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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꽃집으로 말하면 성수기가 끝나고 비수기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가 되면 꽃꽂이 문의와 꽃집 창업 문의가 꼭 몇 건씩은 들어온다.

3월. 꽃피는 춘삼월이 되면 꽃집은 우중충했던 겨울을 걷어내고 나비 같은 꽃들을 밖에 내놓고 물을 주며 폼을 내기 시작한다. 5월은 대목이다. 어버이날, 스승의 날, 로즈데이, 성년의 날 그리고 10여 년 전 새로 생긴 부부의 날, 거기에 석가탄신일까지…. 꽃이 가장 많이 쓰이는 달이니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요즘은 덜하지만 예전엔 5월 한 달 벌어서 6, 7, 8월 석 달 비수기를 난다는 말도 있었을 정도다. 지난 로즈데이 때엔 우리 가게도 준비한 꽃이 모두 동이 나 발길을 돌리는 고객님들이 있을 정도였으니 대박이라고 칭하기 충분했다.

오늘도 플로리스트를 꿈꾸는 어여쁜 아가씨가 다녀갔다. 오자마자 몇 마디 나눈 후에 대뜸 스마트폰을 꺼내고 사진을 몇 장 보여준다. 한눈에 봐도 무척이나 예쁜 가로수길, 강남, 홍대 앞, 서래마을 등의 예쁜 꽃집들이다.

"꽃은 왜, 언제부터 하고 싶었던 거예요?"
"요즘에 친구들이 카톡이나 카스에 예쁜 꽃집이랑 카페 사진 올리는데, 이런 데서 꽃 꽂고 살면 좋을 것 같아요. 회사 다니는 것보다 신경도 스트레스도 덜 받고요."
"그럼 꽃은 좋아해요? 꽃이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을 정도로 좋아하나요?"
"그건 아직 모르겠어요. 근데 하다 보면 좋아지겠죠?"
"그렇죠. 처음엔 누구나 서먹서먹하다가 점점 좋아지긴 하겠죠."
"네. 자격증 따고 꽃집 하고 조용하게 지내면서 수입도 올리고 그러고 싶어요."

꽃으로 먹고 산다는 것의 의미

예쁘지 않은 손에서 태어나는 아름다운 꽃
▲ 예쁘지 않은 손 예쁘지 않은 손에서 태어나는 아름다운 꽃
ⓒ 박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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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쯤 되면 심호흡부터 해야 한다.

'그래, 화내지 말고 흥분하지 말고 차근차근. 아직 어리잖아. 아직 젊잖아.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잖아. 10년 전 나처럼 아직 배워야 할 나이니까. 나는 꽃을 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니까. 그래야 할 의무가 있잖아.'

이렇게 다짐하고 말해줬다.

"요즘에 방송사마다 나오는 스타 셰프들 레스토랑 이런 거 때문에 상당히 뜨겁죠? 그리고 개그맨 이휘재씨 아내도 플로리스트라고 방송에 나오는 바람에 또 뜨거워지기 시작했고요. 대부분 유학파에 잘나가는 직업에 수입에 방송까지…. 모두가 꿈꾸는 1%죠.

맞아요. 그런데 내 생각에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함이 10%라면 그 뒤에 감춰진 고단함은 90%일 거예요. 셰프들 같은 경우는 만날 불에 데고, 칼에 베이고…. 저희들처럼 꽃을 만지는 사람들은 꽃 가시에 찔리고 찢기고 칼과 가위에 베이다 보니 손이 남아나질 않아요. 발레리나 강수진씨의 발이나 김연아 선수의 발처럼 우리들 손을 보면 핸드크림을 그렇게 많이 발라도 거칠기가 때밀이 타올 저리 가라 할 정도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의 손을 부끄러워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이 손으로 예쁘고 아름다운 거 만들어서 고객님들을 감동을 준다는 자부심으로 오히려 자랑스러워하죠.

'꽃집의 아가씨는 예쁘다'는 노랫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에요. 가시에 찔린 손과 꽃물에 물든 옷은 엉망이지만, 늘 아름다운 것을 연구하고 만들어내는 마음과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느 배우 못지않게 예쁘죠.

아주 오래전에 영화 <카라>에서 김희선이 꽃집 아가씨로 나오는데 그때 하얀색 원피스에 카라를 들고 나오던 장면 있었거든요. 그거 때문에 꽃집 아가씨에 대한 환상이랄까? 뭐 그런 게 조금씩 생겨난 것 같아요. 그래서 꽃집 아가씨들이 그렇게 레이스 스커트를 즐겨 입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예쁜 꽃집들은 정말 많아요. 요즘 감각 있는 인테리어 업자들 많잖아요. 그런 곳에 양재동이나 서초동 꽃시장에서 사온 소품들과 수입꽃 소재들로 꾸며 놓으면 카페풍의 예쁜 꽃집이 되죠.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그렇게 꾸민 만큼 소득을 올리려면 장사 수완이 아주 좋아서 많은 업체들을 고객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꽃을 아주아주 남다르게 잘 만들어야 해요. 그렇지 못하고 남들 다 하는 유행 타는 고만고만한 꽃을 만들어내다 보면 뒤처지게 되는 거예요.

요즘 고객들은 정보가 아주 빨라요. 꽃 디자인 사진도 우리보다 더 많이 갖고 있어서 비교를 하곤 하죠. 보세요. 저보다 예쁜 꽃집 더 많이 알고 사진도 준비해 오셨잖아요? 뭐 비싼 꽃 사다가 비싼 자재로 포장해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러면 단가가 높아져 고객 잡기가 어려워져요. 결국 재고와 관리비 손실은 다 내가 떠안게 되는 거랍니다. 우아해 보이는 겉모습과 화려한 명함에만 빠져 살다 보면 가게에 있는 식물들은 죽어 나가요. 고객들이 물어보는 거에 대답을 못하면 전문성도 자꾸 떨어져 나가고요.

과일이나 채소처럼 꽃들도 제철꽃이 있어요. 계절마다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을 우리가 조금씩 손을 대서 돋보이게 해 판매해야 하는데요. 그것을 공부하지 않으면 바로 고상한 취미만 하다 마는 게 되는 거예요.

전 올해로 꽃을 만진 지 12년째, 꽃집을 연지는 11년째인데 아직도 꽃 하면 어렵고 힘들어요. 하지만 좋아하니까 그만둘 수 없고 평생해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예쁜 꽃집 말고 꽃을 예쁘게 만들 수 있는 꽃집을 해야 해요. 그래야 고객이 감동하고, 그 감동이 결국 내 감동이 되는 거예요.

일명 '노가다'판인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자격증이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내가 화려해지기보다는 꽃을 화려하게 만들기 위해 머리 속에 꽃을 두고,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해요.  꽃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하세요. 그런데, 하려거든 제대로 배워서 반드시 끝까지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세요."

12년 뒤에도 동네 꽃집으로 기억되고 싶다

쑥쑥 자라라 꽃님아~라고 노래하는 아이를 보면 행복해진다
▲ 아이들이 주는 사랑으로 쑥쑥 자라는 꽃들 쑥쑥 자라라 꽃님아~라고 노래하는 아이를 보면 행복해진다
ⓒ 박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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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야기하니 무섭단다. 꽃을 너무 쉽게 봤다고, 다시 생각해봐야겠다고 한다. 그런데 예쁜 꽃집은 눈에 자꾸 아른거린단다.

그도 그럴 수밖에…. 몇 년 전에는 예쁜 카페 붐이 일었을 때가 있었다. 그 유행이 꽃으로 옮겨진 것일 뿐 달라진 건 없다. 최근에는 드라이 플라워의 인기가 급상승하는 바람에 재료 가격이 올랐고, 또 그렇게 예쁘게 꾸며놓은 모습들이 인터넷 여기저기에 포스팅돼 사람들을 유혹한다.

나는 앞으로 12년 뒤에도 지금과 같은 동네 꽃집을 하고 싶다. 봄이면 동네 아이들이 들러 꽃씨를 심고 토마토와 가지를 심으며 잘 키워 따먹는 방법을 묻고, 아기 엄마들이 들러 아이들에게 좋은 공기정화 식물에 대해 묻고 식물 병해충을 치료해주고 시원하게 물을 주며 가꾸는 모습이 일상인 꽃집.

남들 다 하는 꽃보다 우리 집만의 독특한 디자인으로 기억되고 싶고, 빈티지한 플라워 샵의 플로리스트라는 어려운 말보다 그냥 누구나의 동네 꽃집의 꽃하는 사람, '꽃쟁이'가 되고 싶다.


태그:#전문직, #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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