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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인기가수이자 고의적 병역기피로 13년째 입국이 불가능한 상태인 유승준(스티브유)의 인터넷 방송이 예고되자 전반적인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그 바탕에는 병역을 기피하는 과정이 매우 악질적이었다는 점이 자리한다. 당시 높은 인기를 누리던 연예인으로서 국가기관인 병무청이 제공했던 다양한 혜택을 뒤로 하고, 이른바 뒤통수를 치는 듯한 그의 돌발적인 미국 국적 취득은 대중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물론 나도 유승준의 당시 행위를 절대로 지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개인의 행위를 이러한 방식으로 제한하는 방식과 지금까지의 상황은 상식적이지 않다. 인터넷상에서 천박한 언어를 구사하면서광분하는 수준미 달의 댓글만 말하는 건 아니다. 13일 오후 방송된 모 방송국의 연예 프로그램을 통해 밝힌 병무청의 반응은 이해할 수 없다. 이는 병무청의 부대변인이 밝힌 답변으로 공식적인 대응으로 볼수 있는데, 그 중심내용은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국적을 버린 사람은 영원히 우리나라 사람이 될 수 없는 사람이며, 외국인이기 때문에 어떤 논평을 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병무청의 주장을 찬찬히 살펴보면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 13년 전 처음 입국불허 때부터 가졌던 생각이지만 금번 병무청의 입장을 접하니 한번쯤 견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유승준은 공익근무요원판정 받았고, 입대하면 퇴근 후 연예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혜택을 받았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병무청으로부터 입영 3개월 전에 해외 공연을 위한 출국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 길로 그는 귀국하지 않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이에 병무청은 출입국관리국에 입국규제조치를 요청했고 결국 출입국 관리법 11조에 의해 입국이 금지됐다. 그 내용은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는 사람에 대해 입국 금지조치를 내릴 수 있다"는 조항이다.

병무청의 조치를 보면 우선적으로 드는 의구심이 있다. 유승준에게만 그렇게 엄한 잣대를 대는 이유가 뭘까? 우리 주위를 둘러보라. 고의로 병역을 기피하는 사람은 매우 많다. 슬프게도 그게 현실이다. 굳이 자료를 대지 않더라도 국회의원 및 고위직, 이른바 사회 지도층의 본인과 아들의 군 면제율이 높다는 것은 이제 뉴스가 아니다. 심지어 서울 자치구 중 강남구의 군 면제율이 제일 높다는 자료도 있다. 모든면제자가 고의로 병역을 기피했다고 볼 수는 없으나 면제자가 많으면 고의 기피자도 많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통계적 추론 이전에, 고의 병역기피를 위해서는 많은 돈과 권력이 필요하다. 유승준처럼 해외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기회도 돈과 권력이 없으면 힘들다. 인사청문회 시즌이 되면 국민은 '가진 그들'의병역 의혹에 싸늘한 시선을 보내지만 그뿐이다. 그러한 병역기피를 막아야 하는 병무행정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사기꾼에겐 욕하고 사기를 당한 사람에게는 연민의 감정을 가지는 것인지는 모르나 이는 엄연히 업무과실이고 더 나아가 과실이 아닌 고의일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병무청은 유승준에게 엄격한 만큼, 또 다른 기피자들에게도 엄격해야 한다. 유승준이 외국인이라서 입국을 불허했으면 해외국적 취득의 방식으로 병역을 기피한 다른 '외국인'에게도 입국 허가를 해서는 안된다. '외국인'에게도 그렇게 하는데 외국인도 아니면서 한국사람이 고의로 병역기피를 했다면, 지금보다 더욱 더 노력하여 찾아내서 벌해야 한다. 13년 전에 병역을 기피했건 30년 전에 병역을 기피했건 말이다. 유승준에게 철저한 만큼, 의혹이 있는 모든 자들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그들이 연예인이건 고위 권력자건 관계가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유승준에게만 유독 엄격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실제로 다른 해외국적 취득자가 입국이 불허됐다는 소식을 듣기는 매우 힘들다. 그러니 유승준에게는 별도의 괘씸죄가 있는 건 아닐까? 혜택을 줬더니 그것을 이용해 병역을 기피했고,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내렸다기보다는, 우리의 선의를 악의로 갚았다는 노여움이 지배를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사실, 군대를 기피하는 행위는 무조건 '속이는' 행위를 수반한다.

고의 병역기피자가 천 명이면 병무청은 천 번 속은 것이다. 따라서 병무청과 유승준의 관계는 '사기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속아서 '노여웠다는' 점이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병무청이란 이름의 국가권력이 노여워서 한 개인의 자유권을 제한하는 것이 반복되고 확장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르네상스 이후 정립되어 온 전통적 자유권(소극적 자유)은 국가 권력이 마음대로 제한하지 못하는 시민권(적극적 자유)으로 발전한다.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행동은 소극적 자유권에 속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돌이켜 보면 권력이 '노여워서' 개인의 소극적 자유마저도 제한했던 수많은 경험이 우리에겐 있다. 그 기억은 물론 좋은 기억이 아니었으며, 국가 권력은 따라서 치우침이 없고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국가의 입장에서 괘씸하니까 벌을 준다는 의미라면 그런 벌을 주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는가 생각해 봐야 한다. 괘씸죄와 같은 방식은 합리적 생각을 막는 파쇼적인 여론몰이의 한 행태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군대를 회피하기 위해 그냥속 인 것이 아니라, '대놓고' 속였기 때문에 너무 화가 나서 입국을 불허하는 것이 아니라면, 왜 입국을 불허하는가? 병무청은 공식적으로 출입국관리법 11조를 근거로 제시한다. 하지만 유승준이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는 사람인가? 혹시 병역을 고의로 기피한 연예인이 한국 청소년의 우상으로 군림하는 것이 건전한 국가관 혹은 사회적 가치를 훼손하고 공공의 안전을 뒤흔들 위험이 있기 때문에 미리 조치한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이건 대표적인 내러티브 오류다. 실제로 인과관계가 구성되지는 않으나 몇 가지 특징적인 사실을 엮으면 정합성을 가진것으로 여겨지게 되고 그럴듯한 스토리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설마 병무청이 내러티브 오류에 빠져서 그를 사회적 위험인물로 규정한 것이었을까? 하지만 유승준이 국가와 공공의 이익,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사실상 법적으로 외국인이 된 그를 병역법으로 어찌할 수 없었기에 내린 조치였던 것은 아닐까? 군 관련 홍보대사까지 했던 그를 국적이 바뀌자마자 사회적 위험인물로 규정하고 입국을 불허하는 현상만 본다면 코미디에 가깝다.

어차피 외국인이니 입국금지가 큰 문제 아니라는 주장은 정말 동의하기 어렵다. 굳이 법적으로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부대변인의 발언 내용을 들어보면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기존의 조치를 설명하는 것은 속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한 언어 선택이 아닐까 하는 느낌까지 든다. 사실 병무청뿐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이중성이 존재한다. 유리하면 동포, 별 관심 없으면 교포, 무시하면 조선족으로 지칭하는 방식 말이다. 유승준에게는 '외국인'이라는 명칭을 부여하며 일거에 모든 논란을 정리하려는 시도로 여겨지는 것은 나만 그럴까? 문자 그대로 정말 외국인이라서 못 들어오게 하는 건가? 논리적으로 말이 잘 맞지 않는다. 모든 외국인 입국을 못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를 화나게 한 사람이 외국인이 되었고 그에게 화풀이를 할 방법이 바로 그 방법밖에 없어서 그런 건 아니었는지.

결론적으로 유승준은 적법한 절차로 입국해서 외국인으로서의 법적 테두리 내에서 자신의 행위를 하면 된다. 그 행위에 경제적 가치를 안겨줄 것인가, 냉담하게 바라볼 것인가는 철저히 대중이 선택할 문제다. 국가기관이 나서서 먼저 개인의 자유를 제어해서는 안될 일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병무청은 좀 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여 고의적 병역기피 시도가 불가능하도록 힘을 다했으면 좋겠다. 다시는 연예인, 혹은 운동선수들에게 속지 않도록, 그보다 권력층의 병역의혹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들어 주면 좋겠다. 그리고 유승준보다 더 사회적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고 실제로 악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고의 병역기피자들에게 지금이라도 적용 가능한 조치가 없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 에서는 국적 변경으로 병역을 건너뛴 연예인 이름이 검색되고 병역의혹이 있는 사람이 여전히 사회지도층으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 비해 유승준만 차별받고 있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19일 밤에 유승준이 하는 말은 들어볼 필요가 있다. 범죄자마저도 진술기회는 있으니까 말이다.


태그:#유승준, #병무청 , #입국불허 , #스티브 유, #심경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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