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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전 예비군 사격훈련중 총기 사망사고가 발생한 예비군 훈련장 인근에서 예비군들이 훈련하고 있다.
▲ '지금은 예비군 훈련 중' 지난 13일 오전 예비군 사격훈련중 총기 사망사고가 발생한 예비군 훈련장 인근에서 예비군들이 훈련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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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받았던 예비군 훈련이 불현듯 떠오른다. 사격장 내의 각 사로마다 M16 소총이 한 자루씩 놓여있었다. 명색이 실탄 사격이었지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사로에 배치된 담당 조교와 수다를 떠는 예비군도 있었고, 장전 직전까지도 가만히 있다가 황급히 옆 조교가 도와 준비를 마치는 예비군도 있었다. 안전을 위해 설치된 철골의 사각 소총걸이와 소총을 잇는 안전 고리는 낡고 해진 채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고리를 풀고 총구를 돌릴 수 있을 만했다.

이러한 모습을 신경 쓰는 통제관이나 간부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앞 표적이든, 옆 사로 표적이든 얼른 쏘고 내려오라'는 분위기였다. 어차피 사로마다 주어진 소총마저도, '원래 주인'의 눈에 맞게 영점이 잡혀 있었다. 때문에 표적지를 정확히 맞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 진지하게 사격에 임할 만한 환경 자체가 조성되지 않았던 셈이다.

몇몇 예비군은 소총 문제인지, 아니면 일부러 설정을 바꾸었는지 한 발씩 나가야 할 실탄이 '드르륵'하고 쏟아져 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실탄 사격 훈련은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진행됐다.

기본 안 지킨 국방부,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었다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52사단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난사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훈련소에 근무하는 군인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 예비군 훈련장 총기 사고, 분주히 움직이는 군인들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52사단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난사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훈련소에 근무하는 군인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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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각지의 예비군 훈련장에서 빚어지는 모습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훈련장 환경은 전부 제각각이다. 사격장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정해진 소총이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있고, 훈련장에 입소한 순간부터 지급된 소총을 가지고 실 사격까지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또 소총걸이와 안전 고리의 유무 역시 훈련장마다 모두 다르며, 몇 발의 실탄을 어떤 방식으로 지급하는지조차도 공통으로 규정된 것이 없다. 심지어는 동일한 사격장에서조차 달마다 혹은 해마다 환경과 조건이 달라지거나, 각 사로별로 차이가 나는 경우까지 있다.

사로마다 배치되어 있는 담당 조교들의 움직임도 전부 각양각색이다. 내 경험에 따르면, 훈련장마다 취급하는 총기의 종류마저도 다르다. 이쯤 되면 예비군 훈련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점은 단 한 가지뿐이다. 인명 살상의 위험이 있는 실탄 사격에서조차 간부들은, 더 나아가 그들을 관리해야 하는 국방부는 훈련의 관리 및 통제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내려놓았다는' 점이다.

현역도 아닌 예비군이 동료 예비군에게 소총을 난사해 상해를 입히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이번 사건은 결코 우발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언제 일어났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일이다. 육군 관계자는 "가해자 최씨는 영점사격이 진행되는 도중 갑자기 뒤로 돌아서더니 총을 난사했다"고 전했다. 그가 소총을 들고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릴 만큼 아무런 통제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는 예비군 사격 훈련에 대한 국방부 측의 인식이 얼마나 해이한지를 그대로 증명한다.

지난 3월, 국방부가 발표한 '2015 확! 달라지는 예비군 훈련'의 내용에 따르면, 모든 훈련과정은 '적이 침투한 상황을 고려하여 예비군 스스로 판단하고 조치하는 자발적 훈련 시스템'으로 변경됐다. 기존의 수동형 훈련에서 벗어나, 예비군이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훈련이 진행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아무런 통제도 없이, 마음대로 실탄을 주변에 난사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럴싸한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지만, 국방부는 정작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 전국 예비군 훈련장에서 소총걸이와 소총의 낡은 안전 고리만이라도 보수했다면 어땠을까. 사격 시 이를 단단히 고정하도록 공통으로 규정했다면, 이번 사건과 같은 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몇몇 언론은 가해자 최씨가 현역 시절 'B급 관심병사'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문제를 떠나, 현역과 예비군의 구분도 떠나, 실탄으로 훈련을 진행하는 사격장이었다면 반드시 취했어야 하는 안전 조치가 제대로 이행됐는지 봐야 한다. 현행 예비군의 사격 훈련에서는 미연의 사태를 방지할 '최소한의 군기'조차도 찾아볼 수 없다.

예비군 실탄 사격, 언제든 다른 훈련으로 대체 가능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52사단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난사 사고가 발생했다.
▲ 서울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 총기 사고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52사단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난사 사고가 발생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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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사격 직전에야 남의 소총을 대뜸 쥐어준 채 아무렇게나 '갈겨대도록' 두면 안 된다. 안전 관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이번과 같은 참사까지 빚어낼 것이라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 '유사시 효과적인 방위 작전 수행 능력 향상'이라는 예비군 훈련의 취지에도 부합하지 못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미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사회인이 된 예비군들을 다시 '확실하게' 사전 관리하고 통제해 사격에 임하도록 할 자신이 없다면, 실탄 사격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과 같은 일은 언제든 다시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일부 예비군 훈련장에서 최근 도입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나 스크린 사격으로 실탄 사격을 전면 대체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페인트 총을 가지고 공격과 수비 조로 나뉘어 서로 겨루는 방식이다. 비록 실탄은 아니지만 우수한 조에 대해 '조기퇴소' 혜택이 걸려 있고, 승리를 위해서는 조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짜야 해 오히려 훈련의 취지에 더욱 적합할 수도 있다. 또 스크린 사격은 격발 시 반동을 비롯한 실제 사격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안전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어느 것을 택하더라도, 부실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현행 예비군 훈련의 실탄 사격보다는 훨씬 나아 보인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만약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 도입할 예산이 부족하다고 한다면, 이는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4년 전 1만 원에 살 수 있는 USB 메모리를 95만 원이나 주고 납품받았던 곳이 바로 국방부였으며, 최근만 해도 30년 전에 개발되어 품질 개선도 되지 않은 군용 침낭을 개당 17만5000원에 납품받은 곳이 바로 국방부였다. 이외에도 무기를 비롯한 각종 군납 비리는 전 국민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겼다.

2년 동안 다치지 않고 몸 성히 전역했다며 한 시름 덜었을 청년들을, 다른 곳도 아닌 예비군 훈련장에서 아프게 하는 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정작 최소한의 안전 보장과 관리를 비롯한 예비군 훈련의 환경에는 무심한 채, 제 잇속만 챙기기 바빴던 국방부의 무책임과 안일함이 없었다면 말이다.

난 군 시절, 육군 어느 사단의 신병교육대에서 조교로 복무했다. 각 기수별로 8주간의 훈련을 진행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환경에 적응한 훈련병들이 동기 및 일부 병사와 친해진다. 그러나 조교는 군 기강을 다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관리자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예비군도 마찬가지다. 2년간의 의무 복무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간 예비군에게 '군기 바짝 든' 모습이 부족하다고 해서, 훈련을 통솔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국방부마저 '군기가 빠져서는' 안 될 일이다. 대상이 현역 아닌 예비군이라고 해서, 그에 대한 책임이 더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예비군, #총기사고,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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