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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자살방조)로 1992년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강기훈 씨가 지난해 2월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 '유서대필' 강기훈 23만에 무죄 판결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자살방조)로 1992년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강기훈 씨가 지난해 2월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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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3일, '유서대필' 사건 재심 선고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강씨는 자신의 재판이 법원과 검찰에게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선고 직후 든 생각이) '재판부가 유감 표시를 안 하네?'였다. 이 재판은 제 재판이 아니다. 사법부가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이고 검찰은 자기 잘못을 반성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데에 더 의미가 있다. 판결 내용과 상관없이 말이다.

사법부의 권위는 저를 세워놓고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 이렇게 해서가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겸허하게 인정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때 세워진다. 또 "지금 현재 검사직에는 없지만, 사건에 관여한 검사들은 아마 제 사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어떤 형태로든지 유감의 표시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분들의 생각(반성)이 변해야 이 재판이 가치 있고 성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또 필적 감정으로 자신을 천국과 지옥으로 오가게 한 국과수를 향해 "자기가 하는 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지 않는 전문가는 또 하나의 악"이라고 지적했다. 사건 당시 받아쓰기에 급급했던 언론 역시 "별로 변한 게 없다"고 비판했다.

모두가 휩쓸려만 갔던 1991년

1991년 5월 27일 강기훈씨가 명동성당에서 필적실연을 해보이고 있다.
 1991년 5월 27일 강기훈씨가 명동성당에서 필적실연을 해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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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가 사법부와 검찰, 국과수, 언론을 두고 쓴 소리를 한 이유는 단순하다. 1991년 5월 8일 서강대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린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동료 김기설씨의 유서를 그가 대필했다는 혐의로 정국이 뒤흔들리던 그 시절, 모두들 휩쓸려만 갔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제동을 걸지 못했다. '유서대필'이라는 황당한 사건을, 검찰은 밀어붙였고 언론은 그대로 받아썼다. "(재판은) 정권의 부도덕과 불의를 심판하는 자리가 될 것"이란 본인의 기대와 달리 법원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검찰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모두들 한 목소리로 강기훈씨에게 손가락질했다. 동료의 생명까지 빼앗은 극악무도한 세력이라고.

시작은 언론보도였다. 1991년 5월 18일 <국민일보>는 검찰이 김기설씨의 유서와 자필 노트 등을 대조한 결과 '다른 필적'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누군가 대신 써줬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며 김씨의 동료 7명이 용의자 선상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이틀 뒤, 검찰은 강기훈씨가 유서를 대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강씨는 여러 자료를 근거로 반박했지만, 검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연구원) 필적 감정 결과를 내세우며 물러서지 않았다. 명동성당에 피해있던 강씨는 여론이 점점 나빠지자 그해 6월 24일 자진 출두한다. 그는 "모든 것은 법원에서 판명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1심부터 항소심을 거쳐 상고심에 이르기까지 법원은 한결같이 증인들의 진술과 국과수 감정 결과 등을 종합해 볼 때 강기훈씨가 유서를 대필, 김기설씨의 죽음을 방조했다고 했다. 1992년 7월 24일 대법원은 그의 상고를 기각,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아직 강씨에게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2007년 11월 13일, 첫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이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국과수와 7개 사설감정원에 유서 원본 감정을 받은 결과 모두 김기설씨의 필적으로 나왔다며 재심 등 상응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강씨는 2008년 새해가 밝자마자 재심을 청구한다.

서울고등법원 형사 10부는 1년 넘게 고민한 끝에 그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검찰은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에 불복하며 대법원에 항고했다. 사법부는 또 다시 더디게 움직였다. 대법원은 결국 3년이나 지난 뒤인 2012년 10월 19일 재심 개시를 결정한다.

24년만의 무죄... 사과는 없었다

'유서대필사건' 강기훈-김기설 필적 감정 결과
 '유서대필사건' 강기훈-김기설 필적 감정 결과

지난해 2월 13일, 마침내 법원은 그를 향해 "피고인은 무죄"라고 말했다. 1년 3개월 뒤인 2015년 5월 14일에는 강씨가 오랜 주홍글씨를 떨쳐낼 수 있는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나왔다. '유서대필' 사건이 만들어진 지 딱 24년만이었다.

그런데 강씨는 이날 대법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 기사 바로가기)에서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재판은 법적 절차에 불과하고 부질없다는 생각도 든다, 지난 세월이 뒤집히는 것도 아니고..."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제 사건이 우리 사회에 무슨 영향을 줬나요? 사건 조작에 가담해서 입신출세한 사람들이나 사법부의 생각이 바뀌었나요? 권력이 깨끗해졌나요? 그 이후 저 같은 피해자들이 안 나왔나요? 저는 아무 영향도 못 줬어요. 오히려 그들의 권력은 더 세졌고..."

그리고 이날까지 누구도 그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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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강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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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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