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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좋았다. 쉬는 날이 좋았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고, 교사로 있는 이들도 그랬다. 그것이 일반적인 학교 다니는 학생, 직장을 다니는 교사의 심정이 아닐까 한다. 업무로서의 교사의 일, 진학을 위한 통과의례로서의 학교. 한국사회에서 일반화된 이런 흐름은 '공교육은 죽었다'는 단정까지 나아가고 있다.

이런 흐름에 반기를 드는 움직임이 있다. 절망적인 공교육 현장의 한가운데서 그리고 변두리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것이 '대안'이라는 이름이다. 이 때문에 공교육은 더욱 곤란해졌다.

몇십 년 전 과거처럼 학교에 다니고 싶어도 다니지 못한 가정형편의 아이들은 거의 없어졌다. 대신 지나친 경쟁과 공감 부족, 왕따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학교를 떠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체육을 없애고 끊임없는 암기와 문제풀이로 일관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오죽하면 교육감들이 모여 '애들은 놀아야 한다'고 외쳤겠는가.

오늘 특기적성 시간은 정말 짜증나고 졸리고 지루했다. 하기는 싫은데 안 하면 혼난다. 학교는 정말 탈옥도 못하는 감옥이다. 학교에 스트레스 해소실이라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짜증나고 화가 나면 그곳으로 가면 되니까. 특기적성 하기 전에 체육을 해서 힘들고 지쳐서 더 그런 것 같다. 이럴 때는 진짜 이런 생각을 한다. 학교는 감옥, 선생님은 경찰.
지루한 특기적성/ 박승현_송풍초 6학년

소개할 책 속의 학교(장승초)는 좀 다르다. 학교가 좋고, 학교에 가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있고, 학생들과 친구처럼 지내면서 놀이와 노동에 대한 가치를 즐기는 현장이다. 진보교육감 체제 아래 혁신학교로 지정받아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곳 중 하나다. 아주 작은 산골의 더 작은 학교였다(지금은 지역내에서 세 번째로 큰 학교가 되었다).

학교가 돌아옸다
 학교가 돌아옸다
ⓒ 내일을여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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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초는 5년 전만 해도 3학급 13명으로 폐교 위기에 있던 곳이었다.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마을주민이 힘을 모아 학교를 살리기로 마음먹고 행한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지금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선진사례'가 된 것이다.

그 가운데에 이 책의 저자, 교사 윤일호가 있었다. 2010년을 전후로 몇 년간의 땀과 노력이 학교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책은 교사로서 '운동가'가 이를 정리한 작업이다. 작은 학교의 교사와 이웃 동네로 귀촌한 1인출판사의 대표가 뜻을 모았다.

학교가 돌아왔다. 옛날의 명성을, 아니 그보다 더 높아진 이름과 학생, 학부모로 모인 학교. 학생 수는 10배 가까이 늘었고 지역의 주민은 늘었고 주변의 땅값도 올랐다.(물론 늘어나고 높아지는 것이 다 좋은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좋아진 것은 학교의 아이들이었다. 학교에 가고 싶고 전학 온 학생도 금방 '우리학교가 최고다'라는 이야기를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우리 학교는
학생 수가 적어도 행복하다.
쉬는 시간 30분
할 수 있는 것은
다 할 수 있다.
산과 나무가 많은 학교
나와 친구들이 나무를 잡고
사이좋게 산을 오른다.
너무나 우리 학교가 좋다
오지훈_장승초 6학년

어제 분명 일찍 자고
꽤 늦게 일어났는데
눈 감고 일분 후에 일어난 것 같다.
요즘은 추워서
더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고
더 일어나기 싫은 것 같다.
그래도 학교 갈 생각만 하면
빨리 나가고 싶다.
잠/ 강예림_장승초 6학년

얼마 전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어린이 헌장이 다시 발표됐다. 전국 17개 교육감이 뜻을 모아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는 주장을 외쳤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멍들고 있다. 지나치게 높은 학구열과 경쟁이 아이들로부터 놀이를 빼앗고 있는 현실을 우려한 것이다.

최근 이와 반대로 행하고 효과를 보고 있는 학교들이 늘어나고 있다. 혁신학교라는 이름이 그것이다. 교과를 수행하되 교사의 자율권을 높이고 '묶음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30분이라는 쉬는 시간을 주고 있는 것이 작은 '그림'이다. 내용도 더 들여다 보아야 하겠지만 직접 만나본 구성원의 만족도가 꽤 높은 것이 사실이다.

비단 그 만족감은 아이들만의 것은 아니다. 일은 많고 익숙하지 않음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사도 뿌듯한 곳이 이 '돌아온 학교'다.

마치 운명처럼 장승초에 온 것 같아요. 막상 와보니 그동안 익숙했던 환경과 많이 달라 좀 낯설기는 했어요. 육체적으로 힘들 것은 각오하고 왔기 때문에 몸이 힘들어서 후회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장승초 아이들은 모두 사연을 가진 채 이곳에 모여 있다.'는 사실을 제가 너 무 늦게 깨달은 탓에, 제가 그동안 교사로서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감에서 오는 스트레스 뭐 그런 거는 있었어요.
장승초 교사_이선희

아이들을 깊이 살피는 일이 교사의 본분임을 자각하는 내용이다. 승진을 위한 점수를 얻기 위해 농촌의 초등학교에 지원하는 일은 이 지역의 교사들이라면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수업을 재미있고 알차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장승초등학교는 교사와 학부모가 합심하여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학교를 고민했고 이를 주변에 알려 폐교를 막은 경우다. 여럿이 모여 한 뜻을 내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갈등과 시행착오가 없을리 만무하다.

지역언론의 눈도 곱지 않았다. 처음에는 특혜니 선거에 대한 보은이니 하고 위장전입은 불법이라는 지적의 기사로 난도질하던 언론이 불과 일 년여 만에 '대표적인 농촌 명문학교로 자리 잡은 진안 장승초'라고 표현하는 것도 웃지 못할 일이었다.

저자는 학교가 아직도 과정에 있음을 강조했다. 그간에 이루어온 일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그 중심에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한 학교. 이를 위해 교사와 손잡은 학부모가 일정정도의 중심은 잡아주어야 한다는 점도 알린다.

장승초등학교는 '스스로 서다와 서로를 살리다'를 철학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아이들은 벼를 심고 피를 뽑는 농사체험을 매년 함께 한다. 그리고 일 년에 두 번 마을을 잇는 지역의 길을 십여 킬로미터씩 걷는다. 그것이 도시의 놀이공원에 가서 놀이기구를 타는 것보다 훨씬 의미있는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일년에 한 번씩 지리산을 걷는 것도 아이들의 잊지 못할 추억이다. 타 학교에서는 엄두도 내기 힘든 일이다. 당장 안전문제가 걸린다. 하지만 이는 교사들에게 권한을 주고 학부모와 소통을 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 장승초의 사례가 보여준다. 덕택에 아이들은 '함께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배우며 자란다.

학교가 자라면서 마을이 함께 자라는 이야기도 있다. 수많은 학부모들이 점점 줄어드는 마을로 들어와 집을 짓고 산골에서의 삶을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새집이 생기고 아이들이 함께하는 젊은 마을이 되어간다는 것이 장승초등학교를 중심에 둔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의 요즈음 풍경이다. 여름이면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나와 개천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인근 산에 올라가 자유로운 '창작놀이'를 하는 학교. 학생 수가 줄어들어 고민이 깊은 농촌의 작은학교에게는 큰 교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공교육의 현실은 치열한 경쟁교육이고 보니 이런 현실을 벗어나 협력적 나눔이나 배움, 상행의 공동체 생활 속에서 키우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큰 것이다. 공교육에 근무하는 교사가 자식을 대안학교에 보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공교육이 잘못되어 있다면, 공교육 교사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스스로 공교육 교사임을 포기하거나, 잘못된 학교 현장을 바꾸기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하는 것이다.
본문 중

그의 다짐 같은 주장은 교사로만 향하지 않는 것 같다. 아이 셋을 둔 학부모인 내 가슴이 크게 울리는 것을 보면.

덧붙이는 글 | 킹콩샘과 아이들의 작은학교 이야기 학교가 돌아왔다/윤일호 지음/ 내일을여는책/12,000원



학교가 돌아왔다 - 킹콩샘과 아이들이 엮어가는 작은학교 이야기

윤일호 지음, 내일을여는책(2015)


태그:#혁신학교이야기, #윤일호, #진안장승초등학교, #작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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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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