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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군대 갈 텐데, 공부든 뭐든 해봐야 무슨 소용이냐'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그 말을 깨부수고 싶었지만 입대를 30일 남겨두니 무기력해지고 말았네요.

입대는 남자에게 있어서 피하기 어려운 숙명이자 무거운 짐이다. 2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세상과의 단절을 견뎌야만 한다. 그러니 입대를 앞두고 무기력의 늪에 빠져버리는 건 예사다.

서준영(23, 국민대)씨는 지난 4월 17일 가진 인터뷰에서 저 말을 남기고 같은 달 20일 공군에 입대했다. 1학년을 마치고 군에 갈까 고민했다는 서 씨는 학교 동아리연합회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입대를 1년 이상 늦췄다. 어찌 보면 '늦깎이 입대자'가 된 것이다. 1학년에 입대한 친구들은 막 제대를 시작했다. 이제 막 입대를 앞둔 사람과 제대를 한 사람 사이의 간극이 생길 터.

친구들이 제대하더니 "왜 아직 군에 가지 않았느냐"고 말하더군요.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살짝 서글펐어요. 이제 군에 가야 하는데 괜스레 남들보다 너무 늦게 군에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아웃사이더가 된 느낌을 받았거든요.

입대를 앞둔 23살 대학생들 얘기를 들어봤다. 인턴기자를 마치고 다시 시민기자로 복귀해 기사를 쓴 기자도 23살에 곧 군에 입대한다. 재수를 했다면 제대한 뒤 3학년이 되거나 그게 아니면 4학년일 확률이 높은 나이다. 보통 1학년에 군에 가 대학 3년을 남겨두고 제대해서 한결 여유로운 대학생과는 달리, 제대하면 취업 걱정을 바로 안 할 수 없는 나이, 서 씨처럼 1학년 때 군으로 갔던 친구들이 속속 복귀하는 모습을 보며 여러 감정이 교차했을 나이이다. 남보다 군에 조금은 늦게 가는 만큼, 남모를 이야기도 있지는 않을까.

"넌 미필이니까 여자친구 만들지 마"

2학년 2학기를 마치고 군에 가는 서준영씨는 '어차피 군에 갈 텐데'라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대학 신입생 때부터 연애 감정을 억누르고 말았다.

소개팅을 받을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고백을 해볼까 생각을 해봤어요. 그런데 1학년 때는 '내년엔 군대 가겠지', 2학년이 되자 "머지않아 군에 갈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죠. 연애를 포기했어요. 넌 미필이니까 여자친구를 만들지 마라'는 말도 주변에서 듣기도 했고요.

서 씨는 마음에 둔 사람들을 그저 간직하는 데에 머물러야만 했다. 서 씨는 "군에 좀 늦게 갈 줄 알았다면 연애 감정을 꽁꽁 싸매지 않고 드러내지 않았을까"라면서 후회하는 기색을 보였다.

연애를 한들 입대가 결정된 뒤 여자친구와 연인 관계를 지속하기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의무경찰로 8월 입대하는 김진석(23, 고려대)씨는 입대 날짜가 결정되자 여자친구를 홀로 내버려두는 게 자책감이 들어 이별을 결심했다. 김씨는 "여자친구가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할 텐데 거기에 부응하지 못해 미안해질 것"이라면서 "여자친구와 입대 뒤 헤어질지를 두고 매번 싸운다"고 말했다. 김씨는 임기가 4학기인 교내 방송사를 하면서 입대를 늦춰왔다.

"따돌림 봤을 때 방관할까봐 두려워"... 인기 없는 '육군'

군에 입대하면 연애를 비롯해 사회에서 누리던 자유가 크게 억압된다. 그간 살아온 방식이 제한을 받는 상황에 금세 적응하기란 어렵기 마련. 평소 리버럴한 성향이 있다는 서씨는 "군대가 내 성향을 억누를까 봐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억압이 두려운 데는 폭력이나 따돌림 등 부조리를 보고도 침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걱정도 한몫했다. 의무소방원으로 7월 입대를 앞두고있는 조희준(23, 성균관대)씨는 "부대원들 중 누군가 따돌림을 받는 걸 보고 방관할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을 최대한 피해 보려 부조리가 비교적 부각된 육군을 가지 않으려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서씨는 "군 폭력 사건을 접하면서 육군보다는 일과 후 독립된 시간이 보장된 공군을 택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씨도 "의경이 사회와 단절돼 있지 않고, 부조리가 덜 노출돼 있다고 들었다"면서 의경을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서씨와 김씨는 입대 대상으로 카투사를 1순위, 의경을 2순위, 그다음을 공군으로 고려 순위를 매겼다. 카투사를 빼면 육군은 후순위로 밀리고 만 것이다. 김씨는 카투사로 입대하려고 했으나 영어 성적이 되지 않아 지원하지 않았고, 의경에 세 번 지원한 끝에 합격했다. 서씨도 카투사와 의경 준비를 하다가 실패하자 공군에 입대하기로 마음을 먹은 케이스다.

이들이 군에 바라는 건 한목소리였다. 전쟁을 대비해야 하는 군 특성상 위계질서가 중요하다는 건 십분 인정하지만, 불합리한 부조리는 제발 사라졌으면 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비합리적인 명령이나 괴롭힘으로 인해 무고한 희생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조씨도 "군에 다녀온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부조리를 줄이는 방법으로) 괴롭힘을 일삼는 상관을 전출하거나 매일 일기 비스무리한 걸 쓰게 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주입하는 정도라고 들었다"면서 "군 문화를 바꾸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꼬집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인터뷰에 응한 세 대학생들은 제대를 마치고 복학하면 3학년이다. 예나 지금이나 가중되고 있는 취업난을 두고 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제대하고 나면 '어떻게 살지' 커다란 고민거리로 다가온다. 하고 싶은 걸 하려고 해도 주변에 시큰둥한 반응에 발목이 잡힌다. 불확실한 미래를 돌파해나갈 묘안은 없는 게 현실이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서씨는 국사학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차츰 전공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지고 말았다. 주변과 언론에서 취업률을 잣대로 사학 전공을 비판하는 모습을 자주 봐왔기 때문이다. 서씨는 "삶을 앞으로 어떻게 그려나갈지 계속 고민할 것"이라면서 "복학하면 3학년이라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 텐데, 앞날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방송 제작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힌 김 씨도 제대 이후만 생각하면 걱정이 태산이다.

제대하면 취업을 준비할 텐데 학점도, 영어성적도 좋은 편이 아니에요. 내가 하려는 일이 다들 어렵고 경쟁률이 세다고 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지, 또 그 일과 관련된 직장을 얻을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생각만 하면 걱정이에요.

한편, 끝으로 현행 복무 기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육군은 2003년 24개월에서 2012년 21개월로 줄었다. 공군과 의경을 비롯한 다른 병역 복무 기간도 덩달아 줄었다. 이를 두고 공통으로 나온 반응은 '길다'였다.

김씨는 "길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라면서 "그만한 시간을 희생한 것 치곤 보상이 미미한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의경은 복무 기간이 육군과 같다. 서씨는 "시간이 너무 길게 다가온다"면서 "(군에서) 그 시간들을 의미 있게 보내려고 노력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서씨가 입대한 공군은 복무 기간이 육군과 의경보다 3개월 긴 24개월이다.


태그:#군대, #육군, #의경, #제대, #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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