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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급휴직 동의서. 2016년 1월까지로 무급휴직 기간을 명시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복직 날짜가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희망퇴직 신청서로 보고 있다.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 제공>
 유무급휴직 동의서. 2016년 1월까지로 무급휴직 기간을 명시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복직 날짜가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희망퇴직 신청서로 보고 있다.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 제공>
ⓒ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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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잔인하다. 대한민국에서 해고와 실직 앞에 놓인 노동자라면 '희망'이라는 단어는 더욱 잔인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사회는 이들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남발한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올해 초 한국지엠 군산공장 노사는 근무형태를 주간연속 2교대에서 1교대제로 전환하고 시간당 생산 대수를 줄이는 것에 합의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일자리 감소는 하청업체에 줬던 일감을 정규직이 배분받아 메우기로 했다. 500여 명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감 축소로 일터를 떠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지난 4월, 한국지엠 군산공장의 하청업체들은 일제히 사실상 희망퇴직이라고 부를 수 있는(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희망퇴직' '구조조정' '정리해고'라고 표현했다) 유·무급휴직 동의서를 받았다.

여기서 '희망'의 의미는 분명 앞서 말한 '희망'과는 다른 의미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는 퇴직이라는 의미의 '희망'. 그러나 현실에서 '희망'은 쫓겨남을 의미한다.

비정규직 생존권과 맞바꾼 명분, 쌍용차 사태 재현한 군산시

희망 아닌 희망퇴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 앞에 군산시는 또 다른 '희망'을 제시했다. 쫓겨난 이들을 위한 맞춤형 상담 인력을 제공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희망드림센터'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에 맞춰 출범한 '희망드림센터'는 재취업과 창업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군산시청에 사무실을 개소해 전라북도 일자리정책담당관, 고용노동부 산하 노사발전재단, 군산고용센터, 군산상공회의소, 군산여성인력개발센터 등 일자리 관련 행정기관과 지역 경제단체들이 힘을 모았다. 노동부는 이 센터를 우수 사례라면서 홍보에 적극적이다.

군산시 관계자는 "성과가 상당히 있다"라면서 "취업이 완료된 이는 30~40명이고 확정적인 인원만 90여 명이다, 500명 중에 이 정도면 엄청난 성과"라고 자화자찬했다.

지난 4월 11일, 군산시는 시청 1층 로비의 기업홍보관에 한국지엠 승용차를 연중 전시하기로 하고 제막식을 열었다. 또한, '내고장 생산차 애용하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기로 했다. 군산시가 한국지엠을 향토기업으로 치켜세우며 기업 홍보에 앞장서고 있지만, 이 공장에서 떠나는 수백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군산시의회 등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사진 출처 - 군산시청>
 지난 4월 11일, 군산시는 시청 1층 로비의 기업홍보관에 한국지엠 승용차를 연중 전시하기로 하고 제막식을 열었다. 또한, '내고장 생산차 애용하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기로 했다. 군산시가 한국지엠을 향토기업으로 치켜세우며 기업 홍보에 앞장서고 있지만, 이 공장에서 떠나는 수백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군산시의회 등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사진 출처 - 군산시청>
ⓒ 군산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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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드림센터가 사실상 구제했다고 이야기하는 30~40명의 신분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또 다른 공장에 비정규직 신분으로 들어가게 됐다. 기간 근무 연수는 인정되지 않는 재취업.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간 곳에서 적응을 해야만 하는 이들의 평균 연령은 30대 후반에서 40~50대에 이른다.

이들은 중년에 접어들 무렵, '미생'이 됐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군산시의 구제기관 이름에는 '희망'과 '드림'이 붙어있다. 정말 이들에게 꿈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그들의 미래는 정말 빛날 수 있을까. 드라마 <미생>처럼 결국 '완생'은 되지 못했지만, 즐거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을까.

한국지엠 군산공장 철수 논란이 한창이던 시기, 군산시와 지역 유지들은 정규직 노조의 빠른 합의를 독촉했다. 군산 경제의 침몰이라는 우려가 작용했다. 압박은 상당했다. 여론이 움직였고, 지역언론은 그 여론에 춤을 췄다. 그리고 지난 1월 정규직 노조는 사측과 협상을 타결했다.

"정규직이 살아남고 비정규직이 사라지면 군산 경제가 살아나나요? 물량이 축소되고 비정규직 수백 명이 일자리를 잃으면, 그 밑에 하청업체들도 위기를 맞고, 지역 경제도 후퇴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군산시가 잘못된 캠페인으로 본질을 흐렸어요. 다 같이 살아남았을 때 살아남는 것이죠. 군산시는 신차 생산을 얻어냈다고 좋아했는데, 한국지엠은 대신 물량을 줄였어요. 1교대 조건으로 신차를 받았는데 당시 군산시는 환영을 하면 안 되죠. 그리고 당시 정규직지회장을 군산시장이 직접 만나서 잘 좀 합의해달라고 당부를 했는데, 사실상 압박 아닙니까?"(전제환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장)

군산시와 한국지엠, 지역 유지가 모두 자화자찬으로 매듭지은 합의. 군산시는 한국지엠 신차 홍보를 위해 시청 1층에 홍보관까지 무상으로 마련해줬다. 비정규직을 일터 밖으로 내몰고 얻은 대가였다. 쌍용차 사태를 보는 듯하다. 노동자의 대량 해고 앞에 등 돌린 정부, 쌍용차 사태 당시 이명박 정부의 모습을 야당 출신 시장이 그대로 재연했다.

비정규직이 쫓겨나고 군산시와 노동부, 지역 자본은 명분을 얻었다. 일자리는 없어졌고, 한국사회 비정규직 차별 문제와 고용 불안의 현실을 군산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해법을 찾기보다 쉬운 길을 찾은 결과다.

한국지엠 군상공장의 이야기를 전제환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장을 통해 들어봤다.

"비정규직은 건전지... 예고없이 교체하네요"

4월15일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가 출범했다. 빼앗긴 권리를 찾겠다는 이들이 첫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4월15일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가 출범했다. 빼앗긴 권리를 찾겠다는 이들이 첫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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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회사는 물량이 없다는 이유로 구조조정을 시도해요. 그럼 피해 보는 것은 우리 비정규직이죠. 더 이상 참을 수 없고,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조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4월 15일 금속노조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가 창설됐다. 한때 900명을 넘겼던 비정규직이 모두 쫓겨난 시기, 11명이 뭉쳤다.

"하청업체는 폐업을 한다고 하고 앞은 보이지 않고, 생계는 유지해야 합니다. 저도 초등학교 자녀 2명이 있어요. 젖먹이를 둔 동료도 있죠. 비정규직 노조 가입해서 싸우자고 제안하는 것도 힘이 들어요. 희망퇴직으로 나가는 이들 마음도 무척 아파요. 5년의 짧지 않은 공장생활이지만, 동료들의 눈물을 처음 봤습니다."

이제는 그런 동료를 만나는 것조차 힘들다. 매일 아침 군산공장 선전전. 유인물 배포량도 현저히 줄었다. 노조가 가야 할 길이 멀다. 노조를 만들었지만, 아직 달라진 것은 없다. 한국지엠은 물론이고 하청업체 대표들도 면담과 교섭 자리에 나오지 않는다. 사무실 마련은 꿈도 못 꾸는 일이다.

자본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철저하게 구분한다. 같은 출근버스를 타고, 같은 라인에서 작업을 하고, 같은 옷을 입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는 것은 명찰 하나. 밖에서는 구분할 수 없지만, 공장 안에서 누구나 이 명찰로 구분이 가능하다. 그 구분은 곧 차이를 의미한다.

"작업이 까다롭고, 일이 힘든 일을 모두 비정규직들이 도맡아 했죠. 이제는 그 일을 정규직이 하게 됐어요." 

"정규직·비정규직이 하나 돼 싸워야 합니다"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 선전전 모습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 선전전 모습
ⓒ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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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한국지엠 군산공장은 근무 형태 변경과 함께 물량 감소로 인해 일자리를 줄였다. 이미 지난해에 360명의 비정규직이 공장 밖으로 떠났다.

한국지엠은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근무시간 축소와 시간당 생산 대수 축소를 통해 비정규직 일자리를 줄였다. 지난해부터 군산공장 철수설이 돌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군산시는 900여 명의 비정규직 구조조정 카드로 대응했다.

"짧게는 4년 길게는 13년까지 회사에서 오로지 청춘을 다 바쳤는데, 이제 필요 없으니 나가라고 하네요. 비참하고 억울합니다. 왜 비정규직만 이유도 묻지 않고 해고를 당해야 하는지 너무 분통합니다."

구조조정에 앞서 동의도 구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은 하나의 '건전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언제 그 생명을 다할지에 대한 예고는 없다. 해고는 그렇게 불현듯 찾아왔다.

"회사는 공장의 위기라고 외적으로 설명하지만, 실상은 아니에요. 전 세계적으로 한국지엠의 승용차(올랜도와 크루즈, 쉐보레)는 물량이 넘쳐납니다. 그런데 그 물량을 안 주는 거예요. 순전히 경영적인 부분입니다. 정규직 노조도 이에 맞서야 하지만, 그렇게 못하고 있어요."

이렇게 쫓겨나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비정규직이 다 잘려나가면 그다음 목표물은 분명 정규직이 될 터. 함께 싸워도 모자를 판인데,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제 살을 내주는 것이 답은 아니에요. 우리 다음은 분명 정규직입니다. 현실만 지키려 하다 보면 더 많은 것을 내줄 수밖에 없어요. 작년에 1교대를 합의해주니, 올해는 물량 생산 축소를 요구하잖아요. 이 상황을 답답해하는 정규직 조합원들도 있어요. 자본의 습성이 그렇잖아요. 하나 내주면 더 줘라, 더 줘라. 이제 답을 찾아야 합니다."

'귀족노조'라는 왜곡된 시선과 노동자를 외면하는 사회에 대항하기에 노조의 힘은 너무 약하다. 그래서 노조는 연대를 외치고, 단결을 말한다. 전제환 지회장은 이런 부정적인 현실 앞에서 '희망'이라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이 머리를 맞대고 어려운 답을 찾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전 지회장은 이런 현실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투쟁'뿐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빼앗긴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죠."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 선전전 모습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 선전전 모습
ⓒ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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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실 정규직이었어요"... 법정 투쟁 들어간 비정규직

노조는 지난 1월 한국지엠을 상대로 불법파견 소송이라고 불리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했다.

"2013년 2월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847명 전원이 불법파견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있었어요. 당시 사장은 불법행위로 벌금을 받았죠. 지난해 12월에는 창원지방법원이 한국지엠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낸 5명의 조합원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판결했죠. 군산공장도 다르지 않아요. 노동부가 2005년 11월 9일 10개 업체(GM군산공장 하청업체)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리기도 했어요."

최근 한국지엠 군산공장은 시간제 일자리 문제로 한 차례 논란을 불렀다. 원광대 자동차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3개월 초 단기간 아르바이트를 모집한 게 바로 그것. 이 3개월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제시한 유급휴직 기간 3개월과 일치한다.

원광대학굥에 군산공장 알바 채용 공고. 비정규직이 사라진 자리에 초단기 알바생을 고용하려 한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원광대학굥에 군산공장 알바 채용 공고. 비정규직이 사라진 자리에 초단기 알바생을 고용하려 한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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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공장은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학교에서 실습생 요청이 있어서 허락한 것"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전북인터넷대안언론 <참소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원광대는 "한 자동차학과 교수로부터 제안을 받고 공문으로 요청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군산공장 사정을 잘 몰랐는데, 만약 보도된 내용이 사실이라면 상당히 불쾌하다"라고 표명했다.

비정규직이 쫓겨나고, 그 일을 대신하는 정규직과 아르바이트. 모두 노동자이며, 똑같이 고용불안을 느낀다. 그곳이 바로 한국지엠 군산공장이다. 그 공장 한 쪽에는 일자리를 지키는 방법으로 차별에 저항하는 투쟁을 선택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11명의 투사가 된 그들은 "더 단단하게 뭉쳐서 당당한 정규직으로 일터를 지킬 겁니다"라는 다부진 각오를 밝힌다. 왜곡된 희망 속 '진짜 희망' 찾아 나선 이들의 여정은 이 각오에서 출발한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인터넷대안언론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한국지엠,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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