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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남아인 두 여인이 소곤거렸다
  고향 가는 열차에서
  나는 말소리에 귀 기울였다
  각각 무릎에 앉아 잠든 아기 둘은
  두 여인 닮았다
  맞은편에 앉은 나는
  짐짓 차창 밖 보는 척하며
  한마디쯤 알아들어 보려고 했다
  휙 지나가는 먼 산굽이
  나무 우거진 비탈에
  산그늘 깊었다
  두 여인이 잠잠하기에
  내가 슬쩍 곁눈질하니
  머리 기대고 졸다가 언뜻 잠꼬대하는데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말이었다
  두 여인이 동남아 어느 시골에서
  우리나라 시골로 시집왔든 간에
  내가 왜 공연히 호기심 가지는가
  한잠 자고 난 아기 둘이 칭얼거리자
  두 여인이 깨어나 등 토닥거리며 달래었다
  한국말로,
  울지 말거레이
  집에 다 와 간데이
  -하종오 '원어(原語)'

화자는 고향 가는 기차 안에서 결혼 이주 여성으로 보이는 동남아인을 만나게 된다. '차창 밖 보는 척하며', '곁눈질하'는 자신을 두고 타인에 대해 '공연히 호기심을 가지는' 존재라 자성하기도 하지만 그 무례를 감수한 결과 두 여인이 이중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서로 소곤거릴 때는 동남아어를 사용하고 칭얼거리는 아기를 달랠 때는 한국어, 그것도 시골마을의 방언을 쓰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작가가 화자에게 이러한 발견을 가능하게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동남아 여성이 본국의 언어와 이국의 언어를 두루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가치일 뿐이다. '두 여인이 동남아 어느 시골에서 우리나라 시골로 시집왔든 간에', '각각 무릎에 앉아 잠든 아기 둘은 두 여인 닮았다'라는 단서를 통해 그들이 다문화 가정의 결혼 이주 여성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이면의 해석과 통찰을 위해 사고의 스펙트럼을 넓게 가져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시어에서 나타난 것처럼 결혼 이주 여성의 '울지 말거레이'가 과연 고유의 억양이나 발음에 부합했겠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그들이 겪고 있는 언어의 장벽이나 문화적 혼란, 정체성의 상실 등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혼 이주민 수는 2015년 2월 현재 15만여 명인데 이 중 여성이 84.8%로 13만 명 가까이 된다. 강원도여성가족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 이주 여성들은 한국 생활 중 힘든 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언어 문제 49.5%, 외로움 32.9%, 경제 문제 31.9%, 문화 차이 26.3%, 자녀 양육 24.3% 순으로 답변했다. 언어적 한계는 그 자체가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제도나 문화의 이질성에 대한 간극을 줄일 수 있는 기회가 상실된다는 점에서 더 큰 폐단이 되기도 한다. 또한 언어적 한계에 기인한 소통의 부재는 사고방식의 차이를 더욱 심화시킬 수도 있고 남편이나 남편의 나라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는 데 어려운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결혼 이주 여성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와 그들이 육아에 있어 큰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시기가 겹치는 경우가 많아 자녀의 성장 과정에 필요한 정보를 놓치게 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결혼 이주 여성 본인이 한국어에 대한 제 이해가 되어 있지 않으니 자식 또한 언어적 영역에 있어 발달 과업을 제대로 성취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 또한 상식적으로 추론 가능한 부분이다.

각 시민단체나 대학, 지방자치단체에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근간의 모습은 고무적이다. 교육부에서도 '2015년 다문화 학생 교육지원 계획 발표'를 통해 다문화 학생을 위한 맞춤형 교육을 강화하고 교원의 다문화 이해교육을 강화하려 앞장서고 있으며 서울, 경기, 충남, 전남, 경남 다섯 개 지역 30곳을 중심으로 다문화 유치원을 시범적으로 운영하려는 틀을 짰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정책이 지나치게 다문화 가정의 자녀 쪽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과 아직까지도 그들을 '돌봐주어야' 한다는 사고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혼 이주 여성이 언어적 한계를 극복해야 그들의 자식들이 온전하게 한국어를 구사하고 사회성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 수혜 대상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무조건적으로 그들을 동정해서도 안 되고 일방적으로 한국사회에 동화시키려 해도 안 된다. 우리 안의 타자와 공존하려는 자세를 지켜야 할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 소통이 전제로 깔려야 하고, 전 단계에서 다문화 가정 한국어 교육 정책을 조금 더 세련되게 다듬어야 할 것이다.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다문화 가정 186명을 대상으로 학교생활 차별 실태 조사를 했다. 이 중 '발음이 이상하다고 놀림 당한 적이 있다'라는 항목에 41.9%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중도입국청소년이 답한 수가 많았으리라 예상할 수 있지만 발음의 논리에서 벗어나 우리말에 대한 이해도로 범위를 확장할 경우, 결혼 이주 여성이 우리나라에서 낳은 자녀라도 맥락적 인지 능력이 취약한 경우가 많아 놀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결국 결혼 이주 여성을 위해 양질의 한국어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그들의 자녀가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고 저출산 고령화를 잠재우기 위한 수단'의 맥락에서 다문화 가정을 이해하는 편협한 시선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또 시혜적 접근 방식도 떨쳐야 하며 공존을 위해 그들의 가치관과 그들의 문화를 적극 수용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언어를 배울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들에게 최소한의 정책 과제로 한국어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부분은 공감할 것이다.

결혼 이주 여성들이 우리 사회의 모든 것들과 진심을 나눌 수 있도록, 그들이 자녀에 대한 교육을 올바르게 할 수 있도록 제노포비아(xenophobia)와 작별하고 '울지 말거레이 집에 다 와 간데이'를 제대로 가르쳐주자.


태그:#하종오, #다문화, #결혼 이주 여성, #제노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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