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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잔혹동시'를 접해보았는가? 그 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학원가기 싫은 날>이라는 시다. 그 안의 내용은 이렇다.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 이렇게 / 엄마를 씹어 먹어 / 삶아 먹고 구워 먹어 / 눈깔을 파먹어'

대중은 이 시를 바라보며 대체로 두 가지 입장을 드러낸다. 먼저 아이가 저러한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과 그 반대로는 아이의 문학적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입장을 나타낸다. 문제가 커지자 출판사는 결국 시집 전량을 폐기했다.

이 시를 읽은 나는 어린 아이가 안타까웠다. 어른들의 감정처럼 순화하지 않고 '날것'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한 아이의 고통에 마음이 쓰렸다. 아이는 학원에 가기 싫은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고 충실히 시로 표현한 것뿐이다.

10명 중 7명은 '사교육' 중

문제는 어른들이다. 아이의 의사를 무시한 채 부모님의 불안감 또는 과도한 욕심으로 사교육에 목매단 끝에 아이가 부모의 강압적 폭력에 저항한 것이다. 아이가 원치 않는 부가적 사교육은 부모의 강압적 폭력이라 말하고 싶다.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14년 초·중·고등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68.6%인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급별로는 초등학생(81.1%), 중학생(69.1%), 일반계 고등학생(56.2%) 순으로 나타나면서 나이가 어릴수록 사교육 참여율이 높았으며, 우리나라 청소년의 평균 사교육비는 24만2000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68.6%라는 수치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여전히 사교육의 울타리에 갇혀있다. 학생이 공부를 하는 데 과연 사교육만이 정답이라 할 수 있을까.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이라는 책에서는 참된 스승은 학습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자'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 아닌 학생이 가야할 방향에 적합한 정신을 일깨워줌으로써 지적 해방과 지적 평등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승이 학습 자료를 성실히 준비하여 학생에게 친절히 설명하는 행위를 반복하다보면, 학생은 스스로 학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점차 무능해진다. 이는 학습과정에서 스승이라는 사람의 생각을 학생에게 공유함으로써 지적고립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스승이 떠 먹여주는 학습 행위는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 사이, 무의식 중에 상위자와 하위자의 개념이 인식된다. 결국 나는 스승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정신적 패배를 선언하며 학생의 의욕과 사기를 떨어뜨릴 우려가 존재한다.

자크 랑시에르는 말한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터득한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스스로의 학습은 가능하다. 때문에 학생이 지향해야할 정신과 수업의 방향만 일깨워줌으로써 '자립하는 학습'의 힘을 기를 수 있다고.

무지하다 또는 불친절하다라고 느껴지는 스승을 통해 학생들은 스스로 학습의 길을 터득하고 찾아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참된 스승이라 할 수 있다. 학습을 누군가에 도움 받는 것을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스승이자 '설명자'는 학습의 수단일 뿐 목표나 전부는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세계교육포럼 두 번째 날인 20일 오후 4시 30분. 한국 정부는 인천 송도 컨벤시아 메인홀에서 '개인과 국가 발전을 위한 역동적인 한국 교육'이라는 주제로 '한국 교육 특별 발표회'를 열었다. 이날 인사말을 위해 연단에 선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다음처럼 말했다.

"경쟁보다는 협력, 다양성을 추구하는 미래형 인재를 키우는 것이 (한국의) 교육 비전이다. 모두를 위한 평등한 교육을 보장함으로써 교육은 양극화를 극복하는 사다리가 되어야 한다."

이 기사를 접하며 학생 지적 평등 보장이 전제조건이 아닌 목표로 인식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허나 우리가 지향해야할 지적 평등은 최종 목표가 아닌 기본적인 전제조건으로 인식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작을 다른 선상에서 출발한다면 어떻게 평등하게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올해 청소년의 사교육 수치는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을까 의문이다. 대한민국의 부모님들은 아이의 너무 많은 것을 관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늘 "고작 어린 아이가 무얼 알겠느냐고"하며 아이의 개성은 외면한 채 일방적으로 부모님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이상적인 교육의 길에 내 아이가 진입하길 강요한다.

부모의 틀 안에 가둘수록 아이는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올바른 부모의 역할은 때때로 아이가 가는 방향에 대한 응원 하나로 충분하다. 호두까기 인형처럼 부모님의 조종에 익숙해져 자기 관리에 능숙하지 않은 아이는 성공에서도, 행복한 삶에서도 점차 멀어진다.

잔혹동시는 사교육이 팽배해지는 사회 속에서 고통 받는 아이들의 모순점을 수면 위로 끌어낸 것이다. 문제의 원인에 집중하여 아이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아닌 아이의 순수한 작품을 전량 폐기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야말로 이 사회의 잔혹한 폭력성이며 어른들이 반성해야할 지점이 아닐까.


태그:#잔혹동시, #세계교육포럼, #무지한 스승, #사교육,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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