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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부림사건 피해자들이 지난 9월 25일 오후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웃고있다. 오른쪽부터 이진걸, 고호석, 설동일, 최준영씨.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부림사건 피해자들이 지난 9월 25일 오후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웃고있다. 오른쪽부터 이진걸, 고호석, 설동일, 최준영씨.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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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소위 불온서적으로 분류된 사회과학 책을 읽었다는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이들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대법원이 1980년대 부림사건으로 감옥살이를 했던 이들에게 32년 만에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당시 이들의 혐의는 '북한을 찬양, 고무, 선전하고 정부를 비판할 목적으로 불온서적을 소지했다'는 내용이었다(관련 기사 : '노무현 변호' 부림사건, 33년만에 '무죄').

부림사건은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가 읽었다는 불온서적은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경제학자 모리스 돕의 <자본주의의 어제와 오늘>, 셀리그만의 <경제사관의 제문제>,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등 유명 석학들의 저서였다.

불온서적, 이데올로기의 빨간 딱지

이런 서적들을 소지했다는 것만으로도 간첩이 되는 시대가 있었다. 서글픈 역사의 단면이다. 그런데 영화 <변호인>이 인기를 끌 때 이런 종류의 금서들이 불티나게 도서관에서 대여됐다는 보도를 접했다. 격세지감이다. 국가라는 권력이 세계인이 읽고 있는 도서를 읽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정의로운 일일까. 그러나 여전히 지금도 불온서적은 존재한다.

지난 3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했다 체포된 김기종씨 사무실 압수 수색 후 경찰은 "이적물로 의심되는 도서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김정일이 쓴 <영화예술론>을 비롯해 북한 원전 6점 등을 이적 표현물로 보았다. 불온서적과 연계해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국방부는 2008년 허영철의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보리), 한홍구의 <대한민국사>(한겨레출판사), 김진숙의 <소금꽃나무>(후마니타스) 등 23개 서적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했다. 이에 대해 출판사들이 국가 상대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나 지난해 5월 2심 판결에서 기각됐다.

<빨간 책>(이재익 외2인 지음 / 시공사 펴냄 / 2015. 4 / 346쪽 / 1만3800원)
 <빨간 책>(이재익 외2인 지음 / 시공사 펴냄 / 2015. 4 / 346쪽 / 1만3800원)
ⓒ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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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신은미의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네잎클로바)는 2013년 6월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문학 도서에 선정됐다. 그러나 소위 '종북 콘서트' 논란이 확산될 즈음인 올해 1월 7일 우수도서에서 돌연 취소됐다. 각 기관에 배부된 책까지 회수하는 소동을 벌였다.

1980년대에는 <역사란 무엇인가>가 문제였다. 지금은 허영철의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가 문제고, 신은미의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가 문제다. 빨간 딱지 불온서적은 시대에 따라 그 저자와 책 이름을 달리했을 뿐 여전히 유효하다.

이데올로기 사회에서 이념을 담은 서적에 빨간 딱지가 붙는 이유는 통치 때문이다. 이로 보건대 정치가 없다면 '빨간책'은 없다. 지배하고자 하는 자들 때문에 빨간책은 양산된다. 그러다 보니 아나키즘이 탄생하는 것일까. 국가 권력이나 자본 권력, 심지어는 종교 권력까지 '금기'라는 이름표를 달고 무엇인가를 하지 못하게 한다. 읽지 못하게 한다.

책은 문제없다, 금지하는 인간이 문제일 뿐

그러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인간의 욕망 아니던가. 그리고 그 욕망 때문에 인류는 이렇게 발전했고 앞으로도 발전할 것이다. 만약 모두가 하라는 것만 한다면, 읽으라는 것만 읽는다면 인류는 지루해 진즉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 때로 틀을 벗어나는 이들에 의해 발전되는 게 사회다.

여기 지루해 죽을 지경인, 아직도 금서를 통해 이반을 막으려는 박근혜 각하 치하의 국민에게 빨간책들을 들이밀며 재미있게 살자고 꾀는('꼬시는'이 더 실감나지만 표준어가 아니라) 이들이 있다. 이재익, 김훈종, 이승훈이 그들인데, SBS의 피디이며 팟캐스트 '씨네타운 나인틴'의 세 주인공들이다.

이들이 국민을 꾀려고 들고 나온 책이 바로 <빨간 책>(시공사 펴냄)이다. 원래 '빨간책'의 뜻은 '야설, 외설'이다. 물론 주류가 보는 책들이 아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말할 때 이 책에 소개하는 책들은 당연히 아니다.

외설과 야설로만 책이 이뤄지진 않았다. 실은 '빨간책'이란 책 제목 때문에 이 책을 선택했는데 '이데올로기'나 '외설'쪽으로 흡족한 내용은 아니다. 그런 내용이 없다는 게 아니라 훌륭한(모범적인) 책이 너무 많다는 뜻이다. 소위 '금서'가 위주가 된 책 서평인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니었다는 뜻이다.

나를 실망케 한 그 훌륭한 종류의 책들은 이렇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신봉승의 <조선왕조 500년>,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성석제의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스즈키 코치의 <왜 공부하는가> 등등. 너무 훌륭하지 않은가.

이런 책들이 왜 <빨간 책>이란 책속에 담겨야 하는지 모르겠다. 느끼기에는 책이 문제가 아니라 이 책을 들고 '빨간 책'이라 말하는 저자가 문제인 듯. 마찬가지 논리로 멀쩡한 책들을 불온서적으로 낙인 찍는 국가 권력이 문제다. 그 어느 사안이든 시대나 사회가 문제이기 보다 인간이 문제다.

빨간 딱지 기준... 이현령비현령

저자 이재익은 우노 고이이치로의 <황홀한 사춘기>는 금서인데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어엿한 추천 도서라는 점이 이해가 안 간다고 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금서라는 기준이 애매하다. 이데올로기 때문이든 적나라한 성적 표현 때문이든, 우리의 기준은 기준 자체가 기준이 안 된다. 둘을 비교해 보자.

"그녀의 비밀은 최초의 경험에서 시작되며 애욕의 수렁과 뜨거운 육체를 감당키 어려워 가쁜 숨결과 욕정의 분출로 이어지는 한 여인의 황활한 체험기"- <황홀한 사춘기> 홍보문구

"처음 이 책이 출판된 당시 노골적인 성묘사로 로렌스의 외설 작가로 낙인찍히기도 했으나, 그의 문학이 지닌 성에 대한 건강한 아름다움은 이제 세계적으로 널리 이해되고 있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청목사) 소개 문구

둘 다 성에 대한 노골적 묘사가 가득한 소설이다. 로렌스도 실은 작품 발표 당시 외설 작가로 외면당했다. 그러나 이후 그의 성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가 '문학이 지닌 성에 대한 건강한 아름다움'으로 바뀐다. 실로 놀랍지 않은가. 역순이어서 문제이긴 하지만,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가 추천 도서에서 불온도서로 바뀌듯 말이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떡하니 세계 명작 소설 전집에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는데 <황홀한 사춘기>는 청계천 가판대에 숨어있어야 하는가? 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부모님이 생일선물로 사주시고 <황홀한 사춘기>는 보다 걸리면 엄마한테 테니스라켓으로 맞아야 하는가?"- <빨간 책> 75~75쪽

뭐 이런 이현령비현령이 책만의 이야기이겠는가. 정치가 그렇고, 사회가 그렇고, 교육이 그렇다. 책에는 <월간 핫뮤직>이란 서평거리 못 되는 책에서부터, 제레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 정현웅의 <마루타>, 파울 프리샤우어의 <세계풍속사>,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이르기까지 질퍽한 인문과 풍속을 아우르는 책들이 소개되고 있다.

'빨간 책'이란 표지를 뒤집어쓰고 그 안에 살포시 들어 있어 그런지 여간 재미있다. 튀는 세 저자가 내미는 손 한 번 잡아봄직하다. 모두가 빨간책이 아닌 게 흠 중에 하나이긴 하지만, 빨간책이라 더 맛난 것은 어찌할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빨간 책>(이재익 외2인 지음 / 시공사 펴냄 / 2015. 4 / 346쪽 / 1만3800원)

※책 뒤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 길일 것 같아 그 길을 걸으려고요.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태그:#빨간 책, #이재익, #김훈종, #이승훈,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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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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