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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님의 인생 이야기
 택시기사님의 인생 이야기
ⓒ 최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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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님 검은 셔츠 어깨에 비듬이 듬성듬성 보였다. 택시 안은 사람들이 남겨놓은 채취와, 헤지고 바래져가는 낡은 내부로 인해 특유의 진한 냄새가 났다. 언젠가 다른 기사님이, 회사 택시를 처음 하는 사람들이 제일 낡은 차를 받는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이 맞다면 지금 기사님은 택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유리창문을 내려 바깥 바람이 들어오게 했다. 같은 요금에 이런 택시를 타게 되면 편안한 마음으로 목적지까지 가기는 힘들다. 그래서 예전엔 그나마 관리가 되는 편인 개인택시를 골라 타기도 했다.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그런 차를 운전해야 하는 기사님들도 오죽 힘들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럴 땐 냄새에서 벗어나기 위해 관심을 기사님께 돌린다. 지나친 경계만 하지 않는다면 기사님의 다채로운 인생 경험을 들을 수도 있다.

"여자 분이 이 시간에 술을 마시고…."

시작이 좋지 않았다. 이른 회식이 있었고, 회사에 어려움이 있어 속상한 맘에 내 주량을 넘겼다. 술 냄새 날까 염려되어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호의적이지 않았다.

"요새 하도 힘드니까 동료들끼리 한잔했어요."
"힘들다고 술 마시면 전 벌써 죽었습니다."

기사님 말투에서 깊은 절망감이 느껴졌다. 힘든 일이 있으셨나 보다고 물으니 인생 이야기를 하셨다.

"한강 다리 여러 번 갔네요. 지금도 그때 왜 죽지 못했을까 후회할 때가 많습니다."

10여 년 운영하던 회사가 망하고 기사님께 남은 거라곤 감당할 수 없는 빚과 절망뿐이었다고 했다.

"사장은 망해도 다 빼돌려 놓은 줄 알아요. 사실 그런 사람 몇 명이나 되겠어요? 회사가 어려워지기 시작하면 사장은 전 재산 날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믿지 않으니 죽음으로밖에 증명할 방법이 없더라구요."

기사님은 금세 흥분했다. 지난날의 기억이 다시금 살아나 괴로우신 듯했다.

"회사가 어려워지기 전에 구조조정 했으면 망하진 않았을 거라고 하는데, 첨엔 위기를 넘길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버텼고, '방법이 있겠지' 해서 버텼고, 지금까지 꾸려온 회사 포기할 수 없어서 버텼고. 그러다 때를 놓친 거지. 나중엔 알아서 나가주는 직원들이 고맙더라고요. 언제가 제일 서운하냐면, 직원이었던 사람들이 회사 어려워진 걸 내가 무능해서 그렇다고 몰아세울 때요."

"더 고통스러운 건 재기할 희망이 없다는 겁니다"

흔히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해 힘들어하는 근로자들의 이야기는 많이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월급을 주지 못하는 사장님들의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기사님 말마따나 자살로 생을 마감한 뒤에나 회자될 뿐….

"능력이 없으면 사업하지 말아야지. 월급 줄 능력도 없으면서 사업은 왜 해?"

언젠가 나도 했던 말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에서 월급이 제때 나오지 않았을 때, 동료들끼리 술잔 기울이며 사장을 원망했다. 잘 되는 것 같으면 사장이 혼자 다 쓰는 것 같고, 어려우면 사장이 능력 없어 어려운 것 같고, 모든 원망이 사장에게 갔다.

회사가 능력이 되면서도 직원들의 생계를 외면한다면 지탄받아야겠지만, 그런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시장은 여러 단계의 하청, 재하청의 구조로 되어 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회사 규모는 작아지고 대기업들에 휘둘리는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름만 사장이지 직장인들보다 못한 생활을 영위하시는 분들이 더 많다. 주변 사장님 중에 불면증과 빚이 없는 경우 아직 못 봤다. 누군가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것, 내 생계보다 더 큰 중압감이다.

기사님은 물류 회사를 운영했다. 많은 거래처들이 있었지만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 서서히 위축되어갔고, 실패를 인정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분명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했어야 한다거나, 위기를 미리 감지했어야 한다거나. 사장도 경험과 희망으로 살아간다. 경험이 쓸모 없어졌을 때,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판단력과 통제력을 잃는다. 근로자는 직업을 잃으면 사장을 원망이라도 하지, 회사가 망하면 온갖 비난의 화살을 홀로 맞아야 하는 사장은 누굴 원망할까.

"더 고통스러운 건 재기할 희망이 없다는 겁니다. 신용불량자 되고 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택시밖에…. 여기까지 오는 데 힘들었습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장님이 있었다. 꽤 잘나갔고, 만나면 그 자신감에 에너지를 받기도 했지만, 부럽기도 했다. 작년부터 연락이 되지 않는다. 주변에서도 모른다고 했다. 회사는 문을 닫았고, 흔한 말로 잠수를 탔다.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들이 어렸는데, 부인이 예뻤는데, 수시로 날아오던 SNS 속 사진들은 종적을 감추었다.

"기사님 살아 있어주셔서 제가 다 감사합니다."

닫히는 차 문 뒤로 허허 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한번 회사가 망하면 재기가 불가능한 시대에 사업하고 있는 많은 사장님들 힘내셨으면 좋겠다. 망하고 절망에 자살을 생각하시는 사장님들께서는 제발 살아만 계셔주길 바란다. 옛 어른들 말씀처럼 살아내다 보면 웃으며 이야기할 날이 있을 거라는, 그런 기회조차 없는 사회는 아닐 거라는 희망을 가져보자.


태그:#사장, #택시기사, #자살,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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