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대필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강기훈씨가, 14일 대법원의 재심 판결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친구를 죽음으로 내 몬 파렴치한 인간으로 낙인찍힌 지 24년 만이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 서울고등법원 무죄에 이어 드디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친구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분신을 지켜보았다니... 필적감정 결과를 조작하고, 억지로 죄를 뒤집어 씌웠던 이들은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 이들을 법정에 세워 처벌해야 그 죗값을 치를 수 있을 것이다.

상식 밖의 날조에 대해, 사법부는 어쩌면 다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것은 아닐까. 이들은 강기훈이라는 한 인간에게 어떻게 사죄를 할 것인가.

이 일은 단순히 강기훈 한 사람이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건이 아니다.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가 전투경찰의 폭력진압에 의해 희생됐다. 당시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힘으로 노태우 정권 퇴진과 민주주의 쟁취 투쟁이 가속화되던 시점이었다. 그러나 이 조작사건을 계기로, 투쟁의 열기는 오물을 뒤집어 쓴 채 사그라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역사를 거꾸로 돌려 버린 죄, 무엇으로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크다. 또, 역사와 민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김기설의 숭고한 뜻을 짓밟고 모욕한 잘못은 어떻게 갚을 것인가. 무슨 방법으로 그의 명예를 회복시킬 것인가.

강기훈씨의 어머니인, 고 권태평 어머니의 삶은 또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아들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나와 크나큰 상처를 심장에 새기고 살아가는 모습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며 민가협 어머니로 살았다. 그러다 재심 무죄도 보지 못하고 하늘로 먼저 가버리고 마셨다.

강기훈씨는 지금 투병 중이다. 출소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1991년을 살고 있었다. 대법원의 재심 무죄판결이 그를 다시 살게 하리라 믿는다. 툴툴 털고 일어나 국가권력의 폭력과 날조를 온몸으로 체험한 증인으로 살아주기를 바란다. 오래오래 살아 생생한 증언과 기록을 역사에 남겨주어야 한다. 제발 건강을 되찾아 주시라.

그래도 오늘 하루만큼은 강기훈씨와 동생 강은옥 변호사 그리고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 권태평 어머니께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싶다. 진실은 언젠가 반드시 드러나게 마련이다. 시간이 좀 덜 걸린다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