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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이자 판타지 동화 작가이기도 했던 루이스는 이런 취지의 말을 남겼다. "열 살 때 가치 있게 읽은 책은 쉰 살이 되었을 때 읽어도 열 살 때와 똑같이,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더 읽을 가치가 있어야 한다. 어른이 되어서 읽을 만한 가치가 없는 책은 어렸을 때도 읽을 필요가 없던 책이다(중략)."

소설가 이외수는 이를 두고 일찍이 이런 어록을 남겼다. 누군가가 "사람이 책을 안 읽는다고 부끄러워 할 것 없잖아요?"라고 묻자 이렇게 대답한 것이다. "그렇지. 책 안 읽는 이 세상의 모든 동물들(개나 돼지나 소나 말이나 양 같은 가축을 비롯하여!) 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나도 부끄러워하지 않거든!" 통쾌하도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 <청소년을 위한 독서 에세이>에서

<청소년을 위한 독서 에세이>(해냄 출판사 펴냄)에 등장하는 이외수의 이 말은 요즘 내 마음을 가장 끌고 있는 말이다. 책 읽기의 중요성은 물론, 책의 역할과 가치를 이처럼 명쾌하게 말한 사람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청소년을 위한 독서 에세이> 책표지.
 <청소년을 위한 독서 에세이> 책표지.
ⓒ 해냄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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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핏하면 "넌 왜 맨날 그렇게 고리타분하게 책에만 매달려 사냐?"라거나 "책 좋아하는 사람치고 잘 사는 것 못 봤다"고 말하곤 하는 고향 친구 둘에게 이 부분을 찍어 보내주면 조금 야비하다고 할까? 아무튼 이 말은 가급적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됐다.

책 읽기 혹은 책 수집에 관한 책 중 한 번쯤 접했을 박상률의 <청소년을 위한 독서 에세이>, 이 책도 이외수씨 못지 않게 책과, 책 읽기의 중요함과 필요성을 명쾌하게 이야기한다.

저자는 한문 소설도 요즘 청소년 언어로 읽혀야 한다는 생각에 그간 나관중의 <삼국지>나 연암 박지원의 한문 소설을 현대 한국어로 옮기는 것 외에 청소년 작품을 많이 썼다고 한다.

저자에게 '청소년 문학가'라는 별칭이 붙은 것은 1997년에 출간된 저자의 소설 <봄바람>(사계절 출판사)이 '국내 창작 첫 청소년 성장 소설'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청소년이 읽을 수 있었던 작품들은 주로 '명랑 소설' 내지 '순정 소설'로 분류하거나, 그렇게 불리었다. 작품이 그리 많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청소년 문학', '청소년 성장 소설'이라는 용어는 이 소설부터 시작됐다. 2015년 현재 '청소년 문학' 내지 '청소년 성장 소설'이라는 용어가 자연스러울 정도로 국내 창작 청소년 성장 소설에는 많은 작품이 있다. 프로필에 '작가의 작품 활동 덕분에 청소년 문학 작품 시장이 커졌다'는 부분이 나온다. 저자의 <봄바람>은 '청소년 문학의 물꼬를 튼 작품'으로도 불린다.

언젠가 들은 이야기 하나. 서울 올림픽을 치른 후에 어느 기자가 일본에 가서 일본 기자들을 만났단다. 화제가 올림픽을 포함한 스포츠 이야기로 자연히 흘렀다. 그래서 이 기자 양반, "한국이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스포츠 강국이 되었다. 이제 곧 여러 분야에서 일본을 따라잡을 것이다"라고 의기양양하게 떠들었단다.

그러자 묵묵히 듣고 있던 일본 기자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단다. "뭐, 스포츠에선 한국이 일본을 제칠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분야는 어림도 없다. 한국인들의 1인당 한해 독서량은 겨우 두세 권인데, 일본인들은 그 열배도 넘는다"라고 말이다. 우리나라 기자의 말문이 막혔을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 <청소년을 위한 독서 에세이>에서

이 책은 오랫동안 청소년 책 읽기 관련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는 저자가 점점 책을 읽지 못하는 청소년이 많아지는 현실을 염려해 쓴 '책 읽기'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책은 무엇이며,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내로라하는 수 많은 역사 인물들은 왜 그토록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했을까?' 등과 같은 책 읽기 관련 기본 이야기부터, '그렇다면 어떤 책이 읽을 만한가', '이런 이유들로 고전을 읽어야', '우리나라에 이런 작품, 이런 작가가 있다', '이런저런 상황을 알 수 있는 이런 책들이 있다'에 해당하는 다양한 작품도 이야기한다. 아울러 책을 읽으며 생각하기, 책 읽기를 통해 삶 가꾸기 등까지, 책과 책 읽기에 관한 이야기들을 7장에 걸쳐 들려준다.

저자는 애서가 혹은 책 수집가로도 유명하다. 저자가 보유한 책은 2000년대 초 2만 여권('한 박스에 몇 권쯤 들어가니 대략 몇 권 쯤 일 것이다'라는 식으로  셌다고).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와의 만남을 비롯해 책 수집 관련 특별한 사연 등도 재미있게 풀어 놓음으로써 청소년 독자들에게 책 수집의 즐거움도 알려준다.

모든 글에 저자의 특별한 책 사연들이 녹아 있다. 때문일까. 훨씬 진솔하게 와 닿는다. 저자의 책 사연을 읽으며 아마 나처럼 책과 함께 해온 날들을 떠올릴 사람들도 많으리라. 책의 또 다른 재미는 책 관련 다양한 상식을 접할 수 있다는 것. 책 관련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워낙 많으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 관련 상식을 쌓고자' 읽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요즘은 책에만 문자가 찍혀 있는 게 아니다. 휴대전화는 물론 텔레비전, 인터넷 할 것 없이 도처에 문자가 박혀 있다. 이런 세상이기에 책에만 문자가 찍혀 있는 걸 바라는 건 말이 안 된다. 나도 지금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면 책 아닌 다른 걸 더 즐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책을 읽자'고 늘 말한다. 무엇보다 책은 자기 머리로 생각을 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문자가 있는 다른 매체들은 자기 머리로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 <청소년을 위한 독서 에세이>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의 마지막 장 '소통하는 도서관'을 읽던 지난 15일 밤, 공교롭게 '디지털 디톡스' 관련 뉴스를 TV에서 봤다. 디지털 디톡스는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지털 기기들을 1시간만이라도 멀리하자는 운동으로 미국에서 출발해 우리나라에서도 디지털 기기 사용을 하지 않도록 하는 휴양 시설이 늘고 있는 등 점차 확산 중이라고 한다.

뉴스에선 성인 한 명에게는 책을, 다른 한 명에게는 스마트폰을 주고 2시간 동안 읽거나 쓰게 한 뒤 뇌파를 비교하는 실험도 보여줬다. 실험 결과 책을 읽은 쪽의 뇌파 변화는 거의 없었지만, 스마트폰 사용자 쪽에선 뇌의 안정도를 높이는 뇌파(알파파)는 줄곧 초조하고 심리적 불안을 일으키는 뇌파(하이베타파)가 증가했다. 또 실험 시간 내내 긴장 상태가 이어지면서 교감 신경이 자극돼 스트레스 지수가 급격히 올라가는 등 급격한 변화를 보였다.

책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늘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이런저런 이유들로 책을 읽지 못하거나, 읽지 않는 청소년이 많다는 것이다. 내 주변에 책 읽기도 스마트폰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하거나,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정보를 맹신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이다.

책에 제대로 미쳐본 사람들은 안다. 하여 말할 것이다. "책은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서만 읽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는 그 자체만으로도 남은 절대 모르는 나만의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책과는 담 쌓아온 나, 어떤 책을 어떻게 읽을까?'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는 청소년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알려주는 계기의 책이 되어 주리라. 그리고 생활이 바빠 책 한 권 읽을 여유가 없다는 어른들도 다시 책을 붙잡게 하는 계기가 되어 주리라. 부디 책 읽기로 나만의 무언가를 얻거나 찾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청소년을 위한 독서 에세이>(박상률) | 해냄 | 2015-04-20 |1만 3800원



청소년을 위한 독서 에세이 - 청소년 문학가 박상률이 풀어 놓은 책 읽기에 관한 모든 것

박상률 지음, 해냄(2015)


태그:#청소년 문학, #책읽기, #디지털 디톡스, #봄바람, #박상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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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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