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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시골 백성들 고생하고 안 하고가 그 고을 원님한테 달렸다고 해도 뭐 그리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지. 힘없는 백성들이야 원님을 잘 만나면 편히 사는 거고, 돼먹지 못한 벼슬아치를 만나는 날에는 고생문이 훤히 열리는 판이니 그렇지 않아? 돈 주고 벼슬 산 수령들이야 저 한 몸 살찌우느라고 백성들은 안중에 없었으니 말할 것도 없고, 글만 읽어서 세상 물정에 어두운 수령들도 백성들 고생하는 줄 모르고 사는 게 많았지."(<서정오의 우리 옛이야기 백 가지 2> 262쪽)

글자 몇 개만 바꾸면 무상급식 중단으로 배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곯고 있는 경남지역 민심을 나타내는 시사적인 글이 될 같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옛날 충청도 옥천 땅에 있던 어느 똑똑한 원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의 경남도지사는 그동안 제공하고 있던 무상급식을 중단시켜 사람들을 고생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 속 원님은 고을에 끊이지 않는 두 가지 골칫거리, 마을 안에 노름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과 돈이 없어서 시집·장가를 못 가는 남녀가 넘쳐나는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합니다.

고을 정사를 살피는 원님의 마음은 적극적이고 지혜롭습니다. 문제의 본질을 살피기 위해 사람들을 직접 만나 원인과 해결책을 찾고, 꼼꼼히 세운 계획을 꾸준하게 펼쳤나가는 과정은 고을 사람들을 아끼는 애민이며 지혜입니다.

옛날이야기 보따리 <서정오의 우리 옛이야기 백 가지 1, 2>

<서정오의 우리 옛이야기 백 가지 1, 2> (지은이 서정오 / 그린이 이우정 / 펴낸곳 현암사 / 2015년 4월 20일 / 값 각권 1만 8000원)
 <서정오의 우리 옛이야기 백 가지 1, 2> (지은이 서정오 / 그린이 이우정 / 펴낸곳 현암사 / 2015년 4월 20일 / 값 각권 1만 8000원)
ⓒ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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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오의 우리 옛이야기 백 가지 1, 2>(지은이 서정오, 그린이 이우정, 펴낸곳 현암사)는 시사와 풍자, 해학과 조롱을 넘어서는 이야기, 요즘에 벌어지고 있는 정치·사회적 문제들까지도 백 가지 옛날이야기로 아우르고 있는 옛날이야기 보따리입니다.

"옛날 옛적 갓날 갓적 하늘땅이 열릴 적에, 호랑이가 담배 피우고 까막까치 말할 적에, 강아지에 뿔날 적에 수탉에 귀날 적에, 헌 누더기 춤출 적에 부지깽이 날뛸 적에, 한 임금이 살았더래.

이 임금님은 노루 사냥을 즐겨 해서 틈만 나면 사람들을 많이 데리고 노루를 잡으러 갔더래."(<서정오의 우리 옛이야기 백 가지 2> 305쪽)

옛날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전주곡처럼 빠지지 않던 말들입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이야기들은 술술 읽어 넘겨도 좋을 만큼 쉽고 재미있지만 옛날이야기라고 해서 결코 지난 간 일 만을 되뇌는 게 아닙니다. 이야기 속에는 깔깔 거리며 웃게 하는 웃음이 있고 눈물도 있습니다. 콕콕 찌르는 지적도 있고, 마음을 들뜨게 하는 칭찬도 있습니다.

지나간 잘잘못을 달 수 있는 저울, 오늘을 살피 게 하는 거울, 내일을 밝혀 주고 있는 지혜가 이야기 속에 들어 있습니다. 해학, 풍자, 효, 권선징악, 우정, 성실, 사랑, 선정, 지혜 등을 일부러 의식하지 않아도 읽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서정오의 우리 옛이야기 백 가지 1, 2>는 1999년에 처음 발행 돼 2014년 1월에는 24쇄를 출판할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던 것을 깁고 보태 다시 낸 책입니다. 깁고 보탠 이야기가 마흔 가지나 되니 재미있는 이야기, 느낌을 주는 이야기가 훨씬 풍부해졌습니다.

두 권(1, 2)에 담겨 있는 옛날이야기가 백 가지나 되지만 뒤죽박죽으로 막 들어 있는 게 아닙니다. 아주 가지런하게 '제1부 모험과 기적', '제2부 인연과 응보', '제3부 우연과 행운', '제4부 세태와 교훈', '제5부 슬기와 재치', '제6부 풍자와 해학'으로 나뉘어 모듬 별로 잘 갈무리 돼 있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죄는 지은 데로 가야 하는데

어느 이야기 하나 허투루 넘길 것이 없습니다. 재밌는 이야기 속에 회초리 같은 일침이 있고, 너털웃음 같은 문맥을 읽으며 조롱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니 이게 바로 언중유골, 옛날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뼈있는 한 마디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단 말은 들어봤지? 죄는 지은 데로 가고 덕은 닦은 데로 간다는 옛말도 있어. 그런 말에 꼭 맞는 이야기가 있으니 어디 한번 들어보게나."(<서정오의 우리 옛이야기 백 가지 1> 342쪽)

이렇게 시작하는 옛날이야기는 산삼을 캐러 다니는 심마니 셋, 김가 이가 박가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한 마을에 사는 이 심마니 셋이 산삼을 캐러 다니던 어느 날, 벼랑에서 무더기로 자라고 있는 산삼을 발견합니다.

궁리 끝에 셋 중 한 명이 내려가 산삼을 캐 위로 올려 보내 나누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김가가 벼랑으로 내려가 위험을 무릅쓰고 캐내 위로 올린 산삼을 본 두 심마니, 이가와 박가는 욕심에 눈이 멉니다.

욕심에 눈이 먼 두 심마니가 벼랑에 내려둔 채 떠난 김가는 며칠 후 이무기의 꼬리를 잡고 올라옵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김가는 집으로 달아가던 길에 나란하게 죽어 두 심마니 이가와 박가를 발견합니다.  

셋이 나눌 걸 둘이 차지하는 것만으로는 욕심이 차지 않은 둘은 서로 따라주는 술에 독을 타 따라줬기 때문입니다. 이무기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살아남은 김가는 그들이 남기고 간 산삼을 가지고 마을로 돌아와 그들이 저지른 악행은 비밀로 덮어줍니다. 마음 착한 김가는 산삼을 세 몫으로 나누어 자신을 죽이려 했던 두 사람 식구들에게도 나눠주고, 아흔아홉까지 무병장수했답니다.

맞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죄는 지은 데로 가야 맞습니다. 옛날에는 그랬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요즘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회자 될 정도로 정치, 경제, 사회, 가치 등에서 콩과 팥, 유죄와 무죄가 쉬 구분되지 않을 만큼 왜곡되고 오염돼 보이니, 먼 훗날 우리들 후손들이 읽을 옛날이야기 거리가 점점 궁색해지고 빈곤해지는 느낌입니다. 

목 마르는 갈증은 물이 마르지 않는 옹달샘을 찾으면 달랠 수 있습니다. 옛이야기가 그립고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서정오의 우리 옛이야기 백 가지 1, 2>가 그 갈증을 달래 줄 옹달샘, 꺼내도 꺼내도 줄어들지 않는 옛날이야기보따리가 되리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서정오의 우리 옛이야기 백 가지 1, 2> (지은이 서정오 / 그린이 이우정 / 펴낸곳 현암사 / 2015년 4월 20일 / 값 각권 1만 8000원)



서정오의 우리 옛이야기 백 가지 2

서정오 지음, 이우정 그림, 현암사(2015)


서정오의 우리 옛이야기 백 가지 1

서정오 지음, 이우정 그림, 현암사(2015)


태그:#서정오의 우리 옛이야기 백 가지, #서정오, #이우정,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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