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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기도 연천에서는 '경기도교육청이 추구하는 마을교육공동체가 사교육공동체로 진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학교장이 사교육업체에 학생을 잘 지도해 달라고 추천을 해야 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는 올해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라 2013년 말부터 시작되었다. 교육청은 이를 방조하고 있다. 혁신교육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경기도에서, 어쩌다가 공교육기관에서 사교육기관에 학생을 추천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혁신교육의 성과가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농촌지역에서는 열악한 교육여건 속에서 인구유출을 막고, 지역인재를 길러낸다는 명목하에 지방자치단체들이 앞장서서 입시교육을 부추기고 있다.

10년을 넘게 농촌지역에서 교사생활을 하고 있는 필자는 지역민들이 가지고 있는 상대적 박탈감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아무리 자율이니 배려니, 협력이니 이야기를 하더라도 교육 여건이 열악한 지역민들이 듣기에는 그냥 좋은 이야기일 뿐, 현실 속에서는 지역의 학교가 조금 더 좋은 '입시실적'을 내주기를 바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EBS 아카데미'
연천군이 EBS와 공동 추진하는 'EBS 아카데미'는 '학력증진 멘토링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13년 말첫 수강생 모집을 시작했다. EBS 대표 강사 및 유명 학원 강사를 초빙해 수업을 진행한다. 수강대상은 관내 중2,3학년, 고1,2,3학년 중 학교장 추천 및 선발고사로 선정된다.

지난해 12월 연천군 군정질문에서 연천군 평생학습센터 측은 이 같은 수업을 통해 "중학생은 졸업생의 경우 관내 고등학교 진학률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고등학생은 대학입시를 수동적으로 준비하던 단계에서 능동적이고 전략적으로 대처하는 자세와 학습 분위기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이 성과"라고 밝혔다.
이를 잘 아는 지자체 입장에서는 유명 학원 강사들을 내세워 아이들에게 입시교육을 시키는 것이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다.

이에 연천군청은 소위 상위권이라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EBS 아카데미'라는 이름하에 영어·수학 중심의 입시교육을 시키는 사실상의 '사설학원'을 운영해오고 있다.

일부 상위권 학생들에게만 혜택이 집중된다는 비판이 잦아진 탓인지, 연천군은 올해부터 중하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EBS아카데미 자기주도학습 멘토링'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연천군청은 한 사교육업체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학생들을 추천해 달라는 공문을 5월 초 지역의 각급 학교에 발송하였다.

연천군의 공문, 고민에 휩싸인 교사들

연천군청에서 연천군내 학교에 보낸 공문
▲ 연천군청 공문 연천군청에서 연천군내 학교에 보낸 공문
ⓒ 연천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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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문을 받은 많은 교사들은 다양한 고민에 휩싸였다. ▲학교에서 사교육업체에 학생을 추천하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윤리적으로는 괜찮은 것인지 ▲학교장이 추천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학교는 지도할 능력이 부족하기에 사교육기관에 우리학교 학생을 추천한다는 의미는 아닌지 등등 의구심에 빠져들었다.

또 학교는 열악한 교육 재정 탓에 힘들어하고 있는데, 꼭 사교육기관에 돈을 들여가면서 이런 사업을 해야 하나? 이 돈을 학교에 지원해줄 수는 없는 것인가? 저마다 한마디씩 불평의 말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교육에 대한 지자체의 노력은 학교가 공교육을 제대로 잘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할 때 빛나는 법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접근을 해도 자칫하면 지자체가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많은 지역민들은 지자체의 이러한 노력이 몇몇 상위권 학생들의 입시실적을 올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저해하고, 지역의 공교육을 황폐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일임을 알지 못한다. 물론, 이런 노력 이후의 입시성과에도 많은 이들은 의문을 제기하지만 말이다.

지역민들이 지지하는 정책을 지방자치단체가 집행한다고 할 때, 교육청에서 이를 무작정 비판하고, 막아서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지역의 교육을 책임지는 공교육기관인 교육청은 적어도 교육의 영역에서는 자기의 목소리를 가지고, 지역민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얼마 전 연천교육지원청에 질의를 했다. 사교육기관에 학생을 추천해달라는 군청의 요청에 공교육기관이 응해야 하나? 왜, 지자체의 교육 관련 각종 공문이 교육청의 협조 없이 학교로 직접 와서 학교가 이에 대한 판단을 하도록 만드는가? 교육청이 지자체의 각종요구에 비교육적 요소가 있는지 판단하고, 조정 및 협력해서 학교에 요청을 해야 하지 않느냐? 등이 그 내용이었다.

이러한 입장은 군청의 담당자에게도 전달이 되었고, 이를 전해 들은 여러 학교의 담당 교사들은 교육청의 입장을 기다리며 해당 공문의 집행을 보류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교사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19일 오후 현재까지 공식 답변이 없다. 다만 연천교육지원청 한 관계자가 "학교가 알아서 (추천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교육청이 나서기는 불편하다"라고 알려왔을 뿐이다.

학교와 함께 고민하고 지원하는 교육지원청이라고 소개되는 연천교육의 약속
▲ 연천교육청 홈피 학교와 함께 고민하고 지원하는 교육지원청이라고 소개되는 연천교육의 약속
ⓒ 연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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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필자는 이제 경기도교육청에 직접 공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경기도교육청의 입장이 무엇이냐고. 공교육을 혁신하고, 강화하겠다고 시작한 혁신교육이 하루가 다르게 후퇴하고 있다고 말하는 현장의 목소리가 왜 커지고 있는지, 직시할 수 있으면 좋겠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사교육, #경기도교육청, #연천, #공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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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외곽의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입니다.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등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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