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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평창으로 가려던 케냐인 대니얼 사피트씨는 평양에 도착했다. 비행기 표 발권 당시 생긴 실수 때문이었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평창과 평양의 영문 표기가 비슷한 데다가 남한과 북한의 영문 국호 표기를 구분하기 힘들어 발생한 일이다. 이런 문제가 단순히 사피트씨만의 이야기일까.

[사례①] 프랑스에서 온 다이앤은 대한민국을 'South Korea'로 알고 있었다. 신문과 방송 그리고 학교에서 'South Korea'라는 표기만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다 마주친 'Republic of Korea'는 그녀를 당혹시켰다. "Republic of Korea가 공식 국호라면 왜 잘 쓰지 않는 거죠?" 프랑스에서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도 The French Republic을 자주 사용한다. 프랑스가 얻으려고 노력했던 공화국이란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녀는 "혼란스럽지 않도록 한국 정부에서 외국인 대상으로 운영하는 누리집에 'South Korea'와 함께 'Republic of Korea'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사례②] "너, 북에서 왔니?" 16년 전 강환희씨가 영국에 도착해 가장 처음 들은 말이다. 입국심사 종이에 'Republic of Korea'가 쓰여 있는 것을 보고 담당자는 "North?"라고 물었다. 그는 당황해서 "아니오. 남쪽에서 왔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그는 집에 편지를 보내려고 우체국을 찾았다. 정성 들여 주소에 'Korea'를 쓰고 담당자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금발머리에 안경을 쓴 담당자는 "안돼요. 잠시만 기다리세요"라며 그를 말렸다. 그녀는 "대한민국으로 우편을 보낼 때는 반드시 'Korea'라고 쓰고 괄호 안에 'Seoul'을 넣어야 해요"라고 충고했다. 'Korea'를 북한으로 인식해 우편이 잘못 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Seoul'을 쓰면 헷갈려 하지 않는단다.

이런 일은 요즘도 마찬가지다. 그는 스위스에서 번지점프를 하다가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관리인은 "번지점프 자세가 훌륭한데? 어디서 왔니?"라고 물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Republic of Korea'라고 답했다. 그러자 관리인은 "Are you a spy?"(너 첩자니?)라고 말하며 총 쏘는 시늉을 했다. 그는 "아니, South Korea에서 왔어. 남한의 공식 명칭이 Republic of Korea야"라고 말했다. 관리인은 멋쩍은 웃음만 지었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는 단순히 강환희씨 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여행을 위해 해외 누리집에서 예약을 할 때면 다른 나라 사람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유럽 내 항공 사이트, 숙박 사이트 등 웹 사이트별로 한국을 나타내는 국가 명칭이 다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장학금과 펀드를 신청할 때도 공식 국호를 모를 것이라는 불안에 'South Korea'를 비롯한 추가 정보를 기재한다. 또 비자발급이나 연장을 할 때 'Republic of Korea'가 'South Korea'인 것을 증명하느라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모두 통일된 표기법이 없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만 이런 불편을 겪어야 할까?

유광혁씨(전 서울여자대학교 국제학 강사)는 "국호는 개인의 이름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지칭하는 표현이 혼용되고 있다면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또 박선희 교수(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학)는 "공식 국호 'Republic of korea'를 쓰는 것이 바람직하나 세계적으로 대중화된 'South Korea'를 무시할 수는 없다"라면서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 정부기관의 영문 국호 표기에서도 여러 번 논쟁의 도마 위에 올랐다. 2013년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서울 홍보 광고에서는 한국을 'South Korea'라고 표기했다. 하지만 일부 단체에서는 공식 국호가 아닌 'South Korea'를 사용한 서울시를 비난했다.

이러한 논쟁에 대해 김두진 교수(고려대학교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는 "서울시의 경우 국호의 의미나 가치보다 인지도를 우선시했기에 'South Korea'로 표기한 것이다. 이 문제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어떤 것이 더 효과적인가'로 접근해야 한다"라고 평했다.

청와대 및 정부 17부 영문사이트 국호 표기 현황
▲ 정부 주요기관 국호표기 현황 청와대 및 정부 17부 영문사이트 국호 표기 현황
ⓒ 이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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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논쟁이 계속돼 왔지만, 영문 국호 인지의 불일치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위의 도표에서 보듯 국가기관의 영문 누리집 영문 국호도 통일되지 않고 있다. 청와대 및 정부부처의 국호는 메인에 게시돼있 거나 기관을 소개하는 데 있어 가장 처음쓰인 국호를 기준으로 조사했다(단, 영문 주소는 제외함).

공식국호인 'Republic of Korea'는 청와대, 외교부, 교육부를 비롯한 총 11개 부처에서 사용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를 포함한 총 4개의 부처에서는 'Korea'를, 통일부는 'South Korea'를 사용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Republic of Korea'와 'South Korea'를 혼용 표기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Republic of Korea(South Korea)'로 두 가지 국호를 병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영문 국호 표기 현황과 관련해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외교부, 문체부에 취재를 요청했으나 국호를 관할하는 곳은 없었다.

백학순 연구원(세종연구소)은 "외국인들은 우리 공식 국호를 사용할 일이 없기 때문에 'Republic of korea'와 'South Korea' 사이에 인식 차이가 발생한다. 인식의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일상적으로 알려져 있는 'South Korea'를 공식 국호와 함께 병기해 알리는 것이 외국인들에게 좋은 서비스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외국인의 영문 국호에 대한 혼란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국가가 운영하는 영문 사이트, 국가 지도 등 정부 공식 문서에서 'Republic of Korea'와 'South Korea'을 병기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한국인에게 발송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합격 통지서에서 국적이 Korea,Republic of (south)라고 표기되어 있다.
▲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합격 통지서 한국인에게 발송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합격 통지서에서 국적이 Korea,Republic of (south)라고 표기되어 있다.
ⓒ 이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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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호 병기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Republic of Korea (South)'로 'Republic of Korea가 South Korea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다. 혹은 'South Korea(Republic of korea)'의 방식으로 일상적으로 알려진 South Korea의 공식 국호를 알려주는 방법이 있다. 마지막으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문서에서 볼 수 있듯 'Korea, Republic of (South)'의 표기로 'Korea'를 강조하는 방법이 있다.

정부는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하여 문화교류, 해외광고 및 홍보간행물 발간 등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들은 모두 국가의 이름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 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국가 이미지 확립을 위해 해당 사안을 검토하고,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다.

덧붙이는 글 | RSOK는 우리나라 영문국호 Republic of korea와 South korea 모두 OK라는 뜻이며, 영문 국호 병기를 위한 프로젝트 입니다. 기사와 카드뉴스를 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태그:#국호, #영문국호, #REPUBLIC OF KOREA, #SOUTH KOREA,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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