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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외곽의 작은 도시, '오르비에토(Orvieto)'가 오늘 내가 선택한 일정입니다. 애초에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면서 일정을 짤 때, '오르비에토'는 생각지도 않은 곳이었습니다. 아니, 오르비에토란 이름도 처음 들어본 곳이었죠. 그런데 12월 8일이 이탈리아 국경일 중 하나로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과 박물관이 문을 열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서의 전체 일정을 다시 짤 수밖에 없었죠.

바티칸 일정은 돌아오기 전으로 미루고, 주로 월요일에 휴관하는 박물관들은 다른 날짜에 배치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12월 8일 일정이 텅 비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눈을 돌린 것이 로마 근교의 작은 도시들이었는데, 그 중에 내 눈에 들어온 곳이 바로 '오르비에토'였습니다.

로마의 중앙역 '테르미니(Termini)'에서 기차를 타고 한 시간 조금 넘게 달려가면 도착할 수 있는 곳, '오르비에토'. 오르비에토로 향하는 완행 기차에서 바라본 이탈리아의 시골 풍경은, 잘 알겠지만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이나 구릉에 가까운 완만한 지형. 숲과 들판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들은 대도시인 로마와는 전혀 다른 감흥을 줍니다.

미술 기행이란 주제로 이탈리아에 오긴 했지만, 사람과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제대로 된 이탈리아 여행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댑니다. 때마침 이어폰에선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전주곡이 들려옵니다. 여행지에서 듣는 음악은 그 자체로 한편의 드라마를 만들죠. 눈과 귀로 함께 이탈리아를 느끼며 오르비에토를 상상해 봅니다.

300여년에 걸쳐 건립된 '두오모'

오르비에토 역 앞에서 산 위의 마을, 오르비에토로 오르내리는 푸니콜레라를 탑니다.
▲ 푸니콜라레 오르비에토 역 앞에서 산 위의 마을, 오르비에토로 오르내리는 푸니콜레라를 탑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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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새로운 감흥 속에 도착한 오르비에토 역. 하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진짜 오르비에토는 역 앞에서 '푸니콜라레(funicolare)'라고 하는 작은 케이블카 같은 것을 타고 산 위로 200미터 가까이 더 올라가야 합니다. 왠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천공의 성 라퓨타'가 떠오릅니다.

앙증맞은 빨간 푸니콜라레는 불과 몇 분 만에 나를 마을 입구 '카헨 광장'에 내려놓습니다. 그리고는 혹시나 시에스타 시간에 걸릴까봐(남부 유럽 여행에서는 시에스타 시간을 미리 확인하는 게 중요합니다. 잘못하면 몇 시간을 그냥 허비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두오모 광장까지는 셔틀 버스를 탑니다. 역시 불과 몇 분 만에 버스는 나를 두오모 광장에 내려놓았습니다.

지대가 높아서 그런지 바람이 제법 차갑게 불어옵니다. 하지만 나는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웅장한 오르비에토의 '두오모(Duomo, 원명은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당 Cattedrale di Santa Maria Assunta)'! 로마 외곽도시 중에서 유일하게 오르비에토를 선택한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크기로 따지자면 밀라노의 '두오모' 못지않다는 오르비에토의 '두오모'는 작은 마을에 어울리지 않게 화려하고 거대한 규모를 뽐내고 있습니다. 더구나 주변에 별다른 큰 건물이 없는 광장 한가운데, 혼자 우뚝 서 있는 '두오모'는 로마에서 봤던 건축물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의 웅장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르비에토의 '두오모(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당 Cattedrale di Santa Maria Assunta)'.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랫부분과 고딕양식의 윗부분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거대한 성당입니다.
▲ 두오모 오르비에토의 '두오모(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당 Cattedrale di Santa Maria Assunta)'.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랫부분과 고딕양식의 윗부분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거대한 성당입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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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0년부터 거의 300여년에 걸쳐 건립된 '두오모'는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선 정면에서 바라보면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치형 문과 크고 넓은 기둥이 눈에 들어옵니다. 비록 오랜 세월 탓에 여기저기 닳고 깨지긴 했지만, 4개의 기둥을 장식하고 있는, 성경의 내용을 형상화한 섬세한 부조들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그 위쪽, 하늘로 쭉쭉 뻗은 고딕 양식의 첨탑과 박공을 장식하고 있는 황금빛 모자이크는 화려함을 더해 줍니다.

오르비에토 두오모의 기둥 부조입니다. 구약성서의 내용들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입니다.
▲ 기둥 부조 오르비에토 두오모의 기둥 부조입니다. 구약성서의 내용들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입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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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중앙의 장미창은 예수와 성인들의 작고 세밀한 조각상에 기하학적 패턴과 무늬까지 배치하여 더할 나위 없이 섬세하고 아름답습니다. 누군가 말했던가요? 명품은 디테일에서 완성된다고. 이토록 거대한 '두오모'에 이토록 섬세한 장식이라니. 제대로 된 명품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서둘러 표를 끊고 '두오모' 안으로 들어갑니다. 성당 안도 기본적으로는 로마네스크 양식이라 단순했지만, 고딕 양식의 스테인드글라스가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을 발견한 순간 전율이...

오르비에토 두오모의 섬세하고 화려한 장미창입니다.
▲ 장미창 오르비에토 두오모의 섬세하고 화려한 장미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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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에서 또 오르비에토를 선택한 두 번째, 아니 가장 중요한 이유를 찾아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루카 시뇨렐리의 프레스코 연작, '최후의 심판'입니다. 그림을 발견한 순간 다시 어제의 전율이 느껴집니다. 아니 어쩌면 훨씬 더 강한 전율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싶어서 오긴 했지만 말하자면 어쨌거나 구멍 난 일정의 땜빵인 셈인데...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오르비에토에 오지 않았다면, 그리고 루카 시뇨렐리의 이 그림, '최후의 심판'을 보지 못했다면 나는 영영 후회할 뻔 했습니다.

루카 시뇨렐리 '최후의 심판' 프레스코 연작 중 '적 그리스도의 행적', '천국의 선택' 오르비에토 두오모의 산 브리치오 예배당
▲ 적 그리스도의 행적, 천국의 선택 루카 시뇨렐리 '최후의 심판' 프레스코 연작 중 '적 그리스도의 행적', '천국의 선택' 오르비에토 두오모의 산 브리치오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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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 중앙 제단의 오른쪽, '산 브리치오 예배당(Cappella di San Brizio)'의 네 벽을 빽빽하게 장식하고 있는 '최후의 심판'은 내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적 그리스도의 행적'부터 '육체의 부활', '천국의 선택', '저주받은 자들'까지 초기 르네상스의 다양한 실험들의 향연을 보는 것 같습니다.

특히 근육질의 나체 인물들과 악마들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는 '저주받은 자들'과 최후의 심판 후 죽은 자들의 부활을 묘사한 '육체의 부활'은 인체에 대한 해부학적 묘사에 관심이 많았던 루카 시뇨렐리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더구나 회반죽이 마르기 전 간단한 밑그림 상태로 빨리 완성해야 되는 프레스코화란 걸 생각하면, 이처럼 복잡하고 역동적인 화면을 구성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루카 시뇨렐리 '최후의 심판' 프레스코 연작 중 '저주받는 자들'. 오르비에토 두오모의 산 브리치오 예배당.
▲ 저주받는 자들 루카 시뇨렐리 '최후의 심판' 프레스코 연작 중 '저주받는 자들'. 오르비에토 두오모의 산 브리치오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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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들에게 고통 받고 있는 인간 군상의 생생한 표정들과 막 부활하여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 역시 감탄을 자아냅니다. 어떤 이들은 이 그림이 미켈란젤로의 저 위대한 '최후의 심판'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물론 당연한 평가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 같습니다.

만약, 미켈란젤로가 먼저 태어나 초기 르네상스를 이끌었고 루카 시뇨렐리가 뒤를 이었다면 그 평가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더구나 미켈란젤로 스스로도 루카 시뇨렐리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라파엘로도 오르비에토를 찾아와서 이 그림을 보고는 루카 시뇨렐리의 열렬한 숭배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루카 시뇨렐리 '최후의 심판' 프레스코 연작 중 '육체의 부활' 오르비에토 두오모의 산 브리치오 예배당
▲ 육체의 부활 루카 시뇨렐리 '최후의 심판' 프레스코 연작 중 '육체의 부활' 오르비에토 두오모의 산 브리치오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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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야 어찌됐든 루카 시뇨렐리의 '최후의 심판'은 아직 미켈란젤로를 보지 못한 내 상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습니다. 한 부분이라도 놓칠까봐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미친 듯이 셔터를 누르고 또 눌렀습니다. 그런데 셔터를 누르는 내내 이유를 알 수 없는 신음 소리와 한숨이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느낄 수 있겠습니까? 전율은 이렇게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나는 아주 오래 그 전율을 간직하며 루카 시뇨렐리의 또 다른 명작을 찾아 '오페라 델 두오모 박물관(Museo dell' Opera del Duomo)'으로 향했습니다. 유럽의 수많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늘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에 유명한 작품을 마음 놓고 감상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간혹 관람객의 흐름이 뚝 끊길 때가 있는데 그럴 땐 한 작품, 한 전시실을 자기 혼자 독차지하는 행운을 맛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혹자는 '황제 관람'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바로 그 '황제 관람'을 이번에 확실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두오모'의 부속 박물관인 '오페라 델 두오모 박물관'은 두오모 오른쪽 뒤편에 있습니다. 이곳에 바로 루카 시뇨렐리의 또 다른 걸작, 내가 오르비에토를 선택한 세 번째 이유, '성 마리아 막달레나(Santa Maria Magdalena)'가 있습니다. 그런데 박물관의 이상한 구조 탓인지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박물관의 딴 곳만 보고 나가버리는 것이 아닙니까?

나도 처음엔 박물관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이 작품을 찾지 못했죠. 그래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직원에게 물어봤습니다. "루카 시뇨렐리, 마리아 막달레나" 이렇게 또박또박 말하니 곱상하게 생긴 여직원은 뜻밖에도 박물관 바깥 계단을 가리킵니다. 그곳에 올라가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당신만 물어본다며 웃습니다.

나 홀로 맞이한 작품 '성 마리아 막달레나'

루카 시뇨렐리 '성 마리아 막달레나' 오르비에토, 오페라 델 두오모 박물관
▲ 성 마리아 막달레나 루카 시뇨렐리 '성 마리아 막달레나' 오르비에토, 오페라 델 두오모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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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 됩니까? 아무도 없는 박물관에 나 홀로 맞이한 작품 '성 마리아 막달레나!' 초기 르네상스 양식의 얼굴 묘사에(이 묘사는 피렌체에서 보티첼리의 그림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황금색과 붉은색의 화려한 옷차림, 신비한 눈빛과 황금빛 긴 머리카락, 그리고 손에는 향유병을 든 여인! 오직 나 혼자 그녀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물밀듯 밀려오는 감동이란 말은 이런 때 쓰는 것일 테지요. 나는 또 오래 오래 그녀, '성 마리아 막달레나' 앞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모두 목격한 유일한 사람입니다. 예수의 유일한 여제자로 평가받기도 하지요. 원래 거리의 여인이었던 그녀는 예수 앞에서 눈물로 회개했는데 그때 흘린 눈물이 예수의 발을 적시자 자신의 긴 머리카락으로 예수의 발을 닦고 향유를 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가 죽은 다음 날부터 예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 찾아갔다가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지요. 따라서 손에 든 향유병과 황금빛 긴 머리카락은 그녀를 상징하는 도상입니다.

이탈리아 미술사에서 루카 시뇨렐리는 르네상스 초기의 선구자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 '성 마리아 막달레나'도 딱 그 위치에 어울리는 그림입니다. 그래서 중세의 모자이크와 같이 여전히 부자연스러운 묘사도 언뜻 보입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들이 "수많은 미술가들에게 미술의 궁극적인 극치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화가이자 르네상스 미술사가인 조르조 바사리의 평가처럼, 다음 세대 르네상스의 천재들 즉,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두오모'와 '루카 시뇨렐리'를 만나고 나니 어느새 3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배가 너무 고파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오르비에토 여기저기를 천천히 걷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혹시 알고 있는지요? 이른바 '슬로 시티 운동'의 발상지 중 하나가 이곳 오르비에토란 사실 말입니다.

슬로 시티란 말도 이탈리아어 'Citta slow'의 영어식 표현입니다. 비록 내용은 다르지만 나도 슬로 시티, 오르비에토를 최대한 천천히 느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밤늦게까지 오르비에토 구석구석을 돌아보려고 로마로 되돌아가는 기차도 막차 바로 앞 차로 예매했습니다. 예쁜 카페가 있으면 오래 앉아 책도 읽고 글도 쓰려고 합니다.

오르비에토에는 아이들과 함께 온 어른들이 많습니다.
▲ 오르비에토 거리 오르비에토에는 아이들과 함께 온 어른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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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르비에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니 특이한 점이 눈에 띕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이었습니다. 이곳 오르비에토엔 유난히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여행객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로마에서의 이틀보다 훨씬 많은 아이들을 여기서 만난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오르비에토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예쁜 가게들이 너무 많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하여 온통 알록달록하게 치장한 오르비에토에선 귀여운 도자기 인형 가게와 나무 공예품 가게들, 장난감 가게들이 아이들을 유혹합니다. 더구나 오르비에토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그다지 높지 않은 예쁜 시계탑과 고대 에트루리아인들이 만들었다는 지하 도시도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르비에토에서 만난 아이들은 하나같이 천사 같습니다.

오르비에토의 중앙에 위치한 시계탑입니다.
▲ 시계탑 오르비에토의 중앙에 위치한 시계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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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같은 아이들. 세상 어느 곳 아이들이 천사 같지 않겠습니까마는 사실은 저 아이들이 정말 천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천사의 이미지는 유럽 화가들의 그림 속 천사들이고, 그 천사들의 모델은 당연히 저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참, 고정관념이란 게 이토록 공고합니다. 천사에 대한 관념마저도 이렇게 서구적일 수밖에 없다니 괜히 아이들에게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오르비에토를 돌아다니다가 다시 푸니콜레라를 타고 내려오니 묘한 기분이 듭니다. 작은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두오모. 그리고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기자기한 마을과 또 어울리지 않게 공포스러운 '최후의 심판'. 오르비에토는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말 그대로 '천공의 성' 같습니다.

시계탑에서 바라본 오르비에토 풍경.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가 떠오르는 풍경입니다.
▲ 오르비에토 시계탑에서 바라본 오르비에토 풍경.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가 떠오르는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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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덧붙임] 용어 해설
두오모 duomo : 영어의 돔(dome)과 같으며 라틴어의 도무스(domus)를 어원으로 합니다. 영어의 돔이 반구형의 둥근 지붕, 둥근 천장의 뜻으로 사용되는 데 대하여 이탈리아어의 두오모와 독일어의 돔은 대성당(cathédrale)을 말합니다.

로마네스크 Romanesque 양식 : 로마네스크 양식은 8세기 말 샤를마뉴(Charlemagne) 대제 시절부터 13세기 고딕 양식이 발생하기까지 서유럽 각지에서 발달한 건축양식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로마의 전통에 게르만족의 요소가 많이 반영된 양식으로 창문과 문, 아케이드(개방형 통로)에 반원형 아치를 많이 사용한 점, 건물 내부를 떠받치기 위하여 원통형 볼트(천장이나 지붕의 곡면 구조)와 교차 볼트를 쓴 점이 특징입니다.

오페라 opera : 이탈리아어 오페라는 흔히 알고 있는 음악 용어 '오페라(가극)'를 뜻하기도 하지만 '작품', '저작'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따라서 '오페라 델 두오모 박물관'은 '두오모에 있던 작품들을 모아놓은 박물관'이란 뜻입니다.


(4-1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오르비에토, #두오모, #루카시뇨렐리, #이탈리아, #미술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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