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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제주도 이제서야 실감나는 제주도 여행
▲ 가자, 제주도 이제서야 실감나는 제주도 여행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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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만 원... 아, 다 갚아 버리면 끝인데."

매달 25일. 월급이 들어오면 내가 가장 먼저 들어가는 곳은 학자금 대출 사이트다. 로그인을 하고 학자금 대출 현황을 보면 절로 밀려드는 한숨. 정신 차리고 중도 상환 메뉴를 클릭한다. 학교를 다니며 8학기를 대출 받았고, 그 중 한 학기는 취업후 상환이 가능한 '든든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당시에는 일반 대출에서 매 학기별 이자가 나가는 게 내 용돈 상으로 너무 부담이 됐다. 하지만 막상 나이가 들고 일을 하다 보니 든든 학자금을 통해 갚아 나갈 복리 이자가 더 걱정됐다. 그래서 든든학자금 대출 원금을 먼저 갚아 나가기로 했다.

든든학자금으로 받은 등록금 350만 원. 그렇게 월급 중 20만 원, 30만 원, 40만 원씩 조금씩 갚아 나가왔고 근 10개월 동안 300만 원 정도를 갚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15년 4월. 내 눈 앞엔 350만 원의 한 학기 등록금 중 45만 원의 잔액만 남아 있었다.

이렇게 가는 게 맞는 걸까?

월급으로 학자금 대출 사이트에 들어가 남은 45만 원이 아닌 15만 원만 갚고 사이트 창을 껐다.

'하... 제주도 가는 게 맞나? 이 돈이면 한 학기 등록금 다 털어 버릴 수 있는데.'

다시 인터넷 창을 켜고 들어간 사이트는 항공사 사이트. 4월 말 비행기 티켓을 끊고 제주도 여행을 가려고 계획 중이었다.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놀러 가 본 건 딱 두 번. 해외 여행도 물론 못 가봤다. 여행을 잘 다니지 않는다고 해서 주눅 드는 편도 아니었고, 현실의 삶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내 여건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여행 못 가서 어떡하냐',  '이렇게 예쁘고 젊은 나이에 어디라도 당장 떠나야지, 왜 그러고 있냐'는 타박 아닌 타박을 들을 때도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곤 했다.

물론 나도 안다. 오늘의 나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고, 앞으로 지낼 시간 중 오늘이 가장 젊고 예쁘다는 걸. 하지만 항상 그것은 이상향일 뿐... 홀가분히 여행을 떠난다는 건 내게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당장 먹고 사기에도 빠듯한 돈. 그런 내게 '여행은 빚을 내서라도 가야 한다'고 많은 사람이 이야기했지만 크게 와 닿진 않았다. 물론 그들의 가치와 입장에는 엄청 동의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우물쭈물할 때 기운을 준 건 어머니셨다. 통화하면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어머니께서 그러시더라.

"엄마, 아빠 다 늙어서 네가 정말 없으면 안 될 때는 니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여행일지도 몰라. 엄마, 아빠도 다 아직 건강하고 너도 너 스스로 돈 벌고 있을 때 멀지 않은 곳이라도 다녀와. 엄마는 네가 많은 걸 미루고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머니의 말씀은 꽤 큰 도움이 되었다. 여행은 사치일 뿐이라고, 나랑은 큰 관련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나였기에 비행기 티켓을 끊을 때도 수없이 고민하다가 눈 딱 감고 결제를 했다. 어렵게 티켓을 끊었다고 어머니께 말하니 잘 했다고 해주셨다. 돈 쓰는 데 항상 머뭇거리셨던 어머니였지만, 유럽 여행 티켓도 아닌 제주도 여행 티켓 가지고 무서워하는 딸에게 꽤 미안해하시면서.

그렇게 난 지난달 25일부터 27일까지 한 학기 학자금을 홀가분하게 털어버릴 남은 30만 원을 가지고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2015년 4월의 제주는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그리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20대의 내 모습을 담고 기억해줄 곳으로.

여행도 다녀본 사람이 다닌다고...

 제주도, 도착!
 제주도, 도착!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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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빠듯한 일정들과 업무량이 있었음에도 내가 제주도 여행을 간다고 하니 많은 분이 응원해 주셨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가끔은 다 놓고 떠날 수 있는 용기와 시간을 축하해주시던 주변 분들. 그러나 밀린 업무는 여전히 많았고, 떠나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아서 여행을 간다는 것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항까지 가는 길도 정신없이 갔다. 공항을 혼자 가본 게 처음이라 여기저기 헤매기 바빴던 여행 초짜. '여행도 가본 놈이 간다'는 말을 떠올리며 겨우 비행기에 앉으니 그제야 여행을 간다는 게 실감이 났다.

대략 숙소와 일정은 생각해뒀지만, 뚜벅이 여행객인 나, 교통편을 어찌할지는 고민하지 않았기에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면서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이 더 컸다. 사실 계획적인 여행도 재미는 있지만, 혼자만의 여행은 그런 재미가 더 크지 않은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 말이다.

제주공항에 오후 5시에 도착해 제주도에서 먹을 수 있는 고기 국수 한 사발 후루룩 마시고 길고 긴 게스트하우스로의 여정을 떠났다. 제주 시내에서 벗어날수록 버스 배차 간격은 1시간 이상일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버스를 진득하게 오래 탔던 건 첫날 게스트하우스로 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 이후 여행지에서는 택시를 이용하는 걸로 했다. 

버스에서 밖을 보며 멍하게 있다가 혼자 이번 여행의 목표를 세웠다. 모르는 사람들 5명이랑 대화하기. 혼자 오는 여행이니 만큼 마음대로 다닐 수 있지만,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원래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거는 걸 꺼리고 어려워하는 내 성격을 깨보고도 싶었다. 무섭고 익숙하지 않은 건 피하기 급급한 내 성격을 깰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도전 정신을 키워볼 수 있는, 나를 시험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혼자 다이어리에 끼적였다. 4월의 제주도는 내겐 여러모로 도전적인 여행이었다.

우도, 비자림, 만장굴, 오름... 아름다운 4월의 제주도

 비온 뒤 비자림은 정말 좋은 것 같다.
 비온 뒤 비자림은 정말 좋은 것 같다.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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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5월의 제주도가 아름다운 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알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을 직접 눈에 담고 사진에 담고 마음에 담는다는 건 확실히 다른 것임을 이번 여행에서 제대로 느끼고 왔다. 다른 여행지에 대한 의지가 불타오르게 된 것도 있고.

첫째 날은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며 정신없이 자다가 둘째 날부터 제대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우도 해안 도로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돌아보며 숨은 곳곳의 아름다움을 담아왔고 용눈이 오름에 올라 제주도 오름의 매력을 맘껏 느끼다 왔다. 비자림과 만장굴을 통해 제주도의 자연 경관을 눈으로 가득 담아왔고, 동문시장에서 지인들에게 줄 맛있는 것을 사면서 선물 사는 재미도 느껴본 첫 제주도 여행.

4월의 제주도를 느끼며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만들게 됐다. 앞으로 살면서 매달 제주도의 모습을 담아 봐야겠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1월의 제주도, 2월의 제주도 등 "제주도는 달 별로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고 함께 오름을 오른 게스트하우스 주인 분께서 말씀해 주셨다. 겨울의 제주도는 아름다운 풀숲은 없지만,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모습을 볼 수 있고, 가을의 제주도는 갈색으로 여물어가는 오름을 오르며 저마다 겨울을 준비하는 자연의 작은 움직임을 보여준다고 했다.

여름의 제주도는 뜨겁지만, 아름다운 바다 속에서 어느 휴양지 부럽지 않게 여름을 즐길 수 있다고 했으며, 봄의 제주도는 3, 4, 5월 다 다른 매력이 있다고 했다. 우연히 온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가 앞으로 매달 제주도의 모습을 죽기 전 매번 내려와서 담아 가야겠다는 작은 버킷리스트가 됐다.

30만 원의 가치

우도 지도 해안도로를 따라 가보자
▲ 우도 지도 해안도로를 따라 가보자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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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을 다녀와서 손은 새까맣게 타고 살도 찌고 피곤에 눌려 있었지만 마음과 얼굴은 제주도 가기 전보다 많이 밝아졌다. 좋은 여행지를 돌아다니기 위해 일상을 열심히 살아내야만 한다는 굳은 결심도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 이번 여행에서 깨달은 점 중 하나이다.

만약 그 30만 원을 그대로 한 학기 등록금을 갚는 데 썼다면 어땠을까? 지금도 아직 그 생각을 하면 찜찜한 감이 없지는 않다. 홀가분하게 털어버리고 온전히 스스로 번 돈으로 내 학자금을 완전히 털어 버릴 수 있었으니까.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고 내 배움의 대가를 내 손으로 갚아나가고 있다는, 오롯이 독립했다는 것을 실감했을 테니까.

하지만 난 이번 제주도 여행을 통해 30만 원 이상의 감정을 느꼈고, 내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모르는 사람 5명과의 대화라는 목표도 지켜 자존감도 높일 수 있었다. 2박 3일 30만 원의 도전과 모험으로. 무엇보다 2015년 나의 20대에게 항상 미안했던 날들 중 유일하게 나 자신에게 좋은 풍경과 좋은 사람과의 만남을 선물할 수 있었던, 뿌듯한 시간이었다.

어느덧 4월이 지나 5월이다. 5월의 제주도는 언제쯤 갈 수 있을까. 올해 가을이나 내년 겨울엔 다시 제주도를 방문할 예정이다. 짬은 없지만 2박 3일, 3박 4일의 길지 않은 시간이라도 꼭 다시 가봐야겠다. 그 때의 제주도는 어떤 모습을 내게 선물해줄까. 난 나 자신에게 어떤 풍경과 사람을 선물해줄 수 있을까.

○ 편집ㅣ조혜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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