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래쉬 메인 포스트

영화 트래쉬 메인 포스트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 이 기사에는 영화의 결말 등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을 알린 영화 <빌리 엘리어트>(2000)에는 이런 장면(Scene)이 나온다. 탄광 노동조합과 대처 정부가 대립하는 장면과 발레를 연습하는 빌리의 장면이 교차되는 장면. 이런 편집을 통해 영화는 관객에게 '혼탁한 세상 속에서도 꿈을 추구하는 빌리의 순수함'을 전달한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신작 <트래쉬>(5월 14일 개봉)는 <빌리 엘리어트>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다. 빌리가 규정된 남성성에 저항하면서 자신의 꿈을 이루고 가족의 인식을 변화시켰다면, 영화 <트래쉬>에 등장하는 세 명의 소년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부패한 브라질 사회를 바꾸는 '연대의 도화선'이 된다.

그들은 달린다. 마치 꿈을 좇아 달리는 '빌리'처럼. 하지만 이번엔 좀 더 숨이 가쁘다. 아이들은 작은 리버풀 마을을 넘어 브라질 리우 전역을, 사회적 인식을 뛰어넘어 부패한 사회를 가로지른다. 그리고 이들의 뜀박질을 통해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묻는다. 이들은 뛰게 만드는 것은 누구인가? 우리 사회의 진짜 '쓰레기(Trash)'는 무엇인가?

말하는 아이들

 좌 들쥐(가브리엘 와인스타인), 우 감독 스티븐 달그리

좌 들쥐(가브리엘 와인스타인), 우 감독 스티븐 달그리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브라질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듯 영화의 호흡은 가쁘다. 빠른 편집과 경쾌한 음악, 심지어 네 가지의 시·공간이 함께 공존하는 장면(Scene)이 존재할 정도로 영화는 박진감 넘친다. 이에 더해 '쓰레기 촌'에서 일하는 세 명의 소년들이라는 영화 소재는 속된 말로 이미 '먹고 들어간다'.

영화의 첫 장면은 이러한 기대치를 고스란히 증명한다. 긴장감 넘치는 음악 위로 14살 주인공 하파엘의 손에는 총이 쥐어져 있다. 벌벌 떨며 방아쇠를 당기려는 하파엘. 옆에서는 "어서 죽여"라는 친구 가르도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화면이 갑자기 정지된다. 그리고 빠르게 전환되는 하파엘의 독백 장면. '당신들이 이 비디오를 보고 있을 때 난 이미 죽어있을 지도 모른다.'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한 구성이다.

하지만 독백 장면은 흥미만을 위한 게 아니다. 여기에는 이 영화만의 독특한 점이 존재한다. 소년들의 독백 장면은 영화 중간중간 계속해 삽입되는데, 이는 미국 드라마 <모던 패밀리>의 속마음 인터뷰 장면과 유사하다. 이야기를 주인공이 직접 전달하는 효과를 준다. 이전의 스티븐 달드리가 이런 적극적 연출을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변화된 감독의 입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관객은 영화 관람객이 아니다. 인터넷에 유포된 아이들의 인터뷰 동영상(극 후반부에 이 독백 장면이 아이들의 사정을 알리기 위해 인터넷에 유포된 동영상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을 클릭한 영화 속 사회의 누리꾼이자,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사회의 일부 구성원이다.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개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행동하는 아이들

 좌 하파엘(릭슨 테베즈), 우 경찰

좌 하파엘(릭슨 테베즈), 우 경찰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변화하는 건 말하는 태도뿐만이 아니다. 스티븐 달그리 감독의 전작들과는 다르게 영화가 건드리고 있는 주제 의식과 주인공들의 운신 폭 역시 보다 적극적으로 변했다. 우선 영화는 공권력과 정면으로 대치한다. 쓰레기장에서 일하는 주인공 소년들은 정치인의 비리가 숨겨진 지갑을 줍게 되면서 부패한 정치인과 공권력을 상대하게 된다.

어린 아이들이 경찰에게 소리소문 없이 납치돼 고문을 당하기도 하며, 또한 공권력에 의해서 마을이 통째로 불타기까지 한다. 영화 속에서 부패한 정치인의 모습이 많이 드러나지 않지만, 이 사회 속 약자들의 모습들을 통해 감독은 사회의 추악한 이면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뿐만이 아니다. 영화는 또한 부패와 상대하는 아이들의 행동을 통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또 다른 가치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처음에 냉소적으로 아이들을 대했던 주변인들이 서서히 아이들을 도와주기 시작하는 변화를 통해 영화는 '함께 행동하는 것'의 중요성을 전한다.

세 명의 소년들이 위험해 처했을 때 그들을 구하는 것은 다름 아닌 마을의 신부님, 마을 주민들 그리고 길거리에서 처음 본 브라질 시민들이었다.

공권력이 고압적인 태도로 변할수록 모래알처럼 흩어진 개인들은 단단한 모래성이 된다. 불안정했던 1980년대 영국의 보수적인 사회 인식 속에서 개인의 꿈을 좇던 빌리가 이제 혼탁한 사회에 맞서 행동하고 사람들을 응집시키는 더 용감한 브라질 소년들로 진화한 것이다.

기억하는 아이들

 좌 하파엘(릭슨 테베즈), 우 들쥐(가브리엘 와인스타인)

좌 하파엘(릭슨 테베즈), 우 들쥐(가브리엘 와인스타인)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스티븐 ​달그리 영화에서 어른들의 사회와 아이들은 대척한다. 아이들이 순수성을 상징한다면 어른들의 사회는 혼탁하다. 달그리는 이를 상징화하기 위해 교차 편집을 적극 활용한다. 시위를 진압하려는 장면과 발레를 연습하는 빌리의 장면을 교차 편집했던 <빌리 엘리어트>에서도, 끊임없이 도망가는 소년들과 추격하는 부패한 경찰들을 교차 편집하는 <트래쉬>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트래쉬>는 단순히 부패한 사회와 순수한 아이들을 대조하기 위해서만 교차 편집을 사용하지 않는다. 감독은 지갑에 비밀을 숨겨두고 극 초반에 죽었던 또 다른 주인공 '안젤로'의 이미지를 아이들에게 투사하는 데에도 역시 교차 편집을 활용한다.

극이 진행될수록 아이들은 지갑 속의 비밀들을 하나하나 풀어가게 된다. 그럴수록 아이들은 그 비밀을 만든 과거의 안젤로와 동선이 겹치게 된다. 시점만 다를 뿐 안젤로와 아이들이 같은 장소에 있게 된다.

비로 이 지점에서 감독은 '비슷한 앵글'과 '이둘의 행동을 교차 편집'하면서 마치 같은 사람의 모습처럼 과거의 안젤로와 현재의 아이들의 행동을 오버랩시킨다. 특히 아이들이 과거의 안젤로의 행동을 쫓는다는 점에서 마치 아이들의 안젤로의 의도를 기억해 내는 인상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기억하는 아이들'은 감옥에 투옥된 변호사에게 안젤로의 편지를 전달하는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안젤로가 쓴 편지내용을 아이들은 머릿속으로 기억해 암기해내고, 다시 아이들의 보이스는 안젤로의 보이스로 오버랩되는 장면에서 두 존재는 하나가 된다.

안젤로가 쓰고 아이들이 읽었던 편지 내용 '우리 세대의 정신이 다음 세대에 넘어갔다'라는 글귀가 영화에서 직접 재현된 것이다. 주인공 하파엘은 말한다. 안젤로가 시작한 일을 내가 끝내겠다고.

무엇이 진짜 '쓰레기'인가

 좌 하파엘(릭슨 테베즈), 우 가르도(에드아르도 루이스)

좌 하파엘(릭슨 테베즈), 우 가르도(에드아르도 루이스)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결국 세상은 바뀐다. 아이들은 지갑 속의 비밀을 풀어냈고 시장이 되려 했던 부패한 정치인 산토스는 감옥에 가게 된다. 그가 지키려고 했던 부패한 돈 역시 쓰레기장에 뿌려지게 된다.

또한 아이들은 떠난다. 극 중간 꿈꿨던 아름답고 공평한 해변으로 말이다. 항상 사회가 만들어 놓은 빈민이라는 '창살' 속에서 숨어 살아야 했던 아이들이 이제 해변에서 자신들이 꿈꾸었던 그물망 속에서 고기를 잡으며 뛰어논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로얄 발레학교에 면접을 보러 간 빌리에게 면접관이 묻는다. 왜 춤을 추냐고. 이에 빌리는 한참 뜸을 들이다 말한다.

"몰라요... 그냥... 기분이 좋아요."

<트래쉬>에서도 아이들을 도와줬던 선교사가 아이들에게 묻는다. 왜 이런 모험을 감행하냐고? 이에 아이들은 답한다.

"그냥 이것이 옳으니까요(Because its right)."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즈음 감독은 우리에게 묻는다. 진짜 '쓰레기'가 무엇이냐고. 쓰레기장에서 쓰​레기를 줍고 살아갔던 그 아이들이? 아니면 부패를 통해 권력을 착복했던 정치가과 공권력이? 결국 쓰레기장으로 흩뿌려졌던 그 지폐들이? 그것도 아니라면 당연한 것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기억하지도 않으려고 했던 우리들이?

영화 <트래쉬>는 아이들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말한다. 더 좋은 사회를 위해 당연한 사실들을 말하고, 행동하고, 기억해내라고.

○ 편집ㅣ김지현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재홍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ddpddpzzz1.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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