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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나리 핀 이른 봄
 개나리 핀 이른 봄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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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시대나 독재시대에 스스로 자연이나 자기 내면에 빠져 비정치적으로 살았다고 주장하거나 평가되는 경우에도, 현실에 눈을 감았다는 점에서는 역시 대단히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다. - 박홍규 저 <예술, 정치를 만나다>'

산초나무 잎을 한 장 땄다. 새끼손톱만한 여린 이파리를 앞니 사이에 끼고 살살 씹었다. 씁쓰름하니 매콤한 향이 은은히 입안에 번진다. 아직 독이 바짝 오른 향은 아니다. 어디서 들었더라? '산을 타다 갈증이 나거나 지치면, 산초 이파리를 씹어라.' 그런가? 뭔가 환기되는 기분이다.

산나물을 뜯으러 마을 뒷산에 오른 길이다(산 주인의 동의 없이 산나물과 약초를 채취하는 건 불법. 물론 나는 허락받고 동네 산에서...). 지리산 바래봉에서 남쪽으로 이어져 내려온 산줄기. 봄이 곧 끝나려나. 5월 한낮의 태양이 뜨겁다. 어느새 숲은 푸른 농담으로 우거졌다. 고사리, 고비, 우산나물을 뜯으러 지난번에 올라왔을 때만 해도, 연둣빛 성긴 숲이었는데.

산초 잎 탓인지, 나무그늘에 앉아 쉰 탓인지, 갈증이 웬만큼 가라앉았다. 거친 숨도 땀도 식었다. 바람 한 줄기 일지 않는 숲은 적막하다. 그렇게 나는 세상 평화롭고 고요한 숲속에 앉아있다. 그러나 내 속은 그리 고요하지 않다. 

삭발까지 한 30년 지기 친구

 서울연극협회 박장렬회장
 서울연극협회 박장렬회장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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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서울에 올라가 대학로에서 '박장렬'을 만나고 온 후부터였나. 지리산 산골마을의 생활이, 문득문득 마음 편치 않다. 박장렬은 마로니에 공원 아르코예술극장 앞에서 천막농성 중이었다. 삭발까지 하고.

30여 년 막역한 친구로, 내가 알았던 박장렬은 연극 밖에 모르는 '연극쟁이'였다. 그런 그가 어쩌다 '투사'가 된 걸까? '자리'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나? 그는 현재 서울연극협회회장이다. 시대가 그렇게 만들었나? '민주주의'니 '정의'니 하는 말들이 공허한 외침처럼 무색하게 깨지는 시대.   

"장렬씨,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천막농성장(서울연극제 비상임시 사무국)에 들어서며, 내가 물었는데... 그 천막에는 이런 글이 써 있었다.

'파행행정 일삼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해체하라! 무능한 공연예술센터 유인화 센터장은 해임하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문화융성에 역행하는 파행행정을 책임져라! 감사진은 공연예술센터 운영극장에 대한 안전점검 검사를 실시하라!'
 
산초 잎을 한 장 더 씹고 일어섰다. 다시 가파른 산길을 탔다. 심심찮게 참취, 고사리가 눈에 띄었다. 나는 또 세상 밖 사정은 다 잊고, '보물찾기'에 정신이 빠졌다. 더위도, 가쁜 숨도 지장 없다. 그저 나는 신났다. 한때 내 꿈이 '약초꾼'일 때도 있었으니. 똑! 똑! 고사리 끊는 소리가 짜릿짜릿 뇌파를 자극한다. 

이 산골마을에서 네 번째 보내고 있는 봄. 집 밖으로 내내 빨빨거리며 나다닌 봄이다. "해가 인제사 똥구멍까지 올랐는디, 벌써 어딜 또 간댜아~?" 동네 할머니들 인사를 받으며. 진즉에 동네방네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을 게다. '오메, 바람났어, 바람났어!' 라고.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는데. 아침이고 낮이고 발그레한 낯빛으로 살랑살랑 엉덩이를 흔들며, 4월 초부터 싸돌아다녔으니. 지난 겨울부터 3월까지 나는 따뜻한 나라에 가 있었다. 필리핀의 팔라완에서 호텔을 경영하는 지인의 일을 거들다 돌아왔다. 돌아오니 산수유, 명자나무, 살구나무, 개나리, 앵두꽃, 수선화... 봄꽃들이 마당에 활짝 펴있었다.

봄바람 안 나고 배기겠나. 눈만 뜨면 마당에 나가 서성이며 풀을 뽑고, 꽃들을 옮겨 심고... 손바닥만한 텃밭 가꾸랴. 꽃구경 나가랴, 냉이, 쑥, 원추리, 민들레, 머위, 씀바귀, 우산나물, 취나물, 참나물, 고사리... 봄나물 뜯어다 먹으랴, 손에 밴 풀물흙물이 빠질 날 없었다. "그러고 혼자 댕기면, 안 무서워?" 할머니들이 묻기도 했다. 그 사이 먼저 핀 꽃들이 졌다. 다음 꽃들이 차례차례 만개했다. 

속 시끄러워질 뉴스 따위는 보지 않았다. 입만 열면 썩은 정치를 비판하며, 열을 내는 친구의 전화도 피했다. 나는 마냥 자연과 사랑에 빠져 봄노래만 불렀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하던 루소의 수제자인 양. 세상 욕망 다 내려놓은 사람처럼.

아무튼 나는 혼자 태평성대를 누렸다. 좋아하는 향긋한 나물을 실컷 먹으며. 봄이라는 마약에 취해 하루하루 황홀했다. 자연에 취해 사니, 삶이 지극히 단순하고 가볍기만 했다. 이러려고 서울을 떠나 지리산으로 온 거니까.  

"봄처~녀 제~오시네~ 새풀~옷을~ 입으셨네~ 하얀~구름 너울 쓰고~...

노래가 또 흥얼흥얼 절로 나온다. 취나물이랑 고사리를 끊으며 천천히 산 위로 오르다보니 산등성이에 올라섰다. 600고지쯤 될까. 시원한 바람이 능선 반대편 쪽에서 불어왔다. 나물 가득 든 배낭을 내려놓고 앉아, 땀을 식힌다.

"에에취! 에에취!"

 송홧가루 날리는 지리산
 송홧가루 날리는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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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거푸 재채기가 터졌다. 눈꺼풀이 금세 간질간질... 열흘쯤 됐나. 바깥출입을 자제하기 시작한 게. 송홧가루가 노랗게 흩날리기 시작할 때면, 여지없이 눈물콧물 재채기, 알레르기 증상이 일어나 괴롭다. 그때는 잠깐잠깐 마당에서만 논다. 오늘은 바람도 잔잔하고, 좀이 쑤셔 못 참고 나섰는데. 에에취!

박장렬의 재채기는 정말이지 극렬하다. 대여섯 번 연이어 발작적으로 터지는 데다가 소리도 엄청 크고 요란하다. 정말 얼이 빠져나가겠다 싶을 정도로. 속으로라도 꼭, 'God Bless you!(신의 가호를)'라고 빌어줘야 하니. 자주 터지는 재채기는 아니지만, 그런 그의 재채기 소리를 들은 게 십수 년은 된 것 같다. 무슨 알레르기 증상이 그런지...

마로니에 공원 천막농성장에서 박장렬을 만난 날, 나는 그의 권유로 '길을 잃다. 길을 묻다'라는 세미나에 동행했다. 장소인 성북구청으로 가는 길, 운전을 하며 그는 재채기를 한차례 터트렸다. 옆에 있는 나까지 정신이 혼미해지는 발작. 그가 재채기를 멈추고 정신을 수습하자 내가 물었다.

"반응은 어때?"
"눈 하나 깜짝 안 해."

나는 입을 다물고 잠시 그의 머리통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서릿발 같은 백발이 일어서고 있었다.

박장렬이 머리를 빡빡 민 건 지난 4월 13일이었다. 서울연극협회 집행부가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박장렬 회장, 김태수 감사, 공재민 사무처장이 삭발식을 거행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센터의 권력과 '갑질 행정'에 대한 항거였다.

 아르코예술극장 앞 천막농성
 아르코예술극장 앞 천막농성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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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되기까지의 내막은 이렇다. 지난해 11월, 공연예술센터는 아로코예술극장 대관에서 서울연극제를 탈락 시켰다. 사유는 '서류 미비'였다. 서울연극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서울연극협회는 즉시 명예훼손 등의 형사고소를 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그 결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과 소극장 일부를 대관해 주는 것으로 합의됐다. 고소를 취하했다.

그런데 공연예술센터가 아르코예술극장을 4월 13일부터 5월 17일까지 폐관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지난 4월 3일이었다. 제36회 서울연극제 개막식 하루 전날이었다. 아르코대극장과 소극장 무대에 오를 작품들이 공중에 뜨게 됐다.

폐관의 사유는 무대 구동부(기계조작으로 움직이는 모든 무대 시스템)에 중대한 이상이 발생해, 긴급점검 및 보수공사를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정말 기가 막힌 일이지. 너무 치졸하잖아. 골탕을 먹이겠다는 건지 뭔지."

탄식을 섞어가며 참담한 목소리로 박장렬이 말했다.

"다른 극장 빌려서 공연을 올리기는 한 거야?"
"응. 힘들게 서울연극제는 치르고 있어."
"왜 그러는 것 같은데?"
"연극계 좌파로 찍혔거든. 성명서 몇 번 발표하고, 1년 넘게 '세월호' 집회에 참석하고 있고... 그러면 좌판가? 좌파는 무슨... 그렇다고 이럴 수 있는 거야?"
"앞으로 어쩔 건데?"
"5월 18일 서울연극제 폐막식 후 천막은 철거하고, 저쪽이랑 협의과정을 진행할 예정이야. 결렬되면 형사고소, 손해배상청구소송 할 거고. 변호사 비용부터 머리 아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밟히면 밟히는 대로 나 죽었다 하고 있을 순 없잖아. 나쁜 선례를 남길 순 없잖아."

뭐라 위로의 말도, 격려의 말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에에취!"

재채기가 다시 터졌다.

코를 풀고, 나는 그만 산을 내려갈까 하다가, 더 가기로 한다. 능선을 타고 북쪽으로 이어지는 숲길로 들어섰다. 잡목이 우거진 오솔길이다. 그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마을 북쪽자락으로 내려오는 길을 만날 게다. 숲의 기운이 싱그럽다. 은방울꽃이랑 둥글레꽃이 방울방울 하얗게 달린 숲. 나물은 그만 뜯자. 그냥 좀 걷자.  

그날 박장렬과 참석한 세미나는 연극연출자, 극단 대표, 예술감독, 등 발제자들이 '탈 대학로'에 대해 발표하고 질의문답 하는 시간이었다. 대학로에 밀집한 130여 개의 극장들과 비싼 대관료, 예술지원제도와 공공극장의 문제점, 젊은 연극인의 설 자리 등 많은 얘기들이 쏟아졌다.   

연극계의 현실을 직시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그들의 표정은 진지하고 한편 비장했다. 박장렬의 입에선 '연대', '조직', '정치' 같은 단어들이 흘러나왔다. 

끝나고 돌아오는 길, 운전을 하며 박장렬이 또 내게 말했다.

"정치와 무관한 예술이 없다, 라는 말이 맞아. 아니 우리가 뭘 하고 살든,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어. 특히 이 분단국가에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만난 '5,18 홍보대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만난 '5,18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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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나는 서울연극제 참가작 중에서, 최원중 연출의 <청춘, 간다>를 관람했다.  절망적인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30대 두 남녀의 성장통에 관한 이야기였다. 남자배우가 '내 인생이 시시해져버렸어. 도와줘!'라며 울부짖을 때, 나도 같이 울었다. '청춘, 간다'가 아니라 나는 '인생, 간다' 이니 더 서럽게.

공연을 보고 마로니에 공원을 걸었다. 일요일 오후 공원은 축제 분위기로 들썩였다. 탱고를 추는 젊은이들, 전자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청년, 부채춤을 추는 무대,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젊은 연인들... 그리고 서울연극제 비상임시 사무국 천막. 또 그 옆 부스엔 '5.18 홍보대사'들이 나와 있었다. 역사를 잊지 말자며. 어린 대학생들이었다.    

봄날은 간다, 이렇게

봄나물 원추리, 머위, 쑥, 민들레
▲ 봄나물 원추리, 머위, 쑥,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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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 핀 마당에 취나물을 삶아 널었다.
 꽃 핀 마당에 취나물을 삶아 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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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취했나, 숲에 취했나? 나는 잠깐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런데 여긴 어디지? 그만, 길을 놓치고 숲 깊이 들어온 것 같다. 방향 감각까지 잃었다. 숲이 우거져 아래를 조망할 수 없으니, 여기가 어디쯤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산에서 한두 번 길을 잃은 것도 아닌데. 아래로 방향을 잡았다. 우거진 잡목과 가시나무를 헤치며.

한참 헤맨 것 같다. 눈앞에 시커먼 숲이 나타났다. 수백 그루의 소나무들이 숯덩이로 서 있다. 3주 전쯤이었나. 마을 뒷산에 산불이 났었는데. 마을로 연기가 밀려 내려오고, 헬리콥터가 물을 퍼나르고... 그때 불탄 자리가 여긴가 보다. 죽어 떨어진 솔잎이 검게 탄 땅을 덮고 있다.

생명력이 강한 숲은 머잖아 다시 회복되리라. 소나무가 저만큼 자라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나저나 나는 어디로 가야지? 갈피를 못 잡겠다. 포복하고 미끄러져 내리고... 또 한참을 헤맸다.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마침내 길을 찾았다. 올라갈 때 탔던 그 골짜기 길이랑 이어지는 오솔길. 나는 분명히 능선을 타고 북쪽으로 걸었는데, 헤매면서 방향이 다시 뒤집어졌나 보다. 제자리로 돌아온 거다. 좀 어리둥절하다. 

올라갈 때, 산비탈 고사리 밭에서 만났던 할머니를 다시 만났다.

"아이구, 고사리 끊다가 내 허리가 끊어지겄어."
"할머니, 쉬었다 하세요! 날도 너무 뜨거워요."
"이, 이저꺼정 쉬었어."

할머니는 다시 허리를 90도로 접고 고사리를 꺾는다. 나는 집에 돌아와 취나물이랑 고사리를 얼른 삶아 널었다. 콧노래를 또 흥얼거리며. 바싹 잘 말려 박장렬에게 보낼까. 봄 내내 나물 뜯어다 만든 묵나물과 장아찌를 골고루 보내야겠다. 식구들이랑 같이 와서 먹으라고 부르던가.

나의 봄날은 이렇게 가고 있다.

"에에취!"

○ 편집ㅣ박순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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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귀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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