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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낮 시가현 시가라기에 있는 미호뮤지엄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에서는 일본 미술품의 기쁨(유열, 愉悅) 전시와 버넷 뉴먼의 특별전(3월 14일 - 6월 7일)이 열리고 있습니다. 일본 미술품 가운데 조선 차사발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번 미호뮤지엄 봄철 특별전에 전시되고 있는 이도다완 조선 차 사발입니다. 왼쪽은 쇼안이라고 불리는 것이고, 오른쪽은 레이키(靈龜)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이번 미호뮤지엄 봄철 특별전에 전시되고 있는 이도다완 조선 차 사발입니다. 왼쪽은 쇼안이라고 불리는 것이고, 오른쪽은 레이키(靈龜)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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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 사발은 쇼안(少庵)이라고 불립니다. 잡는 사람의 손바닥에 안기는 듯 부드러운 감촉을 지니고 있지만 미끄러워 벗어나려하지 않습니다. 겉은 광택으로 빛이 나지만 거스를 만큼 눈부시지 않습니다. 흙으로 빚어 가마에 구워서 만든 작은 차 사발에 도공의 솜씨와 자연의 오묘함이 스며있습니다. 거만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사람 마음을 끌어당기는 매력과 품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조선 차 사발을 작은 거인이라고 부릅니다.

이 차 사발은 일본 차도의 성인이라고 부르는 센노리큐(千利休 1522-1591)가 마지막 죽기 전까지 가장 아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죽은 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용하다가 다시 센노리큐 가문에 전해져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조선 차 사발을 일본 사람들은 이도다완(井戶茶碗)이라고 부릅니다. 다완이 차 사발이라면 이도다완의 이도는 무슨 말일까요? 아직 그 뜻이 무엇인지 확실히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보통 일본 말에서 이도는 우물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도다완의 이도는 우물처럼 깊은 아름다움과 멋을 지닌 차 사발이라는 뜻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한반도 위등(韋登)에서 만든 차 사발을 이도(井戸若狭守覚弘)라는 사람이 가져왔기 때문에 이도라는 말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나라현의 이도무라(井戸村)에서 조선 차 사발이 발굴되었기 때문에 이도라는 말이 사용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느 것 하나 진실이라고 굳어진 것은 없습니다.

일본에서 차를 마시는 습관은 불교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일본 불교 신앙이나 절과 관련된 문화가 귀족 중심의 고급문화로 유지되다가 점차 서민에게 넓혀지면서 차를 마시는 차 사발에 대한 인기도 덩달아 뛰어 올랐던 것 같습니다. 조선 차 사발은 지금도 일본 옥션에서 거래가 이뤄질 정도로 인기가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가이호(海北友松, 1533-1655년)의 그림도 볼 수 있습니다. 가이호는 교토에서 활동한 화가였습니다. 그 때 화가들은 대부분 절에서 스님 생활의 일부로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절에서 필요한 그림을 그리거나 일부 귀족들의 집안에서 필요한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 가운데 다다미방 미닫이 문 그림이 대표적입니다.

가이호(海北友松, 1533-1655년)의 군마도(群馬圖) 병풍 그림입니다.
 가이호(海北友松, 1533-1655년)의 군마도(群馬圖) 병풍 그림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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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호의 그림 가운데 군마도(群馬圖) 병풍 그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말 여러 마리가 소나무 아래에서 풀을 뜯으며 놀고 있는 모습입니다. 말은 비교적 살이 쪄서 엉덩이가 통통합니다. 말이 살이 찌고 여유롭게 풀을 뜯는 것은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화가가 꿈꾼 세상인지, 화가가 살았던 세상인지 판단하는 것은 감상자에게 맡기겠습니다.

미호뮤지엄 상설 전시관은 실크로드를 주제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 인도, 중국, 이슬람 따위의 미술품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나무를 주제로 만들어진 두 작품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사산조페르시아 시대(4-6C.) 만들어진 작품 나무 아래 잔치그림 접시(樹下饗宴図皿)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청동으로 만들어져 파란 구리녹이 끼었지만 그림 내용을 보는 데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알파벳 Y 자 형 나무 아래 두 사람이 앉아있습니다. 나무 가지 아래에는 잎, 꽃, 열매가 있습니다. 나무 가지 위에는 아기가 있고, 새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조로아스터교에서 생명과 희망과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나무 아래 뿌리 부근에서는 물가에서 사는 오리가 놀고 있습니다. 

셀주크 시대(13C.) 만들어진 작품 나무 아래 인물 그림 대접(色絵樹下人物図鉢)입니다. 이 작품은 이란 지역을 이슬람 세력 지배하던 시대 만들어졌습니다. 이 작품은 비교적 앞에서 본 작품과 비슷하지만 단순화되었습니다. 나무에 달린 꾸밈이 없어졌고, 대접 둘레에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과 글씨 장식이 덧붙여졌습니다. 나무 아래 물을 그린 것 역시 위에서 본 오리 모습을 그린 것과 비슷합니다.

시대를 달리해서 만들어진 두 작품이지만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나무 아래에서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화려한 잔치를 하고 있거나 무엇인가를 즐기는 모습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다투거나 싸우는 모습은 아닙니다.

       가까운 곳에서 사산조페르시아 시대(4-6C.)와 셀주크 시대(13C.)라는 때를 달리해서 만들어진 두 작품입니다.
 가까운 곳에서 사산조페르시아 시대(4-6C.)와 셀주크 시대(13C.)라는 때를 달리해서 만들어진 두 작품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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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철에 따라서 물이 오르고, 잎이 커지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맞습니다. 이러한 변함없는 주기와 성장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부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무의 깊은 뿌리는 땅 속에 뿌리를 박아서 생명의 물을 온몸 구석구석 올려주고, 키는 하늘과 이어져 있어 햇빛을 받아 왕성한 생명을 이어갑니다. 나무의 이러한 상상력은 인간이 생각하는 이상향이었고, 하늘과 땅과 지상을 이어주는 통로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음력 정월 보름, 전라북도 정읍시 정량리를 비롯한 여러 마을에서는 당산나무 부근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당산제를 지낸 다음 당산이나 당산나무 밑동에 줄을 감아놓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도 나무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의 소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무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이나 상징은 시대와 역사를 넘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이 엠 페이(Ieoh Ming Pei, 1917)가 설계한 미호뮤지엄은 도화원기를 주제로 시가라기 산 속에 지은 미술관입니다. 미술관 입구에서 본관 사이에 터널, 골짜기를 잇는 다리 따위가 있습니다. 나무꾼이  복숭아꽃을 보고 도화원에 다다르는 여정을 나타낸 것입니다.

사진은 터널 안에서 본 미호뮤지엄 본관과 메밀국수와 푸성귀 튀김입니다.
 사진은 터널 안에서 본 미호뮤지엄 본관과 메밀국수와 푸성귀 튀김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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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누리집> 미호뮤지엄, http://www.miho.or.jp/, 2015.5.23.
미호뮤지엄, 일본미술의 유열(愉悅), 세이켄샤(靑幻舍), 2015.3.

첨부파일
MIHO list2015,5.pdf

덧붙이는 글 | 박현국 기자는 일본 류코쿠(Ryukoku, 龍谷)대학 국제학부에서 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태그:#미호뮤지엄, #조선 차 사발, #나무, #가이호(海北友松), #이도다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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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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