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최고의 축구스타 이동국(전북)의 야구 중계 관련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동국은 최근 자신의 SNS에 어린이날이었던 지난 5일 여러 방송사(케이블 등 포함)가 프로야구 경기를 중복중계한 것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이동국은 "어린이날 축구 보고 싶은 어린이들은 어떡하라고"라는 글과 함께 여러 장의 방송 중계 사진을 게재했다. 특정팀간 야구 경기를 여러 개의 방송사에서 중복 중계한 것을 캡처한 것이다.

이동국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스포츠 팬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축구팬들 사이에선 당연히 이동국의 발언을 지지하는 반응이 대다수다. 그동안 협회나 연맹 등에서도 차마 대놓고 꺼내지 못했던 말을, 이동국이 앞장서서 "축구팬들의 민심을 대변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야구팬들은 이동국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이동국이 SNS에서 야구 중복 중계를 비판하면서 '전파낭비'라는 표현을 쓴 것을 두고 "야구를 비하한 것 아니냐"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또 "방송사는 인기있는 콘텐츠를 선택하기 마련"이라며 "K리그가 야구만큼 인기가 없어서 시청률이 안 나오니까 방송사가 중계편성을 안 하는 거지, 그게 야구탓인가?"라며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있다.

방송사들의 지나친 야구사랑, 스포츠 팬들은 불만

이런 현상은 국내 스포츠 방송계의 공공연한 '야구 편중'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거리이기도 하다. 방송사들의 지나친 야구사랑에 대한 불만은 축구팬들 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팬들 사이에서도 오래됐다. 야구팬 vs. 비야구팬들의 구도 가운데서도 시즌이 직접적으로 겹치고 국내에서 최고 인기스포츠 자리를 놓고 다퉈온 경쟁종목인 축구팬들의 반감이 더 깊은게 사실이다.

축구팬들은 매일 4~5개 채널에 걸쳐 전 경기를 생중계해주는 야구에 비하여 K리그 경기는 주 1~2회임에도 방송사로부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매우 강하다. 온-오프라인에서 야구팬들은 축구를 '개축', 축구팬들은 야구를 '빠따'로 지칭하는 등, 끊임없이 서로를 비하하거나 공공연하게 유치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동국의 야구 발언에서 생각해야할 핵심은 야구 vs. 축구의 우열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이 아니라, 결국 '다양성'의 보장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이동국의 발언에 동의하고 안 하고는 개개인의 자유다. 이동국의 말이 축구인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해도, 이동국 역시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소신을 드러낼 자유가 있다.

이동국의 발언이 주는 뉘앙스가 야구팬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을 수는 있지만, 그 정도 표현을 두고 야구를 비하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다. 이동국의 말처럼 그 시간에 축구를 보고싶어 하는 팬들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또 다른 스포츠 종목이나 혹은 드라마, 예능, 영화를 보고싶어 하는 팬들도 있을 수 있다.

단지 인기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여러 채널에서 특정한 종목이나 팀만의 경기를 똑같이 중계한다면 그것은 시청자의 채널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전파낭비라는 표현이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이것은 월드컵 때마다 모든 채널에서 똑같은 한국대표팀 경기만 중계하는 축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결국 이동국의 발언은 특정 종목보다는 결국 방송사의 지나친 상업주의와 기회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스포츠인들의 현안 비판, 존중돼야 한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은 운동선수의 사회적 발언이 가지는 영향력과 책임감이다. 예전보다는 사회가 많이 개방되기는 했지만, 스포츠인들 사이에선 여전히 다른 직종의 유명인들에 비하여 민감한 주제나 사회적 현안에 대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과감하게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심지어 팬들조차도 유명 스타가 실수를 하거나, 논쟁적 발언을 하면 지나치게 과민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스포츠인들도 사회 현안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사회의 이런 경직된 분위기는 여론과의 소통을 어렵게 만들고 집단 내부의 폐쇄성만 더 견고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을 뿐이다. 분위기가 이러니, 국내 스포츠스타들은 결국 판에 박힌 말만 하고 겉보기에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는데만 급급할 수밖에 없다.

이동국 사례처럼 이제는 국내 스포츠인들도 중요한 사회적 화두에 대하여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야 하고, 또 그것이 존중되어야한다. 방송사의 야구 편중에 대한 부작용은 그간 팬들 사이에서는 자주 논쟁의 대상이 되었지만, 정작 스포츠인들 사이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는 찾기 힘들었다. 물론 이러한 목소리가 단순히 잘 나가는 이웃에 대한 질투나 불평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타종목 혹은 방송사처럼 상대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넘어서, 필요하다면 내부에 대한 통렬한 비판도 가능해야한다. 그래야 진정성이 있다.

사실 이번 발언을 이동국이 아닌 다른 평범한 축구선수가 했다면, 정도까지 큰 이슈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게 스타라는, 유명인의 한 마디가 가질 수 있는 사회적 파급력이다. 당장 큰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한다고 해도 이러한 계기를 바탕으로 차츰 합리적 문제제기가 모여서 여론을 형성하게 되고, 느리지만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도 있다. 적어도 유명인의 발언을 두고 방송사의 역할이나 스포츠의 위상에 대하여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많은 이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동국의 발언은 가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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