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연례행사처럼 진행되는 구제역, AI 바이러스의 창궐과 살처분은 인간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음에도 한국의 1000만 돼지들의 99.9%가 사육되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의 실체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5월 7일 개봉해 극장에서 상영중인 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전국을 뒤흔들었던 구제역 살처분 대란 이후 '진짜 돼지'를 찾아 떠나는 한 가족의 여정을 담은 작품입니다. 영화 제작·배급사인 시네마달이 '당신의 식탁이 위태롭다'란 타이틀로 기획 기사를 보내와 몇 편에 걸쳐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중 한 장면. 구제역이 전국을 덮친 것도 결국 '공장식 축산업'의 폐해라고 영화는 말한다.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중 한 장면. 구제역이 전국을 덮친 것도 결국 '공장식 축산업'의 폐해라고 영화는 말한다.
ⓒ 시네마달

관련사진보기


한해에 대한민국에서 소비되는 육류의 양은 엄청나다. 그만큼 많은 동물들이 사육되고 도축된다. 닭고기로 소비되는 육계의 경우에는 1년에 7억 마리 이상이 도축된다. 가장 규모가 큰 육류기업인 '하림'이 1년에 도축하는 육계만 하더라도 1억 5천만 마리가 넘는다.

1990년 설립된 '하림'은 어느덧 연 매출 4조 원이 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하림은 사료공급부터 도축, 유통까지 모든 과정을 수직계열화했다. 단지 사육만 농가에 위탁하고 있다. 하림과 위탁농가의 관계는 원청기업과 하청기업의 관계와 비슷하다. 육계산업의 규모만 큰 것이 아니다. 양돈(돼지), 달걀(산란계) 산업의 규모도 매우 크다. 농장별 사육 규모도 엄청나게 커졌다. 요즘 농촌에 가면 닭은 10만 마리, 돼지는 2천마리 이상이 기본이다.

'농장'이 '공장'으로 바뀐 이유

한마디로 '농장'이 아니라 '공장'이 되었고, 거대한 산업이 되었다. 나이가 드신 분들은 시골농가에서 소나 돼지를 몇 마리씩 키우던 시절을 떠올릴지 모르지만, 지금의 현실은 완전히 변했다.

문제는 많은 시민들이 '농장'이 아닌 '공장'의 현실을 눈으로 볼 수 없다는데 있다. 공장식 축산을 하는 농장에는 일반 시민들이 출입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번에 개봉된 <잡식 가족의 딜레마>는 공장식 축산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동시에 순환농법으로 유기축산을 하는 소규모 농장의 모습도 담아내었다. 이상화한 것이 아니라, 한계도 그대로 담아 냈다. 이 영화를 본다면, 아마도 내가 먹는 '고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농장'이 '공장'으로 바뀐 것은 자연적으로 이뤄진 변화가 아니다. 이것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유도한 일이다. 축산의 공장화는 농업을 포기한 통상개방 정책과도 연관되어 있다. 정부는 농산물 시장개방이 본격화된 1994년 이후, 축산을 규모화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곡물농업을 포기하는 대신 축산을 키우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당시에 정부는 농가에서 소규모로 소, 돼지, 닭을 키우는 것은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축산을 전업적으로 하는 전업농을 육성하고 규모화를 하는 방향으로 지원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축사현대화 등의 명목으로 공장식 축산에 대한 정부지원은 계속된다. 대표적으로 한-칠레, 한-미FTA 체결 이후인 2009년부터는 정부가 '축사시설현대화사업'을 시작했다. 2009년 당시에 이 사업의 지원을 받으려면 전업농이어야 했다. 양계는 3만 마리 이상, 돼지는 1000마리 이상이 되어야 했다. 이후에 준전업농까지 지원대상이 확대가 되었지만, 어느 정도의 규모를 전제로 하는 데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렇게 지원된 축사시설 현대사업비는 2009년~2014년 동안 무려 1조 265억 원(보조 및 융자)에 달한다.

여기에서 '현대화'는 공장식 축산방식을 의미했다. 대표적인 동물학대 사육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감금틀 사육(산란계의 경우 배터리 케이지, 돼지의 경우 스톨)에 사용되는 감금틀도 지원대상 시설품목 중에 하나였다. 닭이 날개를 펼 수도 없고, 돼지가 몸을 돌릴 수도 없게 하는 감금틀 설치에 정부 예산이 지원될 정도로, 공장식 축산에 대해 아무런 경각심이 없었던 것이다.

예산낭비, 환경파괴를 낳는 공장식 축산

공장식 축산을 하면서, 가축분뇨가 환경을 오염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가축분뇨처리시설에도 막대한 재정이 지원되고 있다.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 예산에서만 가축분뇨처리시설 지원비가 878억 원에 달한다. 그 외에 가축방역강화예산 3044억 원도 공장식 축산과 관련된 예산이다. 공장식축산은 구제역, 조류독감 등을 낳는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써가면서, 공장식 축산을 유지하려 애써 왔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결국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로 돌아왔다.

이런 시스템에서 고속성장을 하면서 이익을 얻은 기업들이 있는 반면, 수많은 돼지, 닭은 반생명적인 환경 속에 사육당하며 고통을 받았고,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가 돌 때마다 대량으로 죽임을 당했다. 단지 동물들만 고통을 당한 것은 아니다. 병이 돌 때마다 대규모 살처분 보상금으로 막대한 정부예산이 사용되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간 집행된 살처분 보상금만 하더라도 1조 8416억 원에 달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돼지나 닭의 사체를 매몰하면서, 매몰지 주변의 상수도가 오염될 우려가 생겼다. 이 상수도를 정비하는데 투입된 예산만 하더라도 2010년~2011년에만 6411억원에 달한다.

토착화된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한 장면.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한 장면.
ⓒ 시네마달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막대한 재정이 사용되었지만, 구제역과 조류독감은 잠잘 기미가 없다. 거의 토착화된 질병처럼 일상화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발표에 따르면, 작년 12월 3일부터 올해 5월 13일까지 33개 시, 군에서 총 185건의 구제역이 발생해 17만 2734마리가 살처분됐고, 작년 9월 24일부터 올해 5월 13일까지 154건의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해서 492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되었다고 한다.

환경피해도 막심하다. 2010년부터 2011년에 걸친 구제역 및 조류독감 사태 때에 조성된 매몰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4799개에 달하는데 토양 및 지하수 오염문제가 심각하다. 한국환경공단이 3000개소를 선정하여 환경영향조사(2011년 3월~12월)를 실시했을 때에도, 71개소(23.7%)가 침출수 유출가능성이 높고, 58개소(19.3%)가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환경부 조사결과 구제역 매몰지들이 항생제, 소독제 등에 오염되어 있다는 것도 밝혀졌다.

물론 당장에 모든 축사가 문을 닫을 수는 없다. 장기적인 관점을 갖되, 지금부터 구체적인 전환을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전환의 방향은 분명하다. 현재와 같은 공장식 축산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속가능한 유기축산, 동물학대를 없애는 동물복지 축산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2012년 기준으로 전체 축산물 중에 친환경 축산(유기축산과 동물복지축산) 비율은 0.7%에 불과했다. 동물복지축산 인증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지금까지 인증받은 농장은 산란계 58곳, 돼지 2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여전히 대한민국 정부 정책은 공장식 축산을 확대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져 있다.

당장 필요한 변화는, 공장식 축산의 상징이자 대표적인 동물학대 사육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감금틀(산란계 배터리 케이지, 돼지 스톨) 사육방식이라도 하루빨리 금지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더 많은 시민들이 정확한 실상을 알아야 한다. 내가 먹는 '고기'가 어떻게 나온 것인지를 아는 것이 출발이다.

얼마 전 가족들과 함께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잡식파'인 딸이 "돼지에게 미안해졌어"라고 말했다. 아마 앞으로는 이전보다 고기를 덜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개인의 선택에 맡길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 고기를 선택했다기보다는, 고기를 먹도록 길들여져 왔다. 정부의 공장식 축산 육성정책, 그리고 육류기업 지원정책(축산계열화라는 이름으로)의 결과, 대량으로 육류가 공급되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 늪에 빠져버린 것이다.

따라서 결국 정부의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녹색당,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그리고 동변(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이 감금틀 사육을 폐지하기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 고기를 좋아했다던 황윤 감독이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진실을 알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영화를 찍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 [공장 대신 농장을!] 배터리 케이지와 스톨 추방을 위한 백만인 서명하러 가기

○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공장식 축산
댓글1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