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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만진 흙에는 오히려 좋은 세균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만진 흙에는 오히려 좋은 세균이 포함되어 있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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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꿍이는 오늘도 긁는다.

저녁 무렵, 오늘도 까꿍이는 피부를 긁어대기 시작한다. 엉덩이부터 시작해서 허벅지, 허리, 다리 등등. 벌겋게 부어오르고 군데군데 딱지가 앉아있는 녀석의 피부를 보고 있노라면 부모로서 심난하기 짝이 없다. 겨울만 되면 영락없이 긁어대는 나를 닮아서 그런 건 아닌지 괜히 미안하기도 하다.

먹고 싶은 과자 참는 아이... 안쓰럽다

푹신푹신한 낙엽 속에서
 푹신푹신한 낙엽 속에서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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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까꿍이의 피부는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다. 아내의 표현에 따르자면 아토피가 아닌 악건성 피부라나? 어쨌든 저녁에 씻겨주면 꼭 보습을 위해 로션을 발라주고, 과자나 음료수 등도 웬만하면 못 먹게 한다.

"이제 그만 먹을래. 더 먹으면 가려워."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달달한 과자를 먹다가도 자제할 줄 아는 까꿍이, 그러나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부모로서 녀석이 대견한 한편으로는 짠하기 그지없다. 어쨌든 7살짜리 아이가 과자나 사탕을 스스로 안 먹겠다고 할 정도로 피부가 가렵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종이 기저귀 대신 천 기저귀를 썼고, 세재도 천연세재를 이용했고, 첫아이인 만큼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유기농 음식도 가장 많이 챙겨먹였다. 그런데 녀석의 피부는 왜 이렇게 속을 썩이는 것일까? 단순히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나서? 아님, 태어난 이후 주위 환경이 깨끗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목할 사실은, 이와 같은 고민이 우리 집안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의외로 아토피와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아이들이 많다. 뭘 특별하게 잘못 먹은 것도 아니고, 딱히 불결한 환경에서 자란 것도 아닌데, 내가 어렸을 때와 비교 해봐도 훨씬 많은 수의 아이들이 아토피와 알레르기로 고생 중이다.

사실 내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1980년대에는 먹거리나 환경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던 탓에 훨씬 더 많은 불량식품이 존재했고, 엄청난 화학물이 첨가된 세제들이 버젓이 팔렸다. 우리는 어린 시절 그 불량식품들을 사랑했고, 세제가 독할수록 옷이 더 깨끗해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아토피와 알레르기가 흔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때보다 지금의 아이들이 아토피와 알레르기에 더 취약한 것일까? 다행히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 답을 구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도서 <청결의 역습>을 읽고 나서였다.

항균 사회의 함정

도서 <청결의 역습> 겉표지
 도서 <청결의 역습> 겉표지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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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청결의 역습>은 현대 문명이 추구하는 현대적 위생이 오히려 인간 본연의 면역시스템을 교란시킨다는 내용의 글이다. 저자는 건강 관련 다큐를 제작해 온 방송 PD로서, 자신이 왜 이 주제에 천착하게 되었는지 간단하게 밝히고 있는데, 그 이유인즉슨 앞서 언급했던 내가 까꿍이를 보며 가졌던 문제의식과 다르지 않았다. 왜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와 달리 아토피와 알레르기에 약한 걸까?

저자는 아토피나 알레르기 등이 예전에는 많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서 급증하기 시작했고, 특히 못 사는 지역보다 잘 사는 지역에 흔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는 결국 위의 질병들이 소위 선진국병으로서 사회의 현대화와 관련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 아토피나 알레르기 등도 환경호르몬, 식품첨가물, 중금속, 공기오염 등 산업화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저자가 내린 결과는 이외이다. 아토피나 알레르기가 앞서 언급한 산업화의 부작용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깨끗한 위생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 모든 세균은 없애야 한다는 청결에 대한 강박이 우리 몸에 필요한 좋은 세균마저 죽이고 이로 인해 오히려 인간의 몸은 각종 면역질환을 앓게 되었다는 가설.

"두뇌와 마찬가지로 면역계도 배워야 한다. 면역계가 발달하기 위해서는 세균과의 만남도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인 것이다. 면역계의 초기 발달 과정에서 세균과 충분히 접촉하지 못하면 면역계는 알레르겐에 과도하게 반응하는데, 이것이 알레르기 질환이다. 이런 교육적 자극이 없을 경우, 면역계는 통제 불능의 싸움꾼이 돼버리고 만다. 면역계가 꽃가루나 땅콩처럼 무해한 것들, 집먼지 진드기나 음식첨가물같이 참고 넘어가도 되는 것들을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죽자고 덤벼든다." - <청결의 역습> 본문 75쪽 중에서

"미코박테리아는 포유류의 진화 과정에 계속 존재했던 것으로, 반드시 필요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과 미코박테리아는 그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진화해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은 미코박테리아가 당연히 존재할 거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콘크리트 도시에, 소독한 수돗물에, 이 세균은 이제 없다." - <청결의 역습> 본문 76쪽 중에서

저자는 잘못된 면역체계 때문에 고생하는 수많은 예시들을 열거한다. 꽃가루 알레르기부터 시작해서 천식, 구취, 설사, 아토피, 비만, 암, 심지어는 자폐마저 그 중 하나로 포함시킨다. 그리고 그 사례마다 현대의 잘못된 위생관념이 관통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과거의 것은 모두 비위생적이고, 청결한 환경을 위해서는 항균과 살균을 해야 한다는 어설픈 생각이 아주 오랜 시간을 통해 인간의 DNA에 각인된 면역시스템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질병의 원인이 되는 '감염'과 무해한 '세균 정착'은 구분해야 한다. 대중적인 전염병은 농경이 시작된 약 1만 년 전에 출현하여 도시가 생긴 5천 년 전에야 비로소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이에 반해 하천의 물과 숲속의 진흙에 들어 있는 미코박테리아나 농장 먼지 속에 있는 세균들은 인간의 진화 과정 내내 우리와 함게 있었다. 진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을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생물학계의 명언이 있다. 적절한 면역조절세포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들 무해한 세균이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 <청결의 역습> 본문 81~82쪽 중에서

인간은 40억 년 이상 세균과 곰팡이와 바이러스와 기생충을 몸에 지니고 살아왔다. 우리의 몸은 그 공존 속에서 진화했으며, 면역체계를 발달시켜 왔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의 유전자 코드만을 분석하면 모든 질병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판이었다. 우리와 공존하고 있는 세균이나 박테리아 등도 결국 우리 몸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자연분만의 중요성도 이야기한다. 우리는 대게가 지금까지 자연분만이 제왕절개보다 낫다고 직관적으로만 생각해 왔는데, 실제로 면역체계에 있어서 자연분만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태아가 산모의 질을 통과하며 겪게 되는 유익균 중심의 세균 샤워가 외부에서 태아가 유해균으로부터 감염될 확률을 낮추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맹장은 어떠한가. 지금까지 우리는 맹장의 기능도 잘 모르는 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하면서 맹장을 떼어왔지만, 최근 연구에 의하면 맹장은 면역체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심한 설사 등으로 생물막을 포함한 유익균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 다시 좋은 세균들로 장을 채울 수 있도록 세균을 재공급하는 기관이 바로 맹장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지금까지 우리는 근대서부터 시작된, 인간의 우월함을 전제로 한 그릇된 위생관념으로 인해 아주 오랫동안 인간이 만들어왔던 면역시스템을 교란시켜왔다. 유익균과 유해균을 구분하지 않고 항균제로 손을 씻었으며 그 결과 오히려 유해균이 더 빨리 증식되는 결과를 얻어냈다. 현재 우리의 아이들이 앓고 있는 아토피나 알레르기 등은 바로 이와 같은 맥락의 면역질환인 것이다.

까꿍아, 자연에서 뛰어놀자

흙장난을 하고 있는지, 노동을 하고 있는지
 흙장난을 하고 있는지, 노동을 하고 있는지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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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처럼 돌아가야 할까?

아니다. 아무리 현재의 위생체계가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하더라도 마냥 불결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는 없다. 어쨌든 현대 문명이 청결을 추구했던 것은 불결한 환경에서 질병에 거릴 확률이 더 높고, 그 질병이 더 치명적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저자는 위생을 포기하라는 말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미생물, 유익균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 한다. 바로 현대문명과 자연과의 접점을 찾으라는 것이다.

"모든 문명마다 과거에 어떠했는가에 대한 생각이 있다고 봐요. (중략) 선조들이 생활하던 양식 말입니다. 대도시가 아니라 작은 마을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거주했던 당시의 생활방식, 그 시점으로 약간만 되돌아가서 균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너무 돌아가도 좋지 않습니다. 전염병이 있으니까요. 그 중간 지점이 어디인지는 여러분이 더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 <청결의 역습> 본문 225쪽 중에서

자연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건 매우 중요하다. 정서에도 좋지만 면역체계를 키우는 데 있어서도 결정적이다. 어렸을 때 자연에서 유익균을 많이 접하면 접할수록, 우리의 면역체계는 건강해지며, 도시에서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는 유해균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이미 숲학교 등이 유행이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 사회 현실을 보자. 우리의 아이들은 온통 회색 도시 속에 갇혀 경쟁의 수레바퀴 밑에서 신음하고 있다. 산에서 들에서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벌써부터 성적을 고민하고 있으며, 없는 시간을 쪼개어 놀아봤자 pc나 스마트폰을 주물럭거리기에 바쁘다. 어른들은 그 모든 것들이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항변하지만 부질없다. 우리 아이들의 삶은 터무니없이 바쁘고 삭막하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아이들을 자연에 풀어놓자. 어릴 때는 자연에서 뛰어놀아야 한다. 그것이 만고의 진리다.

시간 가는지 모르는 흙장난
 시간 가는지 모르는 흙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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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청결의 역습>(유진규 지음 / 미디어초이스 제작 / 김영사on 펴냄 / 2013.10 / 1만5000원)



청결의 역습 - 청결 강박에 사로잡힌 현대인에게 전하는 충격적인 보고서

유진규 지음, 미디어초이스 방송제작, 김영사on(2013)


태그:#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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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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