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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2014년 제주도 순유입 인구는 1만 명을 돌파했다. 사진은 쇠소깍 앞 바다를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
 제주도에서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2014년 제주도 순유입 인구는 1만 명을 돌파했다. 사진은 쇠소깍 앞 바다를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
ⓒ 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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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째 고민'만' 하는 일이 있다. '제주도로 이사가기'. 아침에 일어나 현관문을 열면 보이는 에메랄드빛 바다. 하얀 백사장에 앉아 풍경을 안주 삼아 기울이는 맥주 한 잔과 제주도의 따스한 햇살. 생각만 해도 흐뭇하고 입가가 근질근질하다.

그렇게 좋으면 가면 되지 않냐고? 제주도 순유입 인구가 1만 명이 넘는 시대가 됐다지만, 여전히 제주도로 이사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직장과 가족이 있는 '뭍'을 떠나 섬으로 들어가는 일을 '이민'에 비교하는 건 괜한 오버가 아니다. 그만큼 재고 따질 게 많은 '모험'이기 때문이다.

뭍에서 좋은 직장에 다니며 입이 딱 벌어질 만한 연봉을 받고 있다면 더욱 떠나기 어려울 터. 보장된 승진과 연봉 5천만 원을 포기하고 제주도로 떠난 그녀의 얘기는 그래서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녀는 어떻게 그곳에 정착했고, 지금은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잘 나가던' 직장 그만두고 무작정 내려간 제주도

제주도 용눈이 오름에서 바라본 모습. 오른쪽이 다랑쉬 오름이고 왼쪽이 아끈다랑쉬 오름이다. 조남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는 용눈이 오름에 올라 새로운 제주의 모습을 봤고, '이곳에서 살아보자'는 결심을 했다.
 제주도 용눈이 오름에서 바라본 모습. 오른쪽이 다랑쉬 오름이고 왼쪽이 아끈다랑쉬 오름이다. 조남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는 용눈이 오름에 올라 새로운 제주의 모습을 봤고, '이곳에서 살아보자'는 결심을 했다.
ⓒ 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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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섬 나의 삶>(조남희 지음, 오마이북 펴냄)에는 이제 제주살이 3년차에 접어든 조남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의 얘기가 담겨 있다. 36세의 그녀는 3년 전인 2012년 여름, 30년 넘게 산 서울을 떠나 제주로 이사했다. 서울에서 '잘 나가는 직장인'이었고, 주말마다 제주를 제 집 드나들 듯 오갔지만 제주 땅을 밟을 당시 그녀의 잔고는 연봉의 반도 채 되지 않았다. 제주에 안착할 완벽한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빈 몸으로 제주에 와, 맨 땅에 헤딩하듯 하나씩 부딪혀 가며 길을 만들어 간 셈이다. 카페나 게스트하우스를 차릴 두둑한 통장도, 제주에 인맥도 없었던 청춘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직장에 사표를 내고 무작정 내려온 제주에서 처음 두 달 동안은 대평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다...(중략)...장기로 묵으면 서울에서의 한 달 월세와 맞먹는 돈이 든다...(중략)... 월급도 끊겼고 모아 놓은 돈도 많지 않았다. - <푸른 섬 나의 삶> 중

마땅한 거처없이 게스트 하우스에서 '한라산 야간등반'(한라산소주를 밤늦게까지 마시는 일)을 하던 그녀는 그 자리에 있던 이웃의 도움으로 집을 구했다. 창문을 열면 한라산이 보이는 연세 170만 원 짜리 집이었다. 봄이면 고사리를 땄고, 겨울이면 감귤 따기 아르바이트를 했다. 난생 처음 귤술과 초절임도 담가 먹었다. 그녀는 지갑은 홀쭉해졌지만, 서울 살 땐 알지 못했던 즐거움들을 하나씩 알아갔다고 말한다.

고사리 꺾기가 왜 이렇게 재미있을까? 가만 생각해보니 서른이 넘도록 자연에서 직접 먹을 것을 채취하는 기쁨을 맛본 적이 별로 없다. 서울에 살 땐 해마다 해외여행을 가고 주말에는 패러글라이딩 같은 취미생활에 돈을 쓰고 다니면서 "그래, 사람은 역시 즐기면서 살아야 해!"라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부지런히 즐기면서 살았는데도 가슴에 남는 헛헛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 <푸른 섬 나의 삶> 중

일요일 저녁이면 가는 주말을 아쉬워 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직장인들. <개그 콘서트>에 단골 멘트로 나왔던 "내일이 월요일이다"라는 농담은 그래서 '웃프다'. 최승자 시인은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고 했지만, 직장인들에겐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주말의 끝이 온다.

제각기 다른 '인생의 산수'... 당신의 산수는 무엇인가요?

조남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는 제주도 밴드 '문제'에서 활동하고 있다.
 조남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는 제주도 밴드 '문제'에서 활동하고 있다.
ⓒ 조남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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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도 다를 것이 없었다. 일요일 저녁만 되면 홍대 근처 술집에서 술잔을 앞에 두고 "출근하기 싫어 미치겠다"를 외쳤다. 하지만 다시 '살기 위해' 월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일터로 향했다. 매주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그러다 7년 직장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제주도로 향한 것이다.

그런 그녀이지만, 제주 생활이 '환상'이라고 말하진 않는다. 오히려 미디어를 통해 과장된 점이 있음을 지적한다. 도시든 농촌이든, 서울이든 제주든 삶은 삶이고, 모두 좋을 순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 제주로 떠나기 전에 충분한 준비 과정과 계획을 갖고 오라고 조언한다.

모두들 저마다 인생 산수를 하며 살 것이다. 나는 제주에서의 좋은 환경과 마음의 여유를 더하기 위해 도시에서의 안정된 직장과 수입, 편리한 생활을 뺐다. 물론 어느 것이 덧셈이고 어느 것이 뺄셈이 되는지는 지극히 개인의 선택이다...(중략)... 나와 같은 산수를 해서 제주도에 내려온다 해도 모든 것이 덧셈이 되지는 않는다. 1년 살 집 한 칸 구하는 일도 쉽지 않고 외로움 같은 지독한 복병이 늘 도사리고 있으니 말이다. - <푸른 섬 나의 삶> 중

'감귤도 제대로 못 따는 육지 것'으로 낙인 찍힐까 무서워 다른 동네로 '감귤 따기 아르바이트'를 가는 소심한 그녀이지만, 지금은 셰어하우스 두 곳을 운영하며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외지인들의 제주 정착을 돕고 있다. '반 도민'이 다 된 셈이다.

월급은 예전에 비해 1/3로 줄었지만 '없이 살아도 인상 쓰지 않고 살 수 있'어 좋다는 그녀. 최근에는 자신의 바람대로 '텃밭 있는 집'을 제주시 도평동에 얻었다. 바로 셰어하우스 2호다. '적어도 삼대는 살아야 도민으로 인정해준다는 제주도'에서 그녀의 '본격 제주 살이'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다. '인생의 결론을 앞서 묻지 말아달라'는 그녀이기에 다음 이야기가 더욱 기대된다.

그녀는 자신의 바람대로 제주시 도평동에 '텃밭 있는 집'을 셰어하우스 2호로 얻었다.
 그녀는 자신의 바람대로 제주시 도평동에 '텃밭 있는 집'을 셰어하우스 2호로 얻었다.
ⓒ 조남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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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푸른 섬 나의 삶> (서울 여자의 제주 착륙기), 조남희 지음, 오마이북 펴냄, 2015.03.05, 1만 4천원



푸른 섬 나의 삶 - 서울 여자의 제주 착륙기

조남희 지음, 오마이북(2015)


태그:#제주도, #푸른 섬 나의 삶, #조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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