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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밴드들은 '어떤 장르를 하는 밴드냐'는 질문에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 대중음악 전반에 흐르는 장르 파괴에 대한 기조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밴드를 구성하고 사람들 앞에 기타와 드럼 등의 악기를 놓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장르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무성의한 것은 아닌가?

본 기자는 마음속으로 '비겁한 일'이라고 규정지어 왔다. '이것저것 한다'는 말은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해온 데에서 연유한 규정이었다. 자신의 음악활동에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다면 장르를 정해 '이런 노래를 하겠노라'고 밝히는 것이 소위 장인정신과 같은 음악적 자존심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마음속 규정은 인디밴드들을 많이 만나면서도 해결되지 않고 응어리져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사실은 우리가 비겁해서 그래요", 혹은 "원래 음악은 정해진 것이 없는 것이에요. 솔직히 아무렇게나 끼워 맞춰도 듣기만 좋다면 상관없는 일이죠"와 같은 고백을 듣게 될까 두려워 섣불리 그 질문을 꺼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런 대답을 듣는다면 지금까지 인디밴드들을 만나면서 느껴왔던 행복한 순간들이 무의미에 가까운 유희 정도로 느껴질 듯했다.

하지만 이대로 무의미할 수도 있는 취재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궁금증을 풀고 여기서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7년 동안 인디밴드로 노래해온 이지에프엠을 만나 그 물음을 던졌다. 또한 밴드를 오랫동안 유지해온 과정과 새로 시작하는 밴드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는 지난 18일 오후 7시, 서울 홍대 인근의 연습실에서 진행되었다. 인터뷰에 응해준 인디밴드 이지에프엠은 리더인 드럼 소올(최소올, 31), 기타 깜(이호영, 39), 보컬 이리(이주연, 30), 베이스 선재(김선재, 30)로 구성된 혼성 4인조 록밴드이다. 대표곡으로는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OST 삽입곡인 <아니야> 등이 있다.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잡고 있는 이지에프엠
▲ 인디밴드 이지에프엠 합주실에서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잡고 있는 이지에프엠
ⓒ 이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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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밴드들이 장르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여러 밴드를 만나왔지만 '이런 장르를 합니다'라고 명확히 말한 밴드는 펑크밴드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그건 좀 비겁한 대답처럼 들렸어요. 장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거나 자신들의 음악에 자신감이 없으니까 이것저것 한다는 말로 넘기는 것 아닌가 한 것이죠. 이지에프엠이 생각하는 장르에 대한 생각을 말해주세요.
깜 : "그 부분에서는 제가 답변을 하겠습니다. 답변이라고 하기엔 좀 무겁지만. 지금 이 팀에 한정 짓는다면 음악을 시작할 때 어떤 장르가 좋아서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음악이 좋았고 이 팀이 좋았고. 물론 자신들만의 색깔을 확실히 내세우고 그 색깔을 지켜가는 팀들의 노래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저희(여러 장르를 하는 팀)도 색깔을 못 찾았다거나 이것저것 던져보자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만의 색깔은 장르적 특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저희 음악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올 : "장르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장르를 고집하는 것 말고 다른 길을 찾은 것이죠. 저는 '음악에 무조건 올인이야'라고 말하면서 모두를 걸고 음악에 온 힘을 쏟을 거라는 식의 천재 음악가 같은 말을 하는 것은 저에게는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인생에서 음악이 빠지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죠. 음악을 하는 것이지 특정 장르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도 있는 것 같고 그런 활동도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혹시 계획하고 있는 활동이 있나요?
깜 : "사실 지금 세상이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왜곡된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잖아요. 각자 SNS 등을 통해서 비판을 하기도 하고 관련 행사에서 참여를 해달라고 요구해오면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우리가 나서지는 못하고 있지만 요구가 올 때는 망설임 없이 참여를 하는 편입니다."

소올 : "더 많은 일을 하고 싶기도 하고 모금이나 공연 등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저희 힘이 너무 미약한 것이 현실적인 한계입니다. 적어도 저희 주변 사람들은 돕고 싶다 하고 마음을 먹기에도 부족한 힘입니다. SNS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쓰지만 거의 아무런 파장이 없죠.(웃음) 현실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런 일이 있으면 참여하려고 노력합니다.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재 : "저도 동감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죠. 하지만 다양한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념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가운데서 싸우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내가 맞다고 여기면서 자신의 신념만 내세우는 것은 아집이라고 생각해요."

- 7년간 밴드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 같은데 기억나는 우여곡절이 있었다면?
소올 : "무엇보다 멤버가 교체되는 일이 힘들었죠. 보통은 음악을 하는 데 있어서 겪는 온도와 속도 차이가 문제가 되어서 우여곡절이 생겼던 것 같아요. '열심히 한다'라는 말의 정도가 달라서 싸우기도 했죠. 그것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더 어렸을 때는 잘 알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리고 소통의 문제도 컸던 것 같아요. 말이 전해지면서 다른 의미가 되기도 하고요. 정작 공연이나 장르 같은 문제로 싸운 적은 거의 없어요."

인터뷰 중 연주를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이지에프엠 멤버들
▲ 인디밴드 이지에프엠 합주실에서 인터뷰 중 연주를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이지에프엠 멤버들
ⓒ 이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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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생각하기에는 음악에 대한 견해 차이로 싸우는 일이 많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 봐요? 예를 들어 내가 써온 곡을 두고 좋네 마네 하는 것은 기분이 상할 수 있잖아요?
소올 : "만약에 개인적인 음악활동을 하고 자신의 음악을 내놓았는데 그것을 가지고 가타부타 떠든다면 당연히 화가 나겠죠. 하지만 어차피 이지에프엠의 음악을 만든 거라면 이리가 보컬을 하고 기타는 깜, 이렇게 각자가 정해진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내놓은 곡이라고 해도 팀이 만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죠."

선재 : "사실 음악적인 견해 차이로 화를 내고 자신의 생각을 고집한다는 것은 그것부터가 아집이라고 생각해요. 엄밀히 말해 음악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죠. 그리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다 보면 좋은 것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리 : "맞아요. 음악을 하기 위해 의견을 나누면 혼자 만들어서 내놓을 때보다 나빠지는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소올 : "오히려 그래서 애초에 빈 곳이 많은 곡을 가져 오기도 합니다. 서로 조율을 해가면서 만들어가는 것이죠. 빨리 좋은 곡을 만들어내면 뭐 가장 좋겠지만 만약에 일주일 만에 만들어야 할 곡을 한 달 후에 만들어도 화는 안 나요.(웃음)"

- 마지막으로 지금 밴드를 시작하는 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선재 : "감히 저희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웃음) 전에 청소년 음악회에 초청되서 나간 적이 있었어요. 아이들이 막 환호도 하고 음악계에 발을 들이려고 하는 아이들은 '언니 너무 멋있어요. 저도 언니 같은 연주자가 될 거에요' 이런 말을 하는 경우도 있었죠. 그런데 공연이 다 끝나고 아이들에게 한마디씩 써달라고 했을 때 '얘들아 밴드 하지마 돈 못 벌어. 내가 너희의 미래다'라고 썼어요.(웃음)

저에게 음악은 놀이에요. 이들(멤버)은 저와 놀아주는 친구들이고요. 음악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음악을 업으로 삼는 것은 생각을 많이 해봐야 하겠죠. 음악은 저에게 14년째 하고 있는 유희에요.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것이고요. 수도 없이 좌절하실 거에요. 하지만 그것에 너무 심각한 고민은 하지마시고 즐기면서 했으면 좋겠어요."

소올 : "제가 어렸을 때는 꼬마 천재들을 보면서 질투가 나기도 하고 조바심이 나기도 했어요. 세상에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넘쳐나는 것에도 위화감이 생겼죠. 하지만 오히려 어렸을 때 특출하게 재능을 드러낸 사람은 1%도 안 될 뿐더러 아예 다른 세계로 빠져나가거나 결국에 현실에 적응하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 부분은 이미 제가 속한 세상이 아닌 것이죠. 그런 곳에 비교하기보다는 자기 세계를 차근차근이라도 해낼 수 있다면, 그래서 꾸준히만 해나갈 수 있다면 좋은 음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겉멋만 들어가지고 음악이라는 핑계로 현실도피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량짓 한다고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리 : "제 생각을 앞에서 다 말해주셨어요.(웃음) 누군가와 비교해서 자신을 평가하지 말았으면 해요. 기술적인 부분으로 자신을 혹사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

깜 : "세상에서 정해진 시스템에 못 들어간다고 그것에 대해 너무 얽매이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꼭 엘리트 코스를 밟지 못한다고 해도 음악은 할 수 있거든요. 우리나라가 특히 결과주의적이고, 입시에 목매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사회인 것 같아요. 완성해나갈 수 있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덧붙이는 글 | 한국뉴스투데이에 중복게재, 팟캐스트 방송 '이기자의 거북이뉴스- 들리는 취재'에 인터뷰 전문 업로드 함.



태그:#인디밴드, #이지에프엠, #신사의 품격 OST,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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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터넷 언론의 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세월호사건에 함구하고 오보를 일삼는 주류언론을 보고 기자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로 찾아가는 인터뷰 기사를 쓰고 있으며 취재를 위한 기반을 스스로 마련 하고 있습니다. 문화와 정치, 사회를 접목한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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