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의 표지.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의 표지.
ⓒ 보물창고

관련사진보기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라고? 책 제목이 호기심을 당긴다. 작명소를 하시나. 표지를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시골에 사는 할머니인가 보다. 할머니가 앞에 있는 작은 갈색 강아지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할머니는 이 개를 사랑하는 게 틀림없다. 바라보는 눈빛에 사랑이 깃들어 있다. 딱 할머니들이 손주들을 볼 때의 표정이다. 옆에서 푸른 자동차가 이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본다. 차가 어떻게 보냐고? 그림 속 차량의 헤드라이트와 보닛 부분이 꼭 사람의 눈, 코, 입처럼 보여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꼭 "할머니는 내가 지키고 있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표지 속 장면에 자꾸 눈길이 간다. 수채화 풍의 정겨운 그림이 말을 건넨다. 이름 짓는 할머니의 사연이 궁금하지 않느냐고. 이럴 땐 "네, 궁금해요."라고 크게 대답할밖에. 그리고선 책을 펼친다. 첫 문장이 제목을 반복하고 있다.

'이름 짓기를 무척 좋아하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이름을 짓는지 봤더니 낡은 자가용에게는 '베치'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단다. 표지에 나온 바로 그 차다. 그뿐 아니다. 할머니가 앉아서 쉬는 헌 의자에게는 '프레드'라고, 할머니가 오래도록 살아온 집에는 '프랭클린'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아, 물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할머니구나.

그런데 할머니가 모든 물건들에 이름을 지어 주는 건 아니다. 할머니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는 것들에게만 이름을 지어 준다. 다정하게 이름을 부를 친구가 없는 게 싫어서 할머니가 이름 짓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친구들은 이미 모두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가 외로운 일상을 견디는 방법이 이름 짓기였던 것이다. 이름 지어준 것들보다 오래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행복해하면서 할머니는 단조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사는 집, 타는 차에 이름을 붙이던 할머니

그러던 어느 날, 갈색 강아지 한 마리가 할머니 집 앞에 나타난다. 한참 동안 강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할머니는 냉장고에서 햄 한 덩어리를 꺼내와 강아지에게 먹인다. 그렇다고 집 안으로 들이지는 않는다. 베티도, 프랭클린도, 프레드도 강아지를 반가워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핑계고 할머니가 내키지 않았던 거다. 강아지는 할머니보다 오래 못살 확률이 높으니까. 당연하다는 듯 강아지에게는 이름을 지어 주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매일 찾아오는 강아지에게 매번 먹이를 준다. 이제 사건이 발생한다. 날마다 찾아오던 강아지가 어느 날 갑자기 할머니네 집에 오지 않은 것이다.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 할머니는 문득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하다 못해 점점 슬퍼진다.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에는 갈색 개를 찾아 나선다.

인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그림책

할머니는 이름도 없는 갈색 개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답은 꼭 책을 보고 확인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안 봐도 빤하다고? 눈치 빠른 사람들은 쉽게 답을 유추할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노상 당부하지 않는가.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답을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이 말을 되돌려주고 싶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아련한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할머니의 쓸쓸함이 가슴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름 짓기는 세상에 홀로 남은 할머니가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이었다.
 이름 짓기는 세상에 홀로 남은 할머니가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이었다.
ⓒ 보물창고

관련사진보기


혹 떠오르는 얼굴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나 이웃에 홀로 사시는 노인분 등. 그분들께 갈색 개가 할머니에게 했듯이 따뜻한 온기를 전해보자. 깜짝 전화도 좋고, 다정하게 건네는 인사도 좋겠다. 그림책 속 할머니는 갈색 개를 찾아다니면서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그들을 만난 게 큰 행운이었음을 깨닫는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인연을 맺는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인지. 짧은 그림책 한 권이 삶의 깨달음을 전한다. 책 뒤표지에 '칼데콧 상과 뉴베리상을 각각 두 번씩 수상한 작가 신시아 라일런트의 그림책'이라고 홍보하고 있는데 큰 상을 받을 만하다.

'이름'이 갖는 힘

책을 다 읽고서 동시 한 편이 생각났다. <아무도 내 이름을 안 불러 줘>라는 시집에 실린 '이름'이라는 시다. 초등학교 1학년이 썼다.

"날마다 아빠랑 엄마는 누나 이름만 부른다. 아빠는 엄마를 "태인아." 하고 부르고 엄마는 아빠를 "태인이 아빠." 하고 부른다. 우리 집에서 내 이름은 아무도 안 불러 준다. 내가 불만을 나타내서 이제부터는 아빠를 부를 때 내 이름을 앞에 붙여서 부른다고 엄마가 그랬다."

엄마 아빠에게 이름이 불리지 않는 지은이가 많이 속상했나 보다. 아이는 그 불만을 가슴에만 담지 않고 부모님께 토로한다. 왜 내 이름은 안 불러 주냐고.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의 부모님은 뜨끔했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그런 것에도 서운함을 느끼는구나. 그러면서 부부는 대화를 나눴을 테고 아이가 만족할 만한 해결책도 낸다. 앞으로 지은이는 엄마가 아빠를 부를 때마다 씩 웃을지도 모르겠다. 자기 이름을 듣고서.

우리는 사람들과 이름을 부르고 불리는 것만으로도 한층 가까워진다. 김춘수는 그로써 그의 '꽃'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름은 우리가 의미 있는 존재임을 나타내주는 표상이다. 너는 이 세상에 살아갈 만한 소중한 사람이야 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에서 할머니가 물건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니까 꼭 살아있는 것 같고 정감이 간 것처럼. 그게 바로 '이름'의 힘인 게다.

아이와 이름 짓기 놀이를

아이와 함께 할 이야기가 많은 책이다. 아이의 이름은 누가 어떻게 지었는지, 또 어떤 뜻이 담겼는지 일러주자. 삼행시 짓기 등을 통해서 아이 나름대로 자기 이름에 의미를 붙여하는 놀이도 할 수 있다. 그리고선 아이가 좋아하는 물건들에도 이름을 붙여보게 하자. 어른들은 생각 못하는 기발한 이름들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러고서도 시간이 남는다면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에게도 이름을 지어주는 건 어떨까. 책 어디에서도 할머니의 이름을 찾을 수 없는 건 독자들이 지어 주라는 작가의 미션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이름을 지으면 이름을 짓기만 했지 자기 이름이 불리는 걸 듣지 못하던 할머니가 그림책에서 나와 빙그레 웃을지도 모른다. 그 웃음을 상상하니 갑자기 엄마도 보고 싶고, 아이도 생각난다. 오늘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마음껏 불러 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 글: 신시아 라일런트 그림: 캐드린 브라운 옮김: 신형건 출판사: 보물창고 정가: 12,000원 출판연도: 2004
이 글은 개인 블로그 책 볼래, 사진 찍을래?(blog.naver.com/jjung9110)에도 올립니다.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

캐드린 브라운 그림, 신시아 라일런트 글, 신형건 옮김, 보물창고(2004)


태그:#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 #아무도 내 이름을 안 불러 줘, #서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