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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리병원을 반대한다"라고 말하면 "민간 병원은 모두 영리가 아닌가?"라고 반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 개인 병의원은 모두 영리를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의료시스템에서는 병의원이 추구하는 영리를 제도적으로 제한을 하고 있다.

우선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로 인하여 모든 병의원은 건강보험 요양기관 지정을 거부할 수가 없으며, 보험급여기준을 고시하여 의료비의 지나친 폭리를 제도적으로 막고 있다. 즉, 의사들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가격 결정권이 의사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통제 하에 있기 때문에 병의원의 지나친 이윤추구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의 의료비 통제는 개인 자영업자인 의사들에게는 지나친 규제로 느껴져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나친 저수가는 병원 경영을 어렵게 하며, 제한적인 보험급여기준으로 인한 진료비 삭감은 소신진료를 어렵게 한다고 주장한다.

현실적으로 진료과목에 따라 의사들의 수입도 차이가 많이 나며, 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보험급여로 통제받는 의료서비스의 가격 결정권을 되찾기 위해 의사들은 비급여 진료를 선호하게 되고 과잉진료를 통하여 영리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다.

민간 병원은 모두 영리 병원 아니냐고?

만일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서 민간 보험사나 의료기관이 주도적으로 가격 결정을 할 수 있는 영리병원이 합법화 된다면, 영리병원은 건강보험 수가 적용을 받지 않는 만큼 진료비를 경영 논리에 따라 결정할 것이다.
 만일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서 민간 보험사나 의료기관이 주도적으로 가격 결정을 할 수 있는 영리병원이 합법화 된다면, 영리병원은 건강보험 수가 적용을 받지 않는 만큼 진료비를 경영 논리에 따라 결정할 것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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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외과나 대형 네트워크 치과에서나 볼 수 있던 코디네이터가 언제부터인지 피부과는 물론이고 안과, 정형외과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보험급여가 되지 않는 각종 검사, 시술, 수술을 권유하고 의료비 부담을 걱정하는 의료 소비자에게 의료실비보험을 통해 가격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도 안내한다. 보험사들은 제2의 국민건강보험이라고 의료실비보험을 홍보하며 소비자를 민간보험시장으로 내몰고 있다.

개인이 운영하는 병의원보다 법인이 운영하는 병원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현재의 의료법은 의료법인을 비영리법인으로 제한하여 법인병원의 이윤추구를 근본적으로 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양병원 같은 비의료인이 경영하는 법인의 병원은 부당청구, 과잉진료 등의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의료서비스의 가격 결정권을 국가에서 통제하는 현재의 의료제도 하에서도 이처럼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그런데 만일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서 민간 보험사나 의료기관이 주도적으로 가격 결정을 할 수 있는 영리병원이 합법화 된다면, 영리병원은 건강보험 수가 적용을 받지 않는 만큼 진료비를 경영 논리에 따라 결정할 것이다.

더불어, 민간 보험사들이 영리병원에 특화된 민간보험 상품 판매에 나서면 공공의료는 서서히 붕괴될 수 있다. 이러한 영리병원이 외부에서 운영 자금을 투자받아서 이익금을 배당한다고 하면 투자자들은 보다 많은 이익을 원할 것이다. 병원은 이윤산출이 높은 일에 집중하게 돼 이윤이 나오지 않는 진료과목과 환자는 소외될 것이며 이는 의료체계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이처럼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의료기관은 이윤만을 추구하게 되고 이는 의사들이 주장하는 소신진료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어 직능 자체를 왜곡시킬 우려가 크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약국도 영리법인이 운영하는 법인약국이 합법화 된다면 약사들은 이윤추구를 위해 불필요한 의약품의 과소비를 조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료체계의 붕괴는 결국 의료소비자인 국민들에게 의료인과 의료기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폭등한 의료비는 의료기관의 이용을 어렵게 할 것이다. 이는 미국의 현실을 보면 상상이 가능하다.   

녹지국제병원, 국내 의료체계 근간 흔든다

반면에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의료개혁의 일환으로 2017년까지 주요 도시의 모든 공립의원에 대해 의약분업을 시행하기로 했다. 이는 공립의원들이 영리를 도모하는 대신 공익을 가장 우선시해야 하며, 의료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기조가 반영된 것이다.

중국의 의료기관들은 우리나라 의료기관들이 낮은 수가로 인한 손실분을 비급여로 보충하듯 약품 판매 과정에서 가격을 올려 병원 운영비를 보전해왔다. 중국은 의약분업을 통해 병원이 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을 막아 약값을 추가로 올리는 것을 전면 금지하여 환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로 한 것이다.

또한, 의료보험이 대부분의 의료비 지출을 충당할 수 있도록 하고 환자 개인의 의료비지출을 전체 비용의 30% 이하로 내려 환자부담을 줄이기로 했다. 공보험의 보장률을 높이고 환자본인부담금의 비율을 30% 이하로 낮추겠다는 의미다.

이처럼 중국도 의약분업을 통하여 병원의 폭리를 막고 공공의료를 강화시켜 병원의 영리추구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의료개혁을 진행하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는 오히려 영리병원을 합법화 시키는 방향으로 의료제도를 후퇴시키려 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중국의 녹지그룹이 설립을 추진하려고 하는 '녹지국제병원'이 그것이다.

복지부에서 최종 승인만 기다리고 있는 녹지국제병원이 승인 난다면 국내 1호 외국 영리병원이 될 것이다. 또한 녹지국제병원의 설립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의 예외 1호가 될 것이미 이는 건강보험제도의 붕괴를 촉발할 것이고 결국 민간보험사가 가격 결정권을 가지는 의료영리화로 가는 시발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녹지국제병원의 설립은 이처럼 국내 의료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정부는 전 국민이 반대하는 의료영리화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영리병원은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찬욱님은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부회장입니다.



태그:#영리병원, #제주도, #의료민영화, #녹지국제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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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정부, 특정 정치세력, 기업에 정치적 재정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2004년부터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협의지위를 부여받아 유엔의 공식적인 시민사회 파트너로 활동하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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