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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보니 인천에서 양봉모임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어떤 사람들인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지난 11일 저녁, 장마에 가까운 봄비가 내릴 때 남동구 간석동에 위치한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사무실을 방문했다. 양봉모임 회원 세 명 중 김홍희(47)·이희만(47) 회원을 만났다. 김충기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대표도 시간을 내어 자리에 함께했다.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

김홍희(왼쪽)·이희만(오른쪽) 회원.
 김홍희(왼쪽)·이희만(오른쪽) 회원.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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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은 있었지만 사실 단순한 호기심에 시작했어요. 아버지가 충청도에서 양봉을 하고 계셔서 쉽게 생각했는데 장소 문제에서부터 쉬운 게 없더라고요."

홍희씨의 말에 희만씨도 한 마디 거든다.

"얼떨결에 함께 시작했는데 쉽지 않네요. 작년에 실패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희만씨는 자신들은 '양봉모임'이 아니라 '양봉을 알아가는 모임'이라고 강조했다. 작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실패한 경험이라 하는지 궁금했다.

좌충우돌 도시양봉 도전기

지난해 7월, 세 남자는 처음 만났다. 모두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회원이지만 서로 안면이 있는 정도였다. 양봉에 관심이 있다는 것만 확인한 후 만난 것이다. 장소는 인천양봉협회 회장이 운영하는 계양산 양봉장이었다. 머리에 보호그물망을 쓰고, 긴 고무장갑도 착용했다.

꿀을 '탈곡'하는 과정을 배웠다. 회장이 벌들이 달라붙어 있는 판을 주면 탈곡장으로 나르는 일이었다. 꿀 판을 자동탈곡기에 넣으니 수돗물 쏟아지듯 꿀이 흘렀다. 작업 후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았는데 '꿀 맛'이었다.

8월 중순, 양봉장을 만들기 위해 세 남자는 다시 모였다. 협회 회장의 배려로 터를 제공받았는데, 나무숲이 무성하고 잡목과 쓰레기가 쌓여있는 터를 정리하는 게 쉽지 않았다. 터를 정리한 후 벌통을 놓을 자리에 넓은 나무 판을 깔았다. 주변에 밤나무가 있고, 양봉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이라 생각했다.

9월 초순, 추석연휴 때 홍희씨가 충청도 고향집에서 귀성길에 벌통 두 개를 가져왔다. 그걸 계양산 양봉터에 놓고 벌들의 상태를 보니 양호했다. 벌들의 움직임이 활발하고 건강해 보였다. 기분 좋게 막걸리를 마시고 헤어졌다.

9월 중순, 회장과 벌통 내부를 검사했는데, 회장이 '벌들이 부저병(꿀벌에 발생하는 전염병)에 걸렸다'고 했다. 약물을 투여했다. 9월 말께 다시 방문해 보니 양호한 벌들도 있었고 부저병에 전염된 유충도 있었다.

10월 중순, 벌통 두 개 모두 부저병이 번진 상태라 폐기하기로 했다. 진드기 방지를 위해 약을 처방했다. 예방이 중요한데 지식이 부족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11월 중순, 벌들이 겨울을 건강하게 잘 보낼 수 있게 월동준비를 했다.

벌과 자연과 사람이 건강한 양봉을 위해

이희만씨가 벌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이희만씨가 벌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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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얼마 전 로완 제이콥슨이 쓴 책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을 읽었다. 이 책은 CCD 현상(벌집군집붕괴현상)이 왜 일어났는지 추적했고, 이로 인한 양봉 산업과 꿀벌의 몰락, 꿀벌과 농업의 생태적인 연관성 등을 얘기했다.

"책을 읽고 깨달은 게 많아요. 도시양봉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작년에 부저병에 걸려 약품을 투여했어요. 어떤 약품인지 관심을 갖지 않았죠."

희만씨는 작년의 실패가 정말 중요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양봉하는 많은 사람이 대량의 꿀 생산만 중시해, 그 꿀을 만드는 벌의 건강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데 본인도 그랬다는 것이다.

"친환경 농사를 짓기 위해 땅 힘을 살리려 하잖아요. 벌도 다르지 않아요. 벌이 건강해야 그 꿀을 먹는 사람도 건강하고, 건강한 벌을 만들려면 환경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해요. 사람과 벌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도시양봉을 해야 합니다."

이들은 '아마 작년에 양봉이 잘 됐으면 이런 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며 작년의 실패가 전화위복이 됐다고 했다.

또한, 자신들만 친환경적으로 양봉을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벌들이 원하지 않더라도 농약이 들어간 꽃가루를 채취하면 그게 꿀이 된다. 벌들이 날아다니는 지역 전체를 건강하게 해야 한다는 걸 경험한 것이다.

희만씨는 말했다.

"사람이 일을 하다 벽에 부딪혔을 때 철학이 없으면 지속할 수 없듯이, 도시양봉도 철학이 필요해요.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는 철학을 갖고 있어요. 단순하게 도시에서 내가 키운 생산물을 얻는 데 그치면 안 됩니다. 환경이 좋아지는 방향으로 같이 가야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생색내기나 성과위주의 도시농업이나 양봉을 하는 것을 비판한다. 상자텃밭을 나눠주고 시민들이 얼마큼 참여했다는 가시적인 실적만 앞세우고 농약을 전혀 거르지 않는 것을 지적했다.

계속 시도하는 세 남자

이들은 모두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 진행한 '도시농부학교' 출신이다. 농부학교를 졸업하고 '주경야독'이라는 독서모임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현재 서구 가좌동과 남동구 도림동에서 텃밭 농사를 짓고 있다.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 짓듯,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벌들이 스트레스를 안 받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이들은 현재 남동구 간석오거리 근처에 있는 건물 옥상에서 양봉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계양산에서 도시 한 가운데로 와 진짜 '도시양봉'을 시도할 생각이다.

도림동에서 텃밭농사를 짓고 있는 홍희씨는 분양받은 밭에 조만간 고구마를 심을 예정이다. 또한 토종닭을 키울 계획도 갖고 있다. 닭장을 만들어 텃밭을 찾는 아이들에게 교육활동으로 제공하고, 유정란도 얻고, 닭똥으로 퇴비 만들기도 하려한단다. 막연한 '순환'이라는 단어가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가좌동에서 텃밭농사를 짓고 있는 희만씨에게 향후 계획을 물으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에 와서 교육받고 독서모임에서 공부하면서 먹고 입고 사용하는 모든 것이 서로 관련 있다는 걸 알았어요. 머리로는 알아도 생활습관을 바꾸는 건 쉽지 않겠지만, 생활을 변화하려고 합니다. '생활혁명'을 해보려고요."

○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김홍희, #이희만, #김충기, #도시양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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