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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 경진고등학교에서 대룡산으로 올라가는 골목길에서 만난 갈매기와 매화나무 벽화.
 경남 진주시 경진고등학교에서 대룡산으로 올라가는 골목길에서 만난 갈매기와 매화나무 벽화.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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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다란 골목길. 이 길을 따라 올라가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지난 22일 아내를 출근시키고 아이들 밥 먹여 등교 보낸 뒤 부리나케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경남 진주시 상봉동 경진고등학교 앞. 학교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야트막한 산을 올랐다. 학교 옆 골목길에는 하늘 나는 갈매기와 매화가 벽면에 그려져 있다. 하얀 조팝나무 덕분에 '길 잘못 들면 돌아가지 뭐'하는 자신감을 가졌다.

골목길은 어느새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가 됐다. 노란 봉지에 열매를 싼 배나무밭이 나왔다. 학교 운동장으로 빠지는 샛길이 나온다. 저만치 분홍낮달맞이꽃무리가 연분홍 치마처럼 휘날리며 유혹한다. 밤에 피는 달맞이꽃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꽃말은 '무언의 사랑' 꽃말처럼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약간 가파른 길을 더 올라갔다.

시원한 진주 풍경... 산딸기가 익어가는 계절

진주 대룡산으로 올라가는 농로에는 분홍낮달맞이꽃무리가 연분홍 치마처럼 휘날리며 유혹한다.
 진주 대룡산으로 올라가는 농로에는 분홍낮달맞이꽃무리가 연분홍 치마처럼 휘날리며 유혹한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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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이다. 왼편으로는 천진선원이다. 관세음보살상이 일주문 대신 반기는 절로 향했다. 절 내에는 팔각정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대웅전 앞에는 다보탑을 닮은 탑이 연등 속에 있다. 탑 가운데에는 부처님이 앉아 있고, 그 앞에는 묵직한 얼굴의 스님 상이 합장을 하고 있다. 여기에 절이 있었단 말인가 싶었다. 탑 앞에는 보랏빛 '끈끈이 대나물'이 화사하게 피었다.

절에서 바라보는 진주 시내 풍경이 시원하다. 다시 돌아 나오려는데 정자 앞에 짙은 회색빛 돌이 덩그러니 서 있다. 얼핏 보면 뫼 산(山) 모양을 닮았고, 하늘로 솟구치는 로켓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진을 찍는데 노스님이 지나가면서 "왜 찍느냐?" 묻는다. 스님도 예전에는 사진이 좋아 설악산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 병풍처럼 만들기도 했다고. 절을 최근 중수했지만, 100년이 넘었단다.

진주 대룡산은 야트막하지만 시내 풍경을 구경하는 즐거움이 걷는 동안 함께한다.
 진주 대룡산은 야트막하지만 시내 풍경을 구경하는 즐거움이 걷는 동안 함께한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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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 관세음보살상 앞으로 다시 왔다. 당당하게 내려가는 할아버지. 발 아래 메밀꽃을 구경하고 고개를 들자 대룡골과 봉원초등학교, 비봉산이 보이고 저 멀리 옛 진주객사 터였던 고층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문득 대룡골이라는 지명 속에 떠오르는 아련한 전설이 있다. 옛날 젊은 스님이 최고의 선승이 되기 위해 소룡사의 한 칸 초가에서 면벽 수도를 하고 있었다. 한양에서 기생 생활을 청산하고 내려와 있던 소국이란 여인과 사랑을 나눴다. 그러나 사랑도, 돈도, 명예도 다 버려야 하는 스님 처지에서 사랑은 이뤄질 수 없었다. 사랑에 빠진 스님이 파계를 당하자 절을 불 지르고 부처님께 내세에는 반드시 그녀와 함께 살게 해달라며 죽어갔다고 한다.

애틋한 사랑의 전설을 뒤로하자 농로 좌우로 배나무들이 노란 봉지를 매달아 줄지어 있다. 배나무밭 사이로 상큼 달콤한 산딸기가 빨갛게 익어간다. 아래에는 노란 고들빼기 꽃이 하늘거리고 좌우에는 노란 배나무 봉지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다.

임금 대신 목사가 풍요 기원하던 '사직단'

 진주 대룡산 천진선원 앞에 있는 관세음보살상.
 진주 대룡산 천진선원 앞에 있는 관세음보살상.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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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룡골과 봉원초등학교, 비봉산이 보이고 저 멀리 옛 진주객사터였던 고층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대룡골과 봉원초등학교, 비봉산이 보이고 저 멀리 옛 진주객사터였던 고층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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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진주 목사가 임금을 대신해 이 지역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냈던 장소인 '진주 사직단 터'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나왔다. 땅은 네모나다는 상징 때문에 사직단 터는 정사각형 허물어진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서울에 있는 사직단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홍살문을 세우고, 동쪽에는 토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단을, 서쪽에는 곡식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직단을 세웠다.

사직단이 땅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는 환구단이 있었다. 둥근 형태로 만들어져 원구단이라고도 불렸다. 원은 하늘을 상징하고 네모는 땅을 상징했다(天元地方). 하늘에 드리는 제사는 중국 황제만이 올릴 수 있다는 중국의 압력에 1465년(세조 10년) 폐지됐다. 이후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고친 고종이 경운궁 맞은편에 환구단을 만들어 황제로 즉위했다.

진주 사직단 터.
 진주 사직단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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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네모나다는 상징 때문에 사직단 터는 정사각형 허물어진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땅은 네모나다는 상징 때문에 사직단 터는 정사각형 허물어진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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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종묘와 사직단도 대한제국이 국권을 강탈당한 뒤 사직단에서 올리던 제례도 맥이 끊어졌다. 일제강점기 사직단을 공원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환구단을 조선호텔의 정원으로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서울을 본떠 만들었을 진주의 사직단도 일제강점기와 함께 허물어져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말 없는 돌무더기가 이곳이 사직단 있었음을 드러낸다. 돌무더기 사이로 옅은 분홍빛 '선씀바귀'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초처럼 서 있다. 저 멀리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의 빛나는 진주대첩의 진주성이 보였다.

거미 한 마리, 거미줄에 매달려 진주 시내를 배경으로 바람을 쐬고 있다. 거미처럼 진주 시내 풍경을 구경에 한눈파는 사이에 오른팔에 모기는 한껏 내 피를 빨아 마셨다. "딱~"치자 붉은 피가 주르륵 흐른다. 모처럼 만난 사람의 피에 훌려 모기도 도망갈 생각을 미쳐 못한 모양이다.

"종묘사직을 생각하소서!"

돌무더기 사이로 옅은 분홍빛 ‘선씀바귀’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초처럼 서 있다.
 돌무더기 사이로 옅은 분홍빛 ‘선씀바귀’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초처럼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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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사직단 터 앞에 거미 한 마리, 거미줄에 매달려 진주 시내를 배경으로 바람을 쐬고 있다.
 진주 사직단 터 앞에 거미 한 마리, 거미줄에 매달려 진주 시내를 배경으로 바람을 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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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사직단 터에서 바라본 진주 시가지.
 진주 사직단 터에서 바라본 진주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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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에서 쉽게 들을 수 있던 소리가 귀를 맴돈다. 3500년 중국 상나라 때부터 존재했던 종묘사직은 고구려를 거쳐 한반도로 전해져 신라와 고려를 거쳐 조선까지 이어진 우리의 고유 문화가 되었다.

2천 년 넘게 종묘제례만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조선 왕조 500년 동안 단 두 번 옮겨진 종묘와 사직의 신주. 2015년 올해는 광복 70주년이다. 일제 강점기에 훼손당한 우리의 고유 문화 유산이 하나 둘이 아니다.

하지만 하늘과 땅,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 것은 올바르게 정치를 하겠다는 조선 왕조의 다짐이었다. 서울의 종묘와 사직뿐 아니라 우리 경남 진주의 사직단도 제대로 복원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경상남도 인터넷뉴스 <경남이야기>와 해찬솔일기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종묘사직, #진주 사직단 터, #진주 대룡산, #진주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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