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3연승을 내달렸다. 한화는 23일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KT 위즈와의 원정경기에서 6-1로 승리했다.

한화 선발 안영명은 6이닝 무실점 호투로 시즌 5승째를 따냈다. 한화는 연승 기간동안 미치 탈보트-배영수에 이어 안영명까지 올시즌 처음으로 3연속 선발승에 성공했다. 타선 역시 7경기 연속 5득점 이상을 기록하며 마운드를 뒷받침했다. 시즌 23승(21패)으로 6위 자리를 지킨 한화는 24일 최종전 결과에 상관없이 KT에 위닝시리즈를 확보하며 지난 대결에서의 열세를 설욕했다.

한편 경기 직후 다소 불미스러운 상황이 그라운드에서 벌어졌다. KT 신명철이 한화 선수단 측을 향하여 항의를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신명철은 좀처럼 화를 참지못하는 모습이었고 몇몇 한화 선수들도 불쾌한 반응을 보이며 잠시 언쟁이 벌어졌다. 한화와 KT의 일부 고참급 선수들이 신명철을 다독이며 그 이상의 소동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양팀 모두 분위기가 어색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장면은 방송중계와 현장에 있던 팬들도 똑똑히 목격했고, 관련 내용이 온라인에서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는 등 이날 승부보다 더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무엇이 신명철과 KT 선수단을 자극했을까. 사건의 발단은 9회였다. 한화가 6-1로 앞선 9회초 1사 후 볼넷으로 출루한 강경학이 무관심 도루를 시도했다. 점수차가 벌어졌고 흐름이 한화쪽으로 사실상 기운 상황에서 KT로서는 불쾌할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화 벤치는 9회말에만 무려 3명의 투수를 투입했다. 9회 1사 후 박정진을 내리고 김민우를 올려 김상현을 삼진 처리했고, 다시 윤규진을 올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게했다. 한화 쪽에서 반드시 투수를 교체해야 할 만한 위기상황은 없었다. 단지 오랜만에 1군에 복귀한 김민우-윤규진의 컨디션 점검 차원의 등판이라고 봐야했다.

결국은 이번에도 야구의 '불문율'에 관한 관점의 차이였다. 야구계에서는 흔히 점수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는 무리한 번트나 도루를 하지하고 투수교체도 자제하는 문화가 있다. 물론 공식적인 규정은 아니고 서로 스포츠맨십에 따라 상대를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기위한 암묵적인 합의다.

이러한 불문율은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이나 미국에도 있다. 타자가 홈런을 치고 투수 앞에서 세리머니를 하지않는 것이나, 우리 편 타자가 사구를 맞으면 다음 공수교대때 상대 중심타자에서 보복성 사구를 던지는 등도 일종의 불문율에 해당한다. 타 종목에도 불문율이 존재하는데 농구의 경우, 크게 점수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이기는 쪽은 가급적 작전타임을 부르지 않고, 지는 쪽은 반칙 작전을 자제한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불문율이란 좋게보면 서로 '동업자 의식'을 지키자는 신사협정의 의미도 있지만, 요즘에는 그 기준이 애매하고 시대착오적인 관습이라는 인식도 적지않아서, 불문율에 대한 찬반양론이 엇갈리는 편이다.

이날 경기처럼 "5점 차 리드 상황에서 과연 도루나 투수교체가 반드시 필요했냐"고 묻는다면 사실 정답은 없다. 섣불리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어려운 문제다. 한화 측에서는 '빅이닝'과 역전극이 속출하는 최근 프로야구에서 과연 5점차가 그리 큰 점수차냐고 반문할수 있다.

실제로 한화는 전날 경기에서도 9-2로 앞서다가 8회에만 3점을 내주며 당초 이날 등판이 예정되어 있지 않은 마무리 권혁까지 마운드에 올려 세이브를 따내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화는 전날까지 권혁이 3일 연속 투구하여 이날 등판이 어려웠던데다 또다른 필승조 박정진도 앞서 2.1이닝을 소화한 뒤여서 남은 투수들만으로 확실하게 승리를 매조지을 필요가 있었다. 한화는 올시즌 프로야구 10개구단을 통틀어 3점차 이내 접전 승부가 가장 많은 팀이기도 하다.

'이길 수 있는 경기는 확실하게 잡는다.' '오늘의 경기만이 아니라 내일 이후도 계산하여 선수를 기용한다.' 등은 김성근 감독의 오랜 지론이기도 하다. 김감독은 과거 타 팀 사령탑 시절에도 점수차에 상관없이 번트나 투수교체를 주저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호불호가 엇갈릴수 있지만 승패를 떠나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게 프로의 예의'라는 점에서는 누구도 탓할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반대로 KT 입장에서 봤을때는 충분히 불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불문율의 본질은 결국 매너의 문제다. 매너는 상대에 대한 존중을 의미한다. 흔히 스포츠는 전쟁이라고 하지만, 진짜 전쟁과의 차이점은, 상대가 적이기 이전에 동료라는 동업자 의식에 있다.

이미 흐름이 사실상 기운 가운데 싸울 의지를 잃은 상대를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것이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다. 전쟁으로 비유하자면, 한화의 9회 투수교체는 이미 전투의 승패는 가려진 상황에서 굳이 흐름과 동떨어진 병사들간 일대일 검투 대결을 시키겠다는 꼴이나 다를게 없었다. 이미 패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통스러울 상대에게, 승부 자체와 크게 상관없는 '투수 점검'까지 시키면서 시간을 지연하는 것도 과연 승자의 권리라고 해야할까.

공교롭게도 지난 4월 12일 한화는 롯데와의 경기에서 빈볼 논란으로 곤욕을 치른바 있다. 당시에도 '불문율'이 논란의 중심이었다. 이날 경기에서 한화의 이동걸이 롯데의 황재균에게 몸에 맞는 볼을 던져서 퇴장당했고 벤치클리어링까지 벌어졌다. 당시 경기 초반 한화가 큰 점수차가 끌려가던 상황에서 롯데 측이 도루를 시도하는 장면이 사태의 빌미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엔 한화가 정반대의 상황이 놓였다. 당시 롯데의 도루는 아직 경기 초반에 나왔음에도 한화가 빈볼로 보복한 반면, KT를 상대로 한화의 도루와 투수교체는 승부가 결정된 9회에 나왔다. 롯데와 KT는 한화의 행동에 불만을 표출했지만 적어도 한화처럼 경기 내에서 보복성 플레이를 하거나 상대를 도발하지는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 사태에서 한화 측이 곱지않은 시선을 받는다면, 그것은 승부에 끝까지 최선을 다했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불문율에 관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중적인 태도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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