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포스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어벤져스2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이 개봉 전 예상대로 누적 관객 수 천만을 달성하며 흥행몰이 중이다. 현재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에 밀려 주춤한 상태지만, 극장가 비수기 및 학생들의 시험 기간과 개봉 시점이 맞물렸음에도 연일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했던 <어벤져스2>는 2015년 상반기 영화계의 '대세'라 할 만하다.

물론 <어벤져스2>의 무서운 흥행에는 역대 최고 수준의 스크린 점유율과 엄청난 상영횟수가 한몫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개봉 당시 <어벤져스2>의 스크린 점유율은 거의 80%에 육박했다. 또 영화의 일부가 한국에서 촬영됐을 뿐 아니라 한국 배우가 출연했다는 점도 국내 관객들의 기대감을 높였고, 이 역시 <어벤져스2>의 인기 요인으로 작용했다. '천만 영화'의 등장이 이전처럼 별난 일이 아닐 만큼 꾸준히 늘어난 영화 감상 인구도 수적 흥행에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히어로물은 흥행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대략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기반의 영화들이 인기를 끌며, 한국에서 슈퍼히어로물은 더 이상 마니아들의 전유물에 머무르지 않게 됐다. 그 정점은 지난 2013년 개봉한 <아이언맨3>로, 무려 900만 관객 달성이라는 기록적 흥행 스코어를 자랑하며 기염을 토했다.

마블 코믹스의 세계관과 평행 관계인 MCU를 토대로 진행되는 영화들은 2008년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평균 1년에 한 편씩은 대중에게 공개돼 왔다. 남아 있는 MCU 시리즈 11편의 개봉 일정은 이미 2019년까지 빼곡하게 짜여 있다. 이는 곧 MCU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캐릭터가 몰입을 해치지 않도록 일관적으로 유지돼야만 한다는 뜻이다. 또 그렇게 유지된 캐릭터들의 매력이 맘껏 발산될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말'과 '판', 모두 중요하다.

여기서 마블 시리즈 특유의 장점이 한계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발생한다. 마블 코믹스와 MCU에는 모두 엄청난 능력치를 지녔지만 저마다의 약점을 지닌 영웅들이 등장한다. 구조가 낳은 돌연변이인 이 영웅들은 구조 안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고뇌한다. 내용은 각자 다를지 몰라도 마블 시리즈 영웅들의 고민은 평범한 인간의 존재론적 고민과 같은 꼴을 하고 있다. 마블 시리즈는 공통적으로 이 돌연변이 영웅들이 자아를 찾고 내상을 치유하는 과정을 전시하며 단순하지만 철학적인 문제가 담긴 이야기를 만든다. '존재의 이유'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기존 영웅 서사와 달리 태생적으로 자아의 어두운 부분을 성찰하도록 조직된 캐릭터는 그 그림자로 관객을 무섭게 빨아들인다. 이는 DC 코믹스의 캐릭터 발전 과정에서도 목격되는 부분이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한 장면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한 장면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특히 MCU 시리즈의 세계 속 영웅과 악당은 2D라서 더욱 자유로운 마블 코믹스의 세계보다 능력치가 다운그레이드되어 있다. <아이언맨>부터 <어벤져스2>까지 모든 영웅은 그들의 인간다운 모습을 어필하며 각자 당면한 과제를 끌어안은 채 고뇌했다. 이를테면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은 아버지로부터 세계 최대의 군수업체와 천재적인 과학자의 피를 물려 받았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막대한 부까지 지닌 그이지만, 많은 이들의 미움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그의 약점으로 남는다. 그래서 아이언맨은 고민한다. 최첨단 무기를 양산하는 것이 과연 평화를 위한 길일까? 아이언맨은 괴물인가? 나는 과연 토니 스타크인가, 아이언맨인가?

그리고 이러한 고민들은 MCU 시리즈의 다른 영웅에게도 유사하게 주어진다. 과학 실험 도중 감마선에 노출되는 바람에 통제 불가능한 분노를 느끼면 괴물로 변하는 헐크(마크 러팔로 분)도, 냉전 시대의 사생아인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분)와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 분)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평범치 못한 존재로 만든 세상을 원망하지만, 그보다는 유별난 힘을 지닌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죄책감이 더 크다. 숫제 신으로 태어난 토르조차도 자신의 엄청난 힘이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 때 좌절한다.

문제는 이 같은 히어로물의 새로운 공식을 반영한 영화들이 매우 짧은 간격으로 양산된다는 점이다. 상술했듯 마블의 영웅 영화는 적어도 1년에 한 편씩은 개봉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히어로가 비슷한 고민을 전개한다면 조금은 물리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마블 시리즈의 영화를 차치하고라도, 이미 요즘 줄기차게 쏟아졌던 이야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보고 난 후에도 별 색다른 감상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전능'이 아닌 '양날의 칼'이 된 영웅들의 능력은 그들 내면의 싸움으로 이어지고, 그 때문에 기대했던 만큼의 스펙타클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한 장면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한 장면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매력적인 이야기가 발굴돼야 하고, 그조차 힘들다면 캐릭터의 일관성이라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어벤져스2>는 캐릭터의 성격 통일에 실패한 것 같다. 마블 코믹스와는 별개의 이야기이므로 이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캐붕(캐릭터 붕괴)'이 심각한 수준이다. <어벤져스1>에서 블랙 위도우와 호크아이(제레미 레너 분)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호크아이는 유부남이 됐고, 블랙 위도우는 돌연 헐크의 조련사로 변신했다. 전작에서 블랙 위도우에게 거리낌 없이 주먹을 내리 꽂던 헐크는 갑자기 그녀 앞에서만 순한 양이 된다. <아이언맨3>에서 수트를 공중 분해하며 천문학적 금액의 불꽃놀이를 선보였던 토니 스타크는 다시 '울트론'이라는 위험한 존재를 탄생시키는데 천착한다.

이처럼 캐릭터가 한결같지 않고 흔들린다는 점은 오히려 MCU 기반 영화의 팬들에게 불친절한 부분으로 작용한다. 이를테면 <에반게리온 : Q>를 봤을 때의 충격이랄까. 히어로물의 특성상 이야기의 개연성이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벤져스2>를 처음 보는 관객에게 느껴질 진입장벽은 사실 크지 않았다. 뜬금 없는 러브라인이 나온들 이 시리즈물을 막 접한 이들에게 그것이 무슨 큰 문제랴. 그러나 시리즈 속 모든 작품을 몇 번씩 복습하며 따라왔던 팬에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별다른 설명 없이 그저 달라진 채로 주어지는 캐릭터들은 각자 <어벤져스2>라는 커다란 이야기 안에서 과도하게 돌출되며 존재감을 뽐내는 바람에 극을 산만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의미 없이 등장인물 모두를 주인공처럼 강조하는 것이 '덕후'를 위한 전략이라면, 그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듯하다. <어벤져스1>의 로키(톰 히들스턴 분)처럼 매력적인 악당이 나왔다면 좀 더 만족스럽지 않았을까. 이는 <아이언맨> 시리즈 중 최고 졸작으로 꼽히는 <아이언맨2>가 그랬듯, <어벤져스2>도 '시빌워'로 완성될 시리즈의 도구같이 사용됐다는 한계로도 해석할 수 있다. 히어로들의 흥미로운 전사를 조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기 캐릭터 사이에 억지로 조성된 '케미'는 이 영화에서 2시간 짜리 서비스컷 모음집의 느낌을 받게 하기도 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어벤져스> 2편에서 첫 등장한 퀵 실버(애런 존슨 분)와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 분)

<어벤져스> 2편에서 첫 등장한 퀵 실버와 스칼렛 위치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문제 많은 이야기였지만, 여타 MCU 기반 영화 만큼의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은 <어벤져스2>의 분명한 장점이다. 특히 막시모프 쌍둥이의 고향 소코비아가 통째로 허공에 떠오르는 장면은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하이라이트신을 넘어 < 슬레이어즈 NEXT > 중 사일라그 시가 공중 부양할 때 느껴지던 압도감을 선사한다.

<어벤져스2>를 포함한 MCU 시리즈는 '우리 시대의 평화'와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며 히어로물의 새로운 공식을 써내려 왔다. 조금은 물리기 시작했을지라도 <어벤져스2>는 끝내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이 공식의 유효기간이 아직 남아 있음을 입증했다. phase 2의 대미를 장식할 <앤트맨>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또 이어질 phase 3부터는 MCU 기반 영화들이 산적한 과제들을 해결하고 보다 많은 영화 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기를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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