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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전남대 부근 영화관에서 '장수상회'를 보았다. 관객들이 꽤 많았다. 치매 걸린 노인의 러브스토리, 그를 극진히 돌보는 동네주민들…. 코믹 터치로 가볍게 그렸는데도 가슴 뭉클한 장면이 많았다. 몇 차례 눈물이 솟아 옆 사람 모르게 훔치느라 고생(?)했다.

끝나고 여운이 남은 채 일어서는데 뒷사람 말이 들린다. "잠이 와서 혼났네!" 놀랐다. 그렇게 느끼는 사람도 있구나! 같이 온 사람에게 던진 말이었겠지만, 난 눈물이 났는데 그 사람은 잠이 왔단다. 그 사람은 무얼 기대하고 이 영화를 보러 온 것일까? 구식 케케묵은 영화제목만 보더라도 스펙터클 대작이나 코미디극은 아닐 줄 알았을 터인데….

어떤 사람일까? 궁금증이 생겼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얼굴을 본다 해도 기껏 나이 정도나 알 수 있지,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내 생각만 있는 게 아니다. 알량한 내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집 앞 이발소의 이발사는 올해 우리 나이로 73세이다. 언제나 웃는 얼굴이다. 근심 걱정이라곤 없는 분 같다. 이발하면서 옛 얘기를 곧잘 늘어놓는다. 손님들도 다 나이 드신 분들뿐이라 맞장구가 맞는다. 오늘은 보릿고개 때 꽁보리밥도 없어 배곯던 이야기이다. 얘기 끝 부분은 언제나 뻔하다. "젊은이들은 잘 모르지요. 먹고사는 데 불편이 없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지..." 나의 맞장구도 항시 비슷하다. "고기에 쌀밥 먹으면서 자란 아이들이 어찌 꽁보리밥을 알겠어요? 상상도 못 하겠지요~."

답은 그리했지만 70세 넘은 노익장 이발사가 아직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30세 넘은 젊은이들의 '불행'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같은 영화인데 한 사람은 감동해 눈물을 쏟는다. 다른 사람은 지루해 잠이 쏟아진다. 남의 입장에 서보지 않고 남을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경험이 다른 경우는 더욱 그렇다.

5월이 왔다. 5월은 진달래, 철쭉이 만발하고 모든 산이 연두색으로 물드는 봄의 절정이다. 그러나 '광주의 오월'은 '봄의 절정'만은 아니다.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그때의 오월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광주의 오월은 무엇일까?

지난해 5월 제주 올레길을 걸으면서 만난 부산사람의 얘기가 생각난다. '광주에서 왔다'는 나의 말에 그는 '한 번도 광주 가본 적이 없다'면서 '갈 기회가 되면 도청 앞 분수대를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왜 '분수대'일까? 묻지는 못하고 짐작만 했다. 그가 50대 중반이었으니 아마 35년 전 광주 민주항쟁 때의 영상을 기억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기대하는 것은 로마가 자랑하는 트레비분수 같은 화려함은 아닐 것이다. 35년 전 분수대는 민주시민들의 발언대이자 민주화 열기를 뿜어내던 '분화구'였다. 분수대를 뒤덮었던 대형 태극기, 분수대를 중심으로 광장을 꽉 채웠던 시위 군중들...

그의 얘기를 들은 후부터 금남로 1가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일부러 분수대를 둘러본다. 금남로의 시작점, 옛 전남도청 본관과 민주의 종각, 상무관이 좌우에 있고 시원스럽게 잘 닦아놓은 아시아문화전당 앞 광장 한가운데 구심점이다. 기가 막히게 좋은 명당자리이다. 과연 '민주화 성지, 광주'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앉을 만한 자리이다. 그러나 가서 볼 때마다 불만스럽다. 모습이 초라해서일까. 높지 않은 2단 콘크리트 동심원, 물도 없다. 물 뿜는 모습을 보려면 한여름까지 몇 달 기다려야 한다.

또 하나 불만은 '왜 이름이 없느냐?'이다. '도청앞 분수대'는 이름이 아니다. 3년 전 당시 서울대 교수이던 안철수씨는 전남대 초청강연에서 "광주는 한국의 닫힌 사회를 열린 사회로 만든 민주화의 성지"라고 말했다. '분수대'는 닫힌 사회에 구멍을 뚫은 창끝이었다. 민주화 성지를 만든 선구자였다. 그러한 명성에 걸맞은 분수대 이름이 필요하다.

내 생각대로 분수대 이름을 지어보았다. '무등 분수대'. 지금 우리 사회는 심각한 청년취업난, 극심한 빈익빈 부익부에 고통받고 있다. 이를 깨뜨리고 치유할 평등사상, '무등'이란 이름이 어떨까. 분수대 앞에 서서 무등산을 바라본다. 기원을 담아 이름을 불러본다. "무등 분수대!"


태그:#분수대, #광주, #청년취업난, #닫힌사회, #열린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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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글로 쓰면 길이 보인다'는 가치를 후학들에게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다. 인재육성아카데미에서 '글쓰기특강'과 맨토링을 하면서 칼럼집 <글이 길인가>를 발간했습니다. 기자생활 30년(광주일보편집국장역임), 광주비엔날레사무총장4년, 광주대학교 겸임교수 16년을 지내고 서당에 다니며 고문진보, 사서삼경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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