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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토바아로 출근하는 하노이의 젊은 남녀들. 베트남 경제의 역동성을 상징한다.
 오토바아로 출근하는 하노이의 젊은 남녀들. 베트남 경제의 역동성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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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 다녀와서 우연히 청룡부대(해병2여단) 출신의 베트남전 참전군인을 만났다. 1966년부터 1968년 1월까지 참전한 김아무개씨는 "남의 나라에 가서 총질하고 사람 죽인 것이 뭐가 자랑이라고 이름을 밝히겠냐"며 익명을 요구했다. 그는 "베트남에선 베트콩과 양민을 구분하기 힘들었다. 집을 불 지르고 사람을 죽였다. 국가든 개인이든 죗값을 씻으려면 베트남을 많이 도와줘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보이차를 팔기에 중국에 자주 가는데 베트남에도 좋은 차가 많다고 해서 몇 해 전에 처음 베트남에 갔다. 처음 가선 하노이의 대우호텔 밖을 못나갔다. 마음 한구석에는 나와 총부리를 겨눴던 사람들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니 시내는 온통 오토바이 탄 젊은이들뿐이더라. 내가 총질을 했던 노인 세대들은 찾아볼 수가 없더라. 그때부터 안심(?)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베트남전에서 베트남인 300만 명이 사망(부상자 200만명, 실종자 30만명)했다. 전사자의 대다수가 20대 청년이었다. 베트남통신사 역사관에 전시된 순직자 명단(253명)을 보면, 1968~1970년 사이에 사망자가 가장 많았다. 대부분이 1936~1938년생들이다. 20대 중후반에 사망한 이들이 살았으면 70대 후반이다. 이처럼 베트남은 청년들이 전쟁에서 많이 죽는 바람에 노인 부양 걱정이 없는 젊은 나라다. 슬픈 역사이지만, 이런 역동적인 인구 구성비가 베트남의 희망이자 밝은 미래다.

'어제의 적' 미국과 손잡은 베트남

 4월 30일 베트남 해방 및 통일 40주년을 맞이해 베트남의 발전상을 특집으로 다룬 베트남 국영영자지 <베트남뉴스>(일요판) 특대호 표지와 베트남 경제발전의 원동력인 세대별 인구 구성비 도표. 베트남은 평균연령(28~29세) 이하 인구 비중이 60%에 이르는 '젊은 나라'이다.
 4월 30일 베트남 해방 및 통일 40주년을 맞이해 베트남의 발전상을 특집으로 다룬 베트남 국영영자지 <베트남뉴스>(일요판) 특대호 표지와 베트남 경제발전의 원동력인 세대별 인구 구성비 도표. 베트남은 평균연령(28~29세) 이하 인구 비중이 60%에 이르는 '젊은 나라'이다.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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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19일 유엔인구기금(UNFPA)은 <세계인구백서>(2014년판) 발표회를 하노이에서 개최했다. 왜 하필 하노이였을까? 이번 백서가 약 18억 명에 이르는 세계의 청년인구(10~24세)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백서는 "베트남은 인구의 황금기에 드는 젊은이 수가 역대 최다가 되어 10~24세 청년인구가 총인구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베트남은 2014년 기준으로 9천만명이 넘는 인구 대국(세계 14위)이다. 평균연령은 28~29세. 평균연령 이하의 인구 비중이 총인구의 60%이고, 40대 이하의 인구 비중은 총인구의 80%나 된다.

베트남은 인구 경쟁력을 토대로 1986년부터 30년간 지속된 도이 머이(Doi moi, 쇄신) 정책을 통해 계획경제 체제를 시장경제 체제로 성공적으로 전환했다. 연평균 7~8%의 높은 경제성장률로 후진국에서 벗어나 중간소득 수준의 개발도상국 대열에 합류했다. 제조 및 수출 분야에서 외국인직접투자가 견인차 역할을 했다. 빈곤층 비율도 지속적으로 감소해 2017년에는 1% 미만으로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경제발전의 동력은 역설적이게도 총부리를 겨눈 미국과의 관계개선과 한국의 직접투자 그리고 조국을 등졌던 '보트 피플' 자본이다.

베트남 경제 재건의 첫 단추는 '어제의 적'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었다. 미국이 경제제재를 풀어주지 않는 한 서방자본,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WB)의 투자가 이뤄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대미 관계 개선을 통해 93년부터 IMF,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지원을 이끌어냈다. 특히 세계은행이 실질적인 투자를 주도했다. 이후 1995년 미국과 국교가 수립되고, 2001년에 최혜국 대우가 이뤄져 외국자본의 직접투자가 쇄도하게 되었다.

미국의 경제봉쇄를 견뎌낸 나라는 베트남과 북한 그리고 쿠바 정도다. 대미 관계 개선이 미국에 대한 베트남의 저자세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구수정 박사는 "미국과의 수교 직후인 95~96년경 '베트남도 미국에 가려고 줄 선다'는 보도가 나오자, 비자 발급 영사업무를 폐쇄시켜 버렸다"고 전했다. 또 얼마 전에는 미국 정부가 이라크 사태 등을 계기로 호찌민시 미국 영사관(전 미국 대사관)에 테러 방지턱을 만들자 베트남 정부는 인도에 68년 뗏(구정) 공세 희생자 위령비를 세워 '맞장'을 떴다. 뗏 공세 당시 미국 대사관 공격부대는 전원이 사망했다.

베트남의 오늘 있게 한 김우중과 김대중 그리고 삼성전자

 베트남의 응웬 푸 쫑(Nguyen Phu Trong) 당 서기장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투자 승인서 전달 행사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늘어나는 글로벌 시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베트남 호치민에 위치한 '사이공 하이테크 파크'에 TV 중심의 소비자 가전(CE)복합 단지를 건설할 예정이다. 2014.10.1
 베트남의 응웬 푸 쫑(Nguyen Phu Trong) 당 서기장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투자 승인서 전달 행사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늘어나는 글로벌 시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베트남 호치민에 위치한 '사이공 하이테크 파크'에 TV 중심의 소비자 가전(CE)복합 단지를 건설할 예정이다. 2014.10.1
ⓒ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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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또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한국의 베트남 투자에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 1995년 김우중은 모두가 만류할 때 "한강의 기적을 수출하자"면서 베트남에 거금을 투자해 외자유치의 물꼬를 텄다. 베트남 정부는 은인과도 같은 김우중을 '홍강의 기적'을 이루기 위한 벤치마킹의 경제고문으로 삼기도 했다.

김대중은 1998년 베트남 방문 때 호찌민 묘소를 참배하고 '양국간 불행했던 과거'를 언급하며 처음 유감을 표명했다. 이어 2001년 8월 방한한 쩐 득 르엉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인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사과했다.

제일기획 출신으로 호찌민시에서 15년째 광고업을 하고 있는 최덕영씨는 이른바 TK대구경북) 출신의 '삼성맨'이다. 외국인투자법인으로는 처음 베트남에 광고업으로 진출한 최씨는 "지도자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베트남을 움직였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나중에 이한동 총리를 보내 2400만 달러를 지원해 이것으로 베트남 전국 학교의 책걸상과 칠판을 바꾸었다. 이것이 베트남과의 경협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미국과 싸워 이긴 승전국이라는 자부심과 자존심이 강해 아무한테나 돈을 받지 않는다. 김 대통령이 예를 갖춰 사과했기에 베트남이 한국의 지원금을 받은 것이다."

 베트남 호찌민 시내 바탄시장 근처. 시내 곳곳에 베트남 해방 및 통일 40주년 기념 전시물이 설치돼 있다.
 베트남 호찌민 시내 바탄시장 근처. 시내 곳곳에 베트남 해방 및 통일 40주년 기념 전시물이 설치돼 있다.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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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항불-항미 전쟁을 승리로 이끈 보 응웬 지압(Võ Nguyên Giáp, 1911~2013) 장군도 2005년 구수정씨와의 종전 3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베트남 전쟁에 한국이 참전해 남부 베트남에서 악행을 저질렀다. 우리는 한국군의 잔학성을 기억하고 있다. 한국정부와 국민들은 이에 대해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한국의 대통령들이 베트남을 방문해 이런 사실을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봤다. 참으로 잘한 일이다. 지금 한국과 베트남의 경제협력이 증진되고 있다. 과거는 지울 수 없지만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한다."

한국은 베트남이 경제성장의 발전 모델로 삼는 벤치마킹 국가다. 현 삼성전자 베트남 측 고문을 맡고 있는 팜띠엔 번(Pham Tien Van) 전 대사(관련기사 : 팜 띠엔 번 삼성전자 고문(전 주한 베트남대사) 인터뷰)는 "우리는 한국의 대기업과 재벌 육성정책을 연구했다"면서 "10여 년 동안 국영기업을 대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자원을 집중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중국에 진출했던 외국기업들이 중국의 불리한 기업환경 때문에 베트남을 선택하고 있다"면서 "실제로 많은 한국 공장들이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이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의 연관 고용 100만 명... 국영 석유회사 다음 2위 기업

 베트남 해방 및 통일 40주년을 기념해 4월 30일 오전 호찌민 시내 레 주안 거리에서 열린 통일 싸이클 대회에 참석한 한 외국인 선수가 구경 나온 베트남 시민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베트남 해방 및 통일 40주년을 기념해 4월 30일 오전 호찌민 시내 레 주안 거리에서 열린 통일 싸이클 대회에 참석한 한 외국인 선수가 구경 나온 베트남 시민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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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업들은 지난해 73억2000만 달러를 투자해 베트남의 최대 해외투자국이 됐다. 빈 대사의 지적처럼, 베트남은 이제 중국으로 떠났던 한국 자본의 새로운 집결지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 광저우에 진출했던 백색가전 업체들도 호찌민시 등으로 대거 이전할 계획이다.

그 중심에 삼성이 있다. 2009년에 가동한 박닌성 옌폰공단(제1공장, 25억 달러 투자)과 지난해 가동한 타이응웬성 옌빈공단(제2공장, 20억 달러 투자)의 삼성전자 스마트폰 생산기지는 '갤럭시S6-엣지' 등 삼성전자 프리미엄폰 수출물량의 40~50%를 생산한다. 현재 두 공장에서만 10만명의 현지 노동자들이 일하는데 1, 2, 3차 협력업체까지 합치면 고용인력은 100만 명으로 늘어난다.

타이응웬성은 추가로 삼성전자와 함께 협력업체들이 입주하는 180ha 규모의 디엠 투이(Diem Thuy) 공단을 개발 중이다. 응원 칵 람(Nguyen Khac Lam) 타이응웬성 송콩시 당서기는 "공항과 고속도로와의 접근성이 좋아 하노이와 한 시간 거리로 단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 만 쿠옹(Phan Manh Cuong) 공단관리위원장은 "이익이 나도 법인세 2년 면제 및 4년까지 50% 면제 혜택이 있고, 관내의 대학과 직업훈련센터에서 해마다 10만명 이상의 숙련 노동력을 공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협력업체들을 자문하는 유명호 프라임컨설팅 대표에 따르면 베트남 공단의 이점은 중국(월 500~600달러)의 1/3 수준인 베트남(150~200달러)의 임금 경쟁력이다. 일본 아베노믹스의 엔저 공세가 거듭될수록 한국 기업은 생산 비용을 낮추기 위해 중국보다 임금이 낮은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길 수밖에 없다. 삼성의 연관 효과는 한국 교민의 숫자가 호찌민시에서 하노이시로 역전된 데서 드러난다. 삼성공단이 하노이 인근에 조성되면서 하노이 교민은 지난 1년새 1만명에서 6만 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글로벌 시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19일 호찌민의 '사이공 하이테크 파크'에 TV 중심의 소비자 가전 복합단지 건설에 착공했다. 항구에서 가깝고 국가직영 공단으로 제반 서비스가 글로벌 수준인 첨단 산업공단이다. 삼성이 하노이 북부는 스마트폰, 호찌민은 TV 생산 및 수출 전진기지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베트남 500대 기업 조사에서 국영석유회사에 이어 2번째 기업으로 랭크되었다. 유명호 대표는 "삼성은 베트남 GDP의 28%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기업"이라면서 "삼성이 베트남의 색깔을 바꾸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국 등진 '보트 피플'의 '애국투자'도 경제발전 견인차

 전 만 쿠옹(Phan Manh Cuong) 타이응웬성 공단관리위원장(오른쪽)과 쩐 반 롱(Tran Van Long) 부위원장(가운데)이 삼성전자 휴대폰사업 협력업체들이 입주 예정인 디엠 투이(Diem Thuy) 공단의 공사현장에서 설계도면을 펼쳐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전 만 쿠옹(Phan Manh Cuong) 타이응웬성 공단관리위원장(오른쪽)과 쩐 반 롱(Tran Van Long) 부위원장(가운데)이 삼성전자 휴대폰사업 협력업체들이 입주 예정인 디엠 투이(Diem Thuy) 공단의 공사현장에서 설계도면을 펼쳐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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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조국을 등졌던 '보트 피플'을 포함한 300만명의 비엣 끼에우(Viet kieu, 해외 거주 베트남인)도 베트남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1996년부터 보트 피플의 국내 투자를 허용해 해마다 100억 달러 상당의 막대한 자금이 들어오고 있다.

쩐 띠엔 번 전 대사는 "보트 피플에 대해 과거를 묻지 않는 정책을 실시한 것은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를 복구하고 민족 화해를 이루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구수정 박사는 "보트 피플의 일부는 해외 반정부 활동의 근거지임에 비추어 베트남 정부의 유연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보프 피플은 대부분 남베트남 출신이다. 이들의 고향인 호찌민 등 해방된 남부지역은 40년 전과 비교하면 경이로운 발전을 이룩했다. 베트남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17%, 국토면적의 8%를 차지하는 남부 중점경제지역(호찌민시, 바리아-붕타우성, 동나이성, 롱안성, 빈증성, 떠이잉성, 빙프억성, 띠엔장성을 포함한 8개성-시)은 전국 GDP의 42%, 수출액의 40%, 국가에 납부하는 세금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남부 중점경제지역이 없으면 베트남 경제도 없다고 할 만큼 산업, 무역, 서비스, 금융의 중심지역으로 부상했다.

보트 피플의 '애국 투자'는 화교 자본이 중국의 개혁개방과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기자는 한중 수교 1년 전인 1991년에 중국 개혁개방의 현장인 상하이를 방문해 '세계로 열린 11억 대륙의 창(窓)'을 주제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베이징이 정치의 중심지라면, 중국 국부와 수출의 1/6을 차지한 상하이는 경제의 중심지였다.

당시 중국의 1인당 소득이 300달러 선인데 상하이는 유일하게 1인당 소득이 1천 달러가 넘는 도시였다. 베트남도 북쪽의 하노이가 정치 중심지라면 호찌민은 경제 중심지다. 현재 호찌민시는 국내총생산(GDP)의 1/5, 국가에 납부하는 세금총액의 1/3을 차지한다. 베트남의 1인당 소득은 2,000달러 수준이지만, 호찌민시의 1인당 소득은 5,000달러를 넘는다. '베트남의 상하이'인 셈이다.

40번째 4월30일을 맞이해 하노이의 호찌민박물관뿐만 아니라 호찌민 시내의 전역이 'Before & After'를 비교한 거대한 전시장이었다. 길게는 도이 머이를 추진한 30년 전, 짧게는 10년 전과 오늘을 비교한 'Before & After'는 결국 인민을 먹여 살리지 못하는 혁명은 혁명이 아니라는 호찌민의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준다.

1969년 그가 죽을 때 남긴 것은 옷 몇 벌과 낡은 구두 그리고 책 몇 권이 전부였다. 그로부터 6년 후인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함락되어 이듬해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선포되고 남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은 호찌민시로 개칭되었다. 지금 호찌민은 '세계로 열린 인도차이나 반도의 창(窓)'이다. 그 중심에 삼성이 있다.

 40번째 4월30일을 맞이해 호찌민 시내는 전역이 ‘Before & After’를 비교한 거대한 전시장이었다. 이는 인민을 먹여 살리지 못하는 혁명은 혁명이 아니라는 호찌민의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준다.
 40번째 4월30일을 맞이해 호찌민 시내는 전역이 ‘Before & After’를 비교한 거대한 전시장이었다. 이는 인민을 먹여 살리지 못하는 혁명은 혁명이 아니라는 호찌민의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준다.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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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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