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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이라 한산한 캠핑장. 어머니와 처음으로 온 캠핑을 위해 텐트를 쳤다.
▲ 학암포오토캠핑장 평일이라 한산한 캠핑장. 어머니와 처음으로 온 캠핑을 위해 텐트를 쳤다.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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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에서 1시간여 시골길을 달려 도착한 '학암포 오토캠핑장'. 학암포는 태안해안국립공원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곳이다. 학암포에 있는 학암포 오토캠핑장은 '국립공원 야영장'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사설 캠핑장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시설도 깨끗하게 잘 관리되고 있었다.

학암포에 도착해서 사이트를 구축하고 나니 5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직 저녁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라 캠핑장 주변에 산책을 나갔다. 서해에 왔으면 꼭 봐줘야 하는 것이 '일몰'이라 시간 맞춰 해가 넘어가는 바다를 구경하고 돌아와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다.

태안해안국립공원에 있는 '해변길'코스 중 제 1코스인 '바라길'
▲ 바라길 태안해안국립공원에 있는 '해변길'코스 중 제 1코스인 '바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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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해안 국립공원에는 '해변길' 코스들이 있다. 제주에 올레길처럼 여러 코스로 나누어져 걷기 좋은 길을 지정해두고 있는데 학암포 오토캠핑장 입구 바로 맞은편이 제1코스인 '바라길'의 시작점이다. 학암포를 시작으로 남쪽으로 나려가면서 소원길, 파도길, 솔모랫길, 천사길, 샛별길, 바람길이 이어진다.

1개 코스당 수 킬로미터의 거리이기 때문에 허리가 안 좋으신 어머니와 코스를 완주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래서 길의 느낌만 보기 위해 바라길을 잠시 걸었다. 학암포 오토캠핑장에서 시작해서 사구습지까지 이어지는 바라길의 일부를 걸었는데, 산에 올라가지 않고도 산림욕을 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 멋진 길이었다.

학암포의 일몰. 구름때문에 일몰의 모습이 가려져 아쉬웠다.
▲ 학암포해수욕장 학암포의 일몰. 구름때문에 일몰의 모습이 가려져 아쉬웠다.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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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길을 걷다가 캠핑장 쪽으로 돌아나와 반대편에 있는 '학암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시간이 7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라 '일몰'을 보기 위해서다. 학암포 해수욕장은 아주 고운 모래 백사장으로 유명하다. 백사장에 도착해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백사장을 잠시 걸었는데 고운 모래의 느낌이 아주 좋았다.

학암포 해수욕장에서 보이는 작은 섬인 '소분점도' 옆으로 해가 넘어가는 멋진 광경을 감상하려고 잔뜩 기대를 했는데 애석한 구름들 때문에 수평선 너머로 해가 넘어가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그 대신 수평선 주변에 낀 구름들 사이로 학암포의 태양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도 꽤 괜찮은 느낌이었다.

안면도 꽃게를 넣고 끓인 꽃게라면
▲ 꽃게라면 안면도 꽃게를 넣고 끓인 꽃게라면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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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을 보고 캠핑장으로 돌아와 오늘의 저녁 만찬을 준비했다. 집에서는 손 하나 까딱 하지 않고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만 받아 먹는 '못난 아들'이 오늘은 솜씨를 좀 발휘해보고자 어머니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했다.

안면도 가는 길에 홍성에서 산 '홍성한우'를 꺼내 잘 달궈진 프라이팬에 구웠다. 애초에 고기를 구워먹을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화로를 가지고 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프라이팬에 고기를 구웠다. 화로가 없이도 1++ 등급의 부드러운 홍성한우 등심은 우리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안면도 수산시장에서 대하 9마리를 2만 원에 '떨이'로 구매했다. 대하를 흐르는 물에 잘 씻어서 천일염을 두툼하게 깐 프라이팬에 올렸다. 소금이 달궈지면서 탁탁 튀는 소리와 대하가 익어가면서 변하는 색깔. 그리고 은은하게 퍼지는 바다향기가 학암포의 밤을 더 운치 있게 만들었다. 이날 먹은 국내산 대하 소금구이의 맛은 가히 예술이었다. 쉽게 술술 벗겨지는 껍질과 이가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의 탱탱한 식감은 배 부름도 잊은 채 계속 손이 가게 만들었다.

오늘 저녁 만찬의 마지막은 지금이 제철인 안면도 꽃게가 들어간 라면이다. 꽃게 한 마리를 다듬어 넣은 라면. 해물탕 느낌 나는 시원한 국물과 살점 가득한 안면도 꽃게는 먹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게 만들었다.

홍성한우, 대하, 꽃게까지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어머니와 나는 함께 텐트 안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와 이렇게 한 공간에 누워 잠을 청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세월이 흘렀다. 한 집에 살면서도 이렇게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지 않는 우리 모자에게 학암포의 밤은 우리에게 소중한 시간을 가져다주었다.

독립운동가 이종일 선생의 생가지
▲ 이종일 생가지 독립운동가 이종일 선생의 생가지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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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암포 오토캠핑장 옆에는 개를 키우는 곳이 많았다. 새벽에 어찌나들 짖어대는지 동이 틀때까지 뜬 눈으로 밤을 세웠다. 덕분에 5시가 조금 넘어 일어나 학암포 해변길로 산책을 나갔다. 새벽의 학암포 바다 바람은 턱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웠다. '확실히 북쪽이라 추운가보다' 생각하며 캠핑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채꽃이 핀 것을 보았다. 아직도 유채꽃이 피어 있는 걸 보니 춥긴 추운 모양이었다.

따뜻한 텐트 안으로 들어가 2시간 정도 더 눈을 붙이고 일어났다. 아침은 참치 통조림과 남은 김치를 넣은 김치찌개. 어머니는 반찬 하나도 없는 간소한 식단을 맛있게 먹어주셨다. 그리고 10시쯤 짐을 챙겨 일찌감치 또 길을 나섰다.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 발길 닫는 대로 여행하면서 내려가자고 했다.

안면도에서 급하게 학암포로 올라오면서 보지 못하고 지나친 '옥파 이종일 선생'의 생가지에 들렀다. 이종일 선생은 태안 출신 '독립운동가'로 순수 한글 신문인 '뎨국신문'을 창간한 위인이다. 이종일 선생 생가지에는 '이종일 기념관'과 '체험관', '생가지'가 복원되어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다. 그리고 생가지 옆에는 태안 출신 '참전용사 기념탑'과 '자유수호 희생자 위령탑' 등도 있어 전쟁의 아픔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집 떠난 지 24시간째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함께 웃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직도 우리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고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일찌감치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태그:#학암포, #캠핑, #저녁만찬, #일몰, #이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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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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