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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풍문여고 옆 돌담길을 걷는데 거리에서 인물화를 그려주는 여성 화가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는 품새가 여느 화가와 다릅니다. 흔히 화판에 화지를 집고 한 손에 연필을 들고 그리는데 이 화가는 화판이 없습니다. 단촐하니 한 손엔 공책을, 다른 손엔 붓만 들었습니다. 공책을 끌어안듯 가슴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두고 그려, 마치 마음으로 그리는 것 같았습니다.

가슴으로 얼굴을 그려 주는 거리의 일본인 여성 화가
▲ 캐리커쳐 그려드려요 가슴으로 얼굴을 그려 주는 거리의 일본인 여성 화가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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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값이 '3000'. 참! 착하네요. 그림은 어떨까요? 손바닥만한 크기로 얼굴을 그려 주는 데, 수채화가 맑고, 밝을 뿐만 아니라 얼굴 그림이 정겹고 따뜻합니다. 화가는 손님과 스케치북을 번갈아 보며 몰입하며 그렸습니다.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그대로 그림에 비칠 정도로 보기 좋았습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았습니다.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본인 여성

한국에서 일하는 남편을 그렸답니다.
▲ 낮잠 자는 남자 한국에서 일하는 남편을 그렸답니다.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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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낌새를 챈 화가가 작품의 주인공을 알려주었습니다.
"저의 일본인 남편이에요."

-네? 그럼, 화가분도 일본인이세요?"
"네, 저도 일본인이랍니다."

- 고맙게도 한국말을 잘 하세요
"2012년에 왔으니까 4년째에요.."

곁에 대리석 의자 위에 화가의 포토폴리오를 열어 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한 작품.

고등어에게 마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그려 넣은 조화가 애틋하다
▲ 고등어의 장례식 고등어에게 마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그려 넣은 조화가 애틋하다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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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생명을 먹고 살고 있다. 배경은 낡은 장미 쟁반의 무늬이지만, 고등어에 조문의 의미도 담았습니다.'

캔버스위에 유화로 그린 그림인데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예약하고 줄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손님들이 늘었습니다.

세계를 여행하며 그 나라 사람 얼굴을 수채화로 그려 주는 일본인 여성화가 사치씨
▲ 거리의 화가 세계를 여행하며 그 나라 사람 얼굴을 수채화로 그려 주는 일본인 여성화가 사치씨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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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끝에 손님에게 좋아하는 색을 여쭈어 봅니다?
"좋아하는 색깔을 물어보고, 그 색깔의 꽃을 덤으로 그려주면 손님이 좋아해요... 하하하."

- 30분 정도 머무는 동안 3명의 얼굴 그림을 그렸고 9천원을 벌었습니다. 그림값이 너무 싼 거 아닌가요?
"(3천원으로 가려 놓은 종이를 가리키며) 원래는 5천원인데, 오늘은 늦게 나왔어요, 빨리 그리고 들어가려고요, 값을 낮추면 손님이 많거든요."

그림의 주인공인 이 여성도 가족들과 함께 실크천에 천연염색을 들여, 이 거리에서 판매하고 돌아가는 길에 화가 앞에 앉았습니다. 거리에서 상품을 파는 일이 녹록치 않고 힘들지만 열심히 사는 모습이 활기 넘치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림을 보내기 전에 사진을 찍어 둡니다.

사치씨는 그림을 보내기 전에 사진으로 기록해둔다
▲ 찰칵 사치씨는 그림을 보내기 전에 사진으로 기록해둔다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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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손님의 얼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은 무릎에 정겨움이 흐릅니다.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는 따뜻한 마음이 흐르는 게 보입니다. 사람 사는 행복과 충만감이 거리를 따뜻하게 데웁니다.  마음으로 그리고 주고 받는 그림 한 장이 지나가는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거리의 화가와 모델사이에 정겨움이 흐른다
▲ 무릅과 무릅 사이 거리의 화가와 모델사이에 정겨움이 흐른다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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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행복을 줄 수 있다면 최고의 행복!"

사치씨와 명함을 주고 받았습니다. 아래는 그에게 이메일을 통해 들은 사치씨에 대한 더 자세한 소개입니다.

저는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오사카에서 어린 시절을 지냈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피아노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피아노 소리와 함께 그림을 그렸습니다. 어린시절 버려진 박스를 이용하여 어른 키 만한 기린을 만들어 주위 어른들을 놀라게 했고, 주위 사람들을 동물에 비유해 그리는 등 사물을 응용하는 특기가 남달랐습니다.

한국에 온 2012년부터 2년간(2012~2014년)은 Ani-Top 만화 학원에서 일본 유학전문강사로 활동했습니다. 만화가를 지망하는 젊은이들과 교류하는 가운데, 모국을 떠나 예술을 배우는 것의 의의, 사물을 글로벌적인 관점에서 다각적으로 관찰하고 표현하는 것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바쁜 것을 이유로 개인 제작에서 멀어져 있던 저는 배우는 것에 대한 학생들의 열정에 영향을 받아 예술에 대해 더 깊이 배우고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나날로 커졌습니다.

예술에 관한 책을 읽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발길을 옮기는 가운데,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화가 이중섭과 장욱진 화백의 작품을 만났습니다. 따뜻한 정감과 소박하고 해학적이면서도 열정을 느끼게 하는 그들의 그림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치 조선 시대의 민화, 꼭두, 전통 탈춤, 야나기 무네요시와 아사다 타쿠미가 사랑한 조선도자기 등을 모두 응축한듯한 그림이라고 느꼈습니다.

앞으로 저도 제 방식으로 지금까지 쌓아온 유머 감각과 외국인의 관점에서 관찰하고 발견 한 한국의 매력을 재 해석해 오일 페인트와 캔버스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일본의 만화적인 요소와 한국의 색채와 조형미를 융합시킨 새로운 회화적 표현을 추구할 계획입니다.

"제3국에 한국을 알리는 전시 발표 하고 싶어"

사치씨의 포토폴리오 속에 있는 2015년 그림 출력물
▲ 계동의 철물점 사치씨의 포토폴리오 속에 있는 2015년 그림 출력물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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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에 대한 사랑, 한국의 달동네에 관심이 많습니다. 달동네에는 한국인의 아픔과 슬픔이 있다고 하지만, 제 눈에는 소박하고 정감 있는 아름다움으로 비춰졌습니다. 한국의 오래된 전통문화와 전통건축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 전통 보자기와 민화를 보면서 그 색채와 조형적 매력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오래된 마을 뒷길을 걸으며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 마을 뒷길의 이름은 벽화 마을로 알려진 '이화동달동네'였습니다. 거기에는 세월을 거듭나면서 녹이 슬은 문과 낡아 떨어진 손잡이 그리고 한옥 문에 덧칠한 오래 된 페인트가 다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벗겨져 실로 깊이 있는 바래진 색을 내고 있었습니다.

뒤틀린 지붕에는 담쟁이가 얽혀 있고, 항아리 옆에는 고양이가 낮잠을 자고 그 옆을 화려한 색상의 몸뻬 바지를 입은 할머니가 걸어가는 모습을 본 후부터 달동네를 종종 찾아 촬영이나 스케치를 하며 이를 모티브로 작품을 제작하였습니다.

제가 느끼는 달동네 매력은 조선시대 도자기와 민화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한 아름다움과 한국 사람들의 순수한 정 같은 아름다움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찾아 연구 발전시켜 이것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해 한국과 일본 그리고 제3국에 한국을 알리는 전시발표를 해 나가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시마다 사치 (Sachi Shimada) 32세. 메일 shimadasachi1204@gmail.com
2002.4-2006.3 Kyoto-Seika University (Major :Faculty of Manga )졸업
2006.4-2007.3 Kyoto-vocational school(fashion education)졸업
2007.4-2009.3 international zero collection.,co.ltd. 복식 잡화 디자인 및 바이어 업무
2012.6-2014.2 Ani-top 만화학원 (서울) 미술지도 강사,일본유학 담당)
2014.3-2015.3 WWOOF KOREA (사단법인 한국농촌체험교류협회) 디자인,일러스트 담당
2014.9-현재 작품제작 및 일본어 강사,캐리커처 작가 활동 중



태그:#사치, #거리의 화가, #수채얼굴그림, #일본인여성화가,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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