사의 생각과 고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게 되는 시간이다. 더불어 교사가 스스로 맞다고 생각한 생각과 고민의 결과에도 지속적인 반성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다시 마음에 새긴다.

○ 편집ㅣ최규화 기자

덧붙이는 글 | 2015년 3월 2일부터 시작된 신규 교사의 생존기를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태그:#초등학교,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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