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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건달할배'로 유명한 채현국 선생은 한국의 무히카다. 먼저 얼굴이 닮았다. 특히 웃을 때 더욱 그렇다. 둘 다 1935년생, 한국 나이 팔순이다. 말투도 비슷하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약한 듯 단호한 여운이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스페인어와 한국어라는 점. 그리고 무삼시 욕을 일갈하는 채 선생의 말이 더 쓰고 맛있다는 점이다.

이 시점에서 채 선생께서 당부한 말씀을 덧붙인다. 선생 자신의 표현을 따르자면 당신의 말이 농약이 돼서 먹고 죽을 수 있으니 잘 생각하라는 것이다. 채 선생의 말은 그런 식이다. 아픈데 시원하고 독하다. 80년을 살아온 경험의 말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두 사람은 육화된 언어를 쓴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꽃농장, 묘목장, 연탄공장 등의 현장을 떠난 적이 없는 두 사람이 아니던가. 자신의 직업을 농부라 밝히는 전 우루과이 대통령 무히카는 농가 한 채, 차 한 대가 전 재산의 전부다. 대통령궁은 노숙자 쉼터로 내주었다.

세금 납부 업계 10위에 랭크인 하던 은둔 재벌 채 선생은 가진 재산 다 나눠주고 현재 무일푼이다. 지하철 타고 다닌다. 이쯤되면 알 것도 같다. 그렇다. 이 두 사람의 얼굴은 그들의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예컨대 이런 말들이다.

<풍운아 채현국>을 읽고 올린 독자의 사진
▲ 한국의 무히카 채현국 <풍운아 채현국>을 읽고 올린 독자의 사진
ⓒ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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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 쓰고 가난하게 살고 발전이란 소리에 속지 말고, 훨씬 더 소박하게 살라 (<쓴맛이 사는맛>, 69쪽)
"나는 나만의 생활 방식이 있다. 대통령이란 이유만으로 이를 바꾸진 않을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부족할지 몰라도 나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벌고 있다. 그러니 이것을 희생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은 의무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368쪽)

나는 채현국 선생을 두어 번 만났다. 가장 인상적인 만남은 지난 5월 18일. 채 선생이 출연한 팟캐스트 <노유진(노회찬·유시민·진중권)의 정치카페>에서였다. 청취자들이 뽑은 게스트 후보에 채 선생이 올랐고 출연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백분 동안 세 논객과 함께 특유의 화법으로 이야기를 펼쳤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늙은이 귀여워해주어 고맙다'는 파격적인 인사로 청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한 채 선생. 우리 시대의 청춘들을 이야기하는 대목이었다.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진 '어른'의 말이다.

출세하는 것,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잘 한 게 아니라는 게 핵심이다. 따끔하고 움찔했다. 힘내라는 위로 따윈 없었다. "굶던 때는 누가 말 안 해도 눈에 불을 켜고 산다. 편할 때 눈에 불 켜라." 아, 이런 말 생전 처음 듣는다. 말로는 위로하고 공감해주지 않는 말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선생이 피터지게 일하고 돈 벌던 탄광 시절로 넘어갔다.

유시민(아래 유) : 선생님 돈 많이 버셨네요?
채현국(아래 채) : 내가 개인소득 납부 전국 10위 안에 들었지.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이병철 정주영 전부 세금포탈 한 걸 알겠더라. 전부 나보다 잘 버는데 내가 더 높아. 나도 세금포탈 하긴 했는데도 자꾸 (순위가) 올라가. 진짜 신나고 영웅된 것 같아. 근사한 일 한 것 같아. 그렇게 즐거워. 그런데 (세금납부) 2등쯤 하니 유신이야. 1972년. 독재정부와 동업할 근처로 갑니다. 독재정부 특징은 돈과 권력이 무조건 한패거리. 하나 더, 명망도 한패거리야. 그러니 두 분 (노회찬, 유시민을 향해) 조심하십쇼.

유 : 저는 돈 안 주던데요?
채 : 그렇게 입을 까는데 누가 돈을 주나 ? (모두 깔깔 웃음) 아첨해야지. 진정 아닌 채 하는 사람은 세 명이다. 우루과이 대통령 무히카, 만델라, 호치민. 정치가나 명망가나 권력가가 아니라 성자로 사는 거다. 이제는 그들도 태어날 시대가 된 거지. 나는 역사에서 세종 까지 포함해 이 세 사람과 유사한 삶을 산 사람을 정치가 중에 못 구하겠습디다" (중략)

노 : 근데... 돈 버는 재미가 어떻습니까? 우리는 돈을 못 벌어 봐 가지고...  
채 : 이상하게 돈 번 사람들이 부끄러워서 말 안 합디다. 악마처럼 유능해집니다. 하도 돈 버는 재미 그 길로 막 달리고 싶길래 너무 그렇게 하고 싶어서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뭘 깨달아서가 아니라, 아니라고 생각해서. 돈 버는 게 얼마나 근사한지 예술가 같아... 나는 형님이 자살한 불행을 겪었다. 형님 몫까지 살아야 해서 나 하나 달콤하게 사는 건 아니라는 게 늘 있습니다. 내 잠재의식에.

노 :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면 된다는 말은 어떻습니까 ?
채 : 그 말 절대 믿으면 안됩니다. 개같이 벌어서 결국 개같이 쓰게 되는 게 인생입니다. 정승이 개야. 임금의 개거든. 천한 개에서 고급 개가 되는 거지.

그렇게 시작된 돈 얘기는 '노유진'의 돈 벌던 시절의 에피소드로 넘어간다. 자세한 이야기는 정치카페 51회 2부를 들어보시라. 정말 재밌다. 미치게 돈 벌고 싶거나, 굴 파고 숨어버리고 싶거나, 삐뚤어지고픈 나이 불혹에 접어든 분들이라면 정말 이 대목을 웃어 넘기면서만은 들을 수 없으리라.

내 나이와 심정이 지금 딱 그렇기 때문이다. 좋은 주인, 좋은 대통령 만나 그 국민으로 살면 그보다 좋은 개 팔자가 어디 있으랴. 남 탓하기 부끄럽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그렇다. 한국의 무히카, 채현국 2편은 다시 얼굴 이야기로 돌아가려 한다. 무히카와 채현국 선생의 닮음꼴 인생을 만나 십수 년 만에 <오마이뉴스> 계정을 찾아내 나누고 싶었던 내 글의 요점은, 삶의 철학이 같으면 얼굴이 닮는다. 바로 이거였다.  


태그:#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채현국, #노유진의 정치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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