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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 오전 5시. 스마트폰에 저장한 시각에 맞춰 노래가 시끄럽게 울어댔다. 떠날 정리를 모두 마치고 호텔에서 나가기 위해 프런트로 갔다. 빨래한 값을 추가로 계산하고 그동안 관심 밖이었던 자전거를 가지러 갔다. 그런데…. 아니 이런 일이? 이 때가 오전 5시 50분 쯤 됐다. 내 것과 송 원장 것이 자물쇠로 묶여있는 것이 아닌가? 비상상황임을 직감했다. 우리가 잠근 자물쇠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잉 친절로 묶인 자전거
 과잉 친절로 묶인 자전거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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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호텔에 조금 먼저 도착한 고 원장 부부의 자전거는 자신이 갖고 온 자물쇠로 묶었지만 좀 늦게 도착한 우리에게는 자전거 자물쇠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호텔 직원이 도난이 염려스러워 친절을 베푼다고 임의로 잠근 것 같았다. 그런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었던 우리는 오랫동안 자전거를 탔고 더 이상 탈 일이 없어서 떠나기 전까지는 자전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너무도 느긋한 호텔 직원들

프런트에 상황을 설명했지만 직원은 잘 못 알아들었는지 담담한 표정으로 여기저기 전화를 한다. 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고 상황은 전혀 변화없이 시간만 흘렀다. 갑갑한 마음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오전 6시부터 제공하는 아침식사는 이러한 마음에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이러다가는 오전 7시에 출발하는 버스마저 놓칠 것 같았다.

책임자급인 여직원이 천천히 걸어온다. 와서는 마치 '자기들이 묶어놓고 왜 우리보고 난린가' 하는 표정이다. 우리는 알아듣게끔 영어로 설명을 했다. '우리가 묶은 것이 아니고 당신 직원이 우리에게 알리지도 않고 묶어놓았으니 열쇠를 찾아 자물쇠를 풀어주든지 아니면 줄을 끊어주든지 빨리 좀 해달라고 버스가 7시에 출발한다'고.

한두 사람이 더 어슬렁대며 왔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고 40분 가까이 지난 오전 6시 30분께야 마침내 공구를 든 사내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걸음걸이가 태평하기 비할 데 없다. 우리는 마음이 무척 달아있는데 그는 전혀 급할 게 없었다. 그래도 그가 들고 있는 공구를 보자 너무도 반가웠다. 그가 자물쇠의 줄을 끊자마자 우리는 내달렸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오전 6시 50분. 그야말로 단숨에 날아왔다.

인간사 새옹지마라!

만일 버스회사 누리집에서 봤듯 오전 5시에 출발하는 침대차가 있었다면 분명 우리는 그 차를 예매했을 것이다. 그 차는 중간 정차가 별로 없어 그 이후에 떠나는 다른 버스보다 훨씬 일찍 하노이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차를 예매했다면 아침에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이 사건으로 분명 우리는 그 차를 놓쳤을 게다. 그나마 좀 늦게 출발하는 버스를 예매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인간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어쩜 이렇게 와 닿을까?

우리는 10만 동을 더 주고 자전거를 짐칸에 실었다. 버스는 2층 침대차로 매층에 세 줄씩 빼곡히 침대가 놓여있었다. 버스를 타면서 신발을 벗어야 했다. 어깨 넓이 정도의 폭에 길이는 내 키에 딱 맞을 정도이니 몸집이 크거나 키가 큰 사람들은 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2층 창가에 누웠다. 공간이 좁아 배낭 놓을 자리조차 없다. 배낭도 짐칸으로 보내야 했다. 정확히 오전 7시가 되니 버스가 출발한다. 참으로 당황스러운 하루의 시작이었다.

 버스 2층 침대석. 몸집이 크고 키가 크다고 좋을 것 없다. 창가 쪽이 필자.
 버스 2층 침대석. 몸집이 크고 키가 크다고 좋을 것 없다. 창가 쪽이 필자.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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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 대규모 방뇨라니...

버스가 시내에서 너무 천천히 간다. 고속버스 같은데 시내 중간중간에서 손님을 또 태운다. TV 소리는 왜 이렇게 크게 트는지. 나중엔 화면을 끄고 음악을 틀어주는데 익숙하지도 않고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는 그 노래를 듣고 있는 건 큰 고역이었다. 나만 그런가?

참다 못해 일어나 앞으로 나가 운전 기사에게 소리 좀 줄여달라고 손짓으로 말했다. 알아들었는지 소리를 껐다. 잠시나마 행복한 기운에 빠져 있는데 잠시 후 또다시 음악을 튼다. 똑같은 리듬의 알아듣지 못하는 가사의 노래를 듣는 것은 정말이지 소음 속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버스는 자주 섰다. 사람뿐 아니라 화물 배송도 하는 것 같았다. 이러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무늬만 고속버스이지 완전히 우리나라의 완행버스다. 도시마다 서지만 제대로 시설이 된 터미널을 볼 수 없었다. 화장실도 잘 보이지 않는다.

한 도시의 시내를 지나고 외곽의 한적하고 널찍한 들판이 나오자 버스가 선다. 그러자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 알고 보니 노지에 방뇨하라는 것이다. 대규모의 노지 방뇨가 펼쳐졌다. 남자들은 가까이서 여자들은 멀리 가서 일을 본다. 세상에!

점심 때가 되자 버스가 길가 한 식당 앞에 선다. 사람들이 식판을 들고 줄을 서서 밥과 반찬을 받는다. 그동안 우리가 보아 온 것에 비하면 반찬 수준이 열악하다. 그럼에도 점심 값은 5만 동으로  매우 비쌌다. 식욕이 떨어진 나는 먹을 수 없었다. 대신 호텔서 아침을 먹는 대신 갖고 나온 바나나 잎에 싼 찰밥을 먹었다.

전화 통역으로 택시를 잡다

하노이에 도착하니 오후 8시다. 400킬로미터를 13시간에 걸쳐 온 것이다. 그러니 침대차가 아니었으면 몸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제 문제는 택시 잡는 것이다. 그것도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큰 차라야 한다.

결국 전화를 통한 지인의 통역을 통해 근처 택시기사와 연결돼 큰 택시 한 대가 왔다. 뒷좌석을 눕혔다. 자전거의 앞바퀴를 빼니 넉 대를 모두 실을 수 있었다. 다른 작은 택시에 셋이 타고 미리 예약한 호텔로 갔다. 미터기의 요금은 12만 동이 채 안 나왔으나 큰 택시는 15만 동, 작은 택시는 13만 동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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