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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5일, 강진에 있는 어느 음식점 앞에서 찍은 아내와 아이들 사진.
▲ 아내와 아이들 한 컷 2015년 5월5일, 강진에 있는 어느 음식점 앞에서 찍은 아내와 아이들 사진.
ⓒ 권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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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집에서 보던 텔레비전을 아예 없앴다. 세 아이들 초점이 모두 두 방향으로 옮겨간다. 한쪽은 책으로, 다른 한쪽은 바깥 나들이로. 책은 주일 오후 삼학초등학교 부근의 '작은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는다. 한 번 빌려오면 아홉 권은 족히 된다. 나들이는 쉬는 날 틈을 내 함께 떠난다.

지난 5일 어린이날에도 짬을 내 바깥 마실을 먼 곳으로 떠났다. 목포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다산초당'이 바로 그곳. 식구끼리 마음껏 먹고, 쉼도 얻고, 생각할 거리도 찾고, 앞날도 내다보고자 함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나들이라 점심 만큼은 푸짐한 식당에 들러 마음껏 먹고 떠났다.

다산 초당으로 가는 길

그런데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서 뜻밖의 횡재를 했다. 내가 좋아하던 시인이자 화가이자 방랑자 임의진 목사가 목회를 한 남녘교회를 지나가게 된 것이다. 무심코 이정표를 따라 가는데 아내가 "여보, 저기"하는 바람에 눈을 돌렸더니, 바로 그곳에 그 교회가 서 있었던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교회 앞 마당에 차를 세우고 예배당 안팎을 둘러봤다.

예배당 안은 아늑하고 따사로웠다. <참꽃 피는 마을>과 <종소리> 속에 담긴 정겨움 그대로였다. 털이 덥수룩한 임의진 목사가 이곳에서 목회할 때 동네 사람이 "어이 임씨"하며 같이 지냈다고 하지 않던가.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와 함께 웃는, 살가운 목회를 10년 동안 펼쳐왔던 것이다. 그 아름다운 '마중물' 시도 그 무렵에 길어 올렸던 것이다.

아내와 함께. 마중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 남녘교회 앞에서 아내와 함께. 마중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 권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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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릴 적 펌프질로 물 길어 먹을 때
'마중물'이라고 있었다
한 바가지 먼저 윗구멍에 붓고
부지런히 뿜어 대면 그 물이
땅 속 깊이 마중 나가 큰 물을 데불고 왔다
마중물을 넣고 얼마간 뿜다 보면
낭창하게 손에 느껴지는 물의 무게가 오졌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마중물이 되어준 사랑이
우리들 곁에 있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무저갱으로 제 몸을 던져
모두를 구원한 사람이 있다
그가 먼저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기에
그가 먼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꿋꿋이
견뎠기에 

-임의진 <마중물> 中

아담하고 아늑하고 정겨운 예배당 안쪽의 모습. 놋으로 된 십자가와 놋으로 된 징이 인상적이다. 창립자 임남규 목사(1955-1995), 1대 임의진 목사(1995-2004), 2대 김민해 목사(2005-2006), 3대 안상순 목사(2007.4.-2009.3), 지금은 4대 전진택 목사가 섬기고 있다.
▲ 남녘교회 예배당 안쪽 모습 아담하고 아늑하고 정겨운 예배당 안쪽의 모습. 놋으로 된 십자가와 놋으로 된 징이 인상적이다. 창립자 임남규 목사(1955-1995), 1대 임의진 목사(1995-2004), 2대 김민해 목사(2005-2006), 3대 안상순 목사(2007.4.-2009.3), 지금은 4대 전진택 목사가 섬기고 있다.
ⓒ 권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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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하고 정겨운 뜰이 있는 남녘교회를 뒤로 하고, 우리는 곧바로 다산초당으로 자동차 머리를 돌렸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저 멀리 바닷가와 갯벌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도 시원하고 확 트인 풍경이었다. 금방이라도 차를 세워두고 바닷가에 뛰어 들어가고 싶었지만, 다산을 만난다는 마음에 그 모든 것을 눌러 앉힐 수 있었다.

마을 입구에서 다산 초당까지는 걸어서 5분 정도 걸렸다. 길가 옆에는 오래된 소나무와 대나무들이 쭉쭉 뻗어 있었다.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길바닥은 오래된 나무 뿌리들이 자연스런 계단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정호승 시인도 그래서 이 길을 밟고 지나가면서 <뿌리의 길>을 읊조렸던 걸까?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산길
지상에 드러낸 소나무의 뿌리를
무심코 힘껏 밟고 가다가 알았다
지하에 있는 뿌리가
더러는 슬픔 가운데 눈물을 달고
지상으로 힘껏 뿌리를 뻗는다는 것을
지상의 바람과 햇볕이 간혹
어머니처럼 다정하게 치맛자락을 거머쥐고
뿌리의 눈물을 훔쳐준다는 것을
나뭇잎이 떨어져 뿌리로 가서
다시 잎으로 되돌아오는 동안
다산이 초당에 홀로 앉아
모든 길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어린 아들과 다산초당으로 가는 산길을 오르며
나도 눈물을 달고
지상의 뿌리가 되어 눕는다
산을 움켜쥐고
지상의 뿌리가 가야 할
길이 되어 눕는다.
-정호승 <뿌리의 길> 中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길목의 나무뿌리로 된 자연 계단이다. 다산도 이 계단을 오르내렸을 것이고, 정호승 시인도 이 계단을 오르내린 뒤에 '뿌리의 길'을 썼을 것이다.
▲ 다산초당 가는 길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길목의 나무뿌리로 된 자연 계단이다. 다산도 이 계단을 오르내렸을 것이고, 정호승 시인도 이 계단을 오르내린 뒤에 '뿌리의 길'을 썼을 것이다.
ⓒ 권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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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초당은 말 그대로 조촐한 초가삼간이었다. 그곳에서 10년 동안 전남문화관광해설사로 섬기고 있는 66세의 강두재 어르신의 말에 따르면 세월이 흘러 폐가가 된 것을 1958년 해남 윤씨들로 구성된 다산유적보존회의 도움으로 기와집으로 중건했는데, 다산이 생활한 동암(東庵)과 제자들이 유숙한 서암(西庵)을 복원했다고 한다. '초당'은 오늘날 초등학교와 같은 뜻이라고 한다.

강두재 어르신은 다산4경만큼은 기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직전 다산이 직접 새겼다는 '정석'(丁石), 그가 직접 샘물을 파서 차끓이는 물로 썼다던 '약천'(藥泉), 초당 앞마당의 큼직한 돌을 부뚜막 삼아 불을 지펴 차를 끓여 마셨다던 '다조', 초당 오른쪽에 연못을 파서 잉어를 키웠다던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이 그것이다.

"천하엔 두 개의 큰 기준이 있으니, 하나는 옭고 그름(是非)의 기준이고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利害)의 기준이다. 이 두 가지 기준에서 네 단계의 큰 등급이 나온다. 옳은 것을 지키면서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등급이고, 그 다음은 옳은 것을 지키면서 해를 입는 등급이고, 그 다음은 옳지 않은 것을 추종하여 이익을 얻는 경우이고, 가장 낮은 등급은 옳지 않은 것을 추종하여 해를 입는 경우다."

어린이날 맞이 '다산 여행'

지난 10년간 전남문화관광해설사로 섬기고 있는 강두재 어르신께 다산과 관련된 일화를 비롯해 다산4경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어요. 온 열정을 다해 성심성의껏 설명해 주신 강두재 어르신,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 다산초당 마루에 앉아 지난 10년간 전남문화관광해설사로 섬기고 있는 강두재 어르신께 다산과 관련된 일화를 비롯해 다산4경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어요. 온 열정을 다해 성심성의껏 설명해 주신 강두재 어르신,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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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 나오는 내용이다. 다산의 아들 학연이 강준흠과 이기경에게 다산이 꼬리를 쳐서라도 그 올무에서 빠져나오도록 청할 때, 그것은 세 번째 등급을 택하는 길이자 필경 네 번째 등급으로 떨어질 것이라며, 그런 영달을 목표로 삼기보다 이곳에 보낸 천주(天主)의 뜻을 받들어 천명을 다하고자 다짐한 다산이다. 바로 그로부터 탄생한 것이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여 권에 달한 책들이었다.

2015년 5월 5일, 어린이 날을 맞이한 우리집 다섯 식구는 이렇게 첫 번째 '전라도 여행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아이들과 아내는 흡족한 눈치였다. 모처럼 멀리 강진까지 콧바람을 쐰 까닭이다. 나도 참 좋았다. 다만 내가 목사라서 그러는지, 이번 여행길에서 깨우친 생각들도 목회라는 틀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다산초당에 가는 길목에서 우연히 들여다 본 남녘교회도 그렇다. 그 교회는 예전의 김교신 선생이나 함석헌 선생이 강조했던 '조선산 기독교'의 뿌리를 지켜나가는 교단이다. 성공 지상주의나 물신(物神)을 숭배하지 않는 민중 기독교의 근간을 이루고자는 교회 말이다. 그 명맥을 잇고자 임의진 목사가 지난 10년간 그 교회를 지켰던 것이고, 이에 훌륭한 '마중물'과 같은 시를 퍼올 릴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것은 다산 정약용도 다르지 않다. 그의 탄생 250주년이던 2012년에 유네스코는 정약용을 헤르만 헤세나 드뷔시와 더불어 세계기념인물로 선정했다. 정약용이 세계의 기념비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초당의 오지 숲 속에서 10년 동안 묻혀 지내며 천주의 명을 받든 데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온 백성을 올바르게 살릴 수 있는 그 지침서를 퍼 올린 그 천명 말이다. 그러니 다산은 그 시대의 '마중물 같은 성자'였음이 분명하다.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서 있는 표지판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 컷 했어요. 다산초당 너머에는 민중불교의 발상지인 백련사도 서 있다고 하네요. 이곳에서부터 다산초당까지 올라가는 길목의 계단은 나무 뿌리로 된 자연계단입니다.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서 있는 표지판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 컷 했어요. 다산초당 너머에는 민중불교의 발상지인 백련사도 서 있다고 하네요. 이곳에서부터 다산초당까지 올라가는 길목의 계단은 나무 뿌리로 된 자연계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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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임의진, #정약용, #목민심서, #마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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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기억력보다 흐릿한 잉크가 오래 남는 법이죠. 일상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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