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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방은 전문 만화방을 찾기가 쉽지 않다. 대신 다른 업종에서 대본소 등지에서 가져온 만화 등을 활용하는 경우가 왕왕있다. 지방의 한 미용실 한쪽 벽면이 대본소용만화책으로 꽉 차있다.
 최근 지방은 전문 만화방을 찾기가 쉽지 않다. 대신 다른 업종에서 대본소 등지에서 가져온 만화 등을 활용하는 경우가 왕왕있다. 지방의 한 미용실 한쪽 벽면이 대본소용만화책으로 꽉 차있다.
ⓒ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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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소 무협만화를 기억하고있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나의 기준에서 노총각이다. 대본소 무협만화를 읽어봤다면 넓은 범위 안에서 30살은 충분히 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고로 노총각일 수 밖에 없다. 저번 '사이다' 팟캐스트75회에서도 밝혔듯이 난 30살이 넘으면 노총각이라고 본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50살을 넘어도 자신을 노총각이라 생각하지 않는 분도 있을 터이니 철저한 개인의 독단적 생각임을 거듭 밝힌다.

대본소 무협만화를 읽을 수 있었던 이른바 만화방은 우리세대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전자오락실과 더불어 동전 몇 개로 오랜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저비용 고효율(?)의 놀이공간이자 학생들의 탈선장소로 오해 아닌 오해를 받기도 했던 곳이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도 이해를 못하겠다. 부모님들 자신도 김산호의 '라이파이'나 김용환의 '코주부 삼국지' 신동우의 '빵점이' 김경언의 '칠성이 유격대' 등에 열광했으면서 자녀에게는 만화책을 보지 말라고 했을까? 무슨 도둑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안에서 싸움질이나 술 담배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극히 일부분 그런 케이스는 있었겠지만 난 거의 그런 광경을 보지 못했다. 책을 읽는 것도 습관이라고 외려 수많은 만화책을 읽으며 책을 읽는 버릇과 상상력만 키웠다.

어쨌거나 PC방 문화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전까지는 만화대본소는 전자오락실과 함께 학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놀이공간 중 하나였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서점용만화가 본격적으로 판매되고 일본만화가 정판, 해적판을 가리지 않고 밀고 들어오면서부터 대본소 업계는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어려워진 만화환경은 형편없는 저질만화 등을 양산하게 되어 그나마 있던 독자들 마저 하나둘 떨어져나가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했고 지금은 만화 대본소를 찾기가 힘들게 됐다. 도시권은 카페나 기타 다른 형식을 퓨전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지만 지방 쪽은 완전히 전멸하다시피 했다.

물론 이른바 웹툰의 등장으로 인해 만화를 보고 싶은 욕구를 다른 쪽에서 충당하기는 하지만 종이책의 향수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쨌거나 만화대본소에서 보던 수많은 무협만화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엉뚱한 나의 상상력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과거를 회상하며 노총각이 어린 시절 좋아했던 대본소 무협만화가들을 떠올려보았다.

당시의 영향때문인지 난 지금도 무협적인 분위기를 좋아한다.
 당시의 영향때문인지 난 지금도 무협적인 분위기를 좋아한다.
ⓒ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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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풍 선 굵은 그림체의 장태산 화백

정확히 말하면 이분은 전문 무협 만화가는 아니다. 수채화풍 선굵은 그림체가 인상적이었던 장태산 화백은 '야수라 불리는 사나이', '나간다 용호취', '거지왕 김춘삼', '스카이 레슬러', '터치다운'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던 액션만화가셨다. 대본소 뿐 아니라 만화잡지에서도 명성을 날리셨다.

하지만 나에게 장태산 화백은 무협만화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 최초의 분이셨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이었을까? 이발소에 머리를 깎으러갔다가 보물섬이라는 만화잡지에서 장화백이 그린 '소림사의 회오리바람'이라는 작품이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었다.

수나라 말기, 이세민 장군(이후 당태종)이 정부와 맞서 싸우는 격동기를 배경으로 침묵하던 소림사와 무림의 무사들이 정의를 수호한다는 내용이 전반적인 스토리라인이었는데 이른바 '장풍(掌風)'이라는 초식을 여기에서 처음으로 봤다.

이 작품 이후 무협이라는 장르에 급속도로 빠지기 시작했고 그 추억이 너무 강했던지라 후에 대본소에 작품 전편이 나왔을 때 주인아저씨께 사정사정해서 책을 중고 값에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돌려봐서 낡아빠졌었지만 나에게는 참 귀하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권법 48기'시리즈의 장윤식 화백

대본소 무협만화를 즐기셨던 독자라면 '권법 48기' 시리즈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시리즈물로 계속 나왔던 작품인데 어디까지 이어졌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내가 본 것만 해도 40번째에 육박했으니 최소 50번째 시리즈 이상은 가지 않았을까 예상된다.

천하제일의 권법을 자랑하는 48수의 사마귀(곤충이름이 아니라 주인공 이름이다)가 여러 가지 사건에 휘말리면서 각종 흥미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데, 불사신의 육체를 가진 '금강불괴(金鋼佛塊)'부터 당시 유행하던 강시, '반로환동(返老還童)'한 절정고수 등… 서너 편에 한번 꼴로 주인공을 위협하는 강적들이 등장했다.

초창기부터 주인공이 어디서 주워온(사연은 기억이 안난다) 갓난아이를 안고 다녔는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소년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주인공 사마귀의 외모나 복장은 70년대 쿵푸영화의 대명사 성룡의 모습과 상당히 흡사했다. 반팔 런닝셔츠(?)같은 상의에 검은색 도복바지, 그리고 고무신을 신었던 것 같다.

물론 장윤식 화백은 48기 시리즈 물 외 다른 작품도 왕성히 발표했다. 그 중에서 인상적인 작품이 '무사 당카이'라는 5권 짜리 작품이었다. 격동의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월나라의 패잔병 당카이가 자신들의 나라를 멸망시킨 강대국 오나라의 무림(이때 무림이 있었는가 싶지만)을 평정해 가는 이야기가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강남쌍괴'라는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제목 그대로 두 명의 주인공이 나오는데 한명은 차가운 '빙백(氷白)' 다른 한명은 뜨거운 '염화(炎火)'를 사용하는 대조적인 캐릭터가 흥미로웠다. 특히 차가운 장력을 쓰는 주인공은 봉두난발의 야성적인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멋지게 느껴져 달력 뒷장에 연필로 따라 그리기도 했다. 그 외 '남도북검(南刀北劍)'이라는 작품도 있었는데 멋진 제목(?)만큼 재미가 따라주지 못해 실망했던 기억도 난다.

완전 잘나가던 천제황 화백

당시 대본소 무협만화계에서 최고의 상종가를 치던 작가를 꼽아보라고 하면 무조건 거론될 이름이 아닌가싶다. 언급한 장태산, 장윤식 두 분에 비해 상당히 과장된 액션이 인상적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대본소 전용 박스 무협지하고 액션이 비슷했다. 장풍 한방에 커다란 바위가 가루가 되고 주연급 고수가 한번 검을 휘두르면 엑스트라 급들은 그야말로 추풍낙엽이었다.

천제황 화백 작품에서는 대표적인 캐릭터가 몇 명 나온다. 항상 주인공으로 나오는 백유향(조선시대 머슴을 연상시키듯 이마에 큰 머리띠를 두른 모습에 흰옷 일색)과 라이벌 격인 천태랑(동글동글한 방울형 댕기머리에 비단옷) 그리고 여주인공인 빙화, 소소 등이 대표적인 캐릭터들로 기억된다. 무협에서 내공, 검강(劍罡), 호신강기(護身罡氣), 신검합일(身劍合一) 등의 단어도 천화백 작품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됐다.

천화백은 다작으로도 유명했다. 당시의 공장 만화 체제를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어떻게 한 달에 수십권씩 작품이 쏟아져 나오는지 신기한 마음뿐이었다. 많이 접했던 만큼 '소림파천무', '남북소림', '소림사와 마교', '천하제일 검과 소림사', '무당과 소림사', '월하마영', '흑풍마영', '천수마영', '고검추풍', '백포사신', '강호대혈풍', '화화태세' 등 많은 작품들이 기억난다.

다양한 색깔의 하승남 화백

당시의 나는 어린 나이였지만 만화가 가지는 최소한의 현실성이라는 것에 상당히 집착하던 시절이 있었다. 천제황 화백을 비롯한 일부 만화가분들께서 지나치게 과장된 액션을 구사 하셨던지라 아무리 어린 나이였지만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어느 정도 있을법 해야 대리만족이 되는데 '이건 정말 불가능해'라고 느껴지는 액션과 내용들이 잦았던 것이 그 이유였다.

놀라운 무공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은 좋지만 장풍 한방에 사방이 쑥대밭이 되고 섬광이 번쩍거리며 고수들이 우르르 쓰러지는 것은 흡사 이후에 본 '드래곤볼'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처음으로 읽었던 하화백의 작품은 '무림문(武林門)'이었다. 상당히 실사적인 그림체에 장풍 같은 것도 일체 나오지 않고 오로지 검과 창, 활 등으로 싸우는 실사액션이었다. 충분히 있을 법한 마치 중국 드라마 같은 극화였다. 모든 것에 있어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처럼 이때의 좋았던 이미지로 말미암아 나의 머릿속에는 하승남하면 그래도 최소한의 현실성을 배려해서 작품을 그리는 만화가라는 인식이 턱하니 박혀버렸던 기억이 난다.

무림세가의 후계자이면서도 무술보다는 글 읽기를 좋아하는 주인공 유세옥은 얼마 후에 있을 운가영이라는 미녀와의 결혼에 가슴이 잔뜩 들떠있었다. 허나 자신들보다 훨씬 강한 무림세가에서 운가영을 아내로 달라고 하고 이도저도 아니면 차라리 자결하라는 통첩을 보낸다. 그쪽 방주의 말인즉슨 '내 아들이 운가영이라는 소저를 좋아하니 마음을 줄 수 없으면 미련이라도 없게 죽여주시오'라는 내용이었다.

결국 여주인공 운가영은 두 가문을 위해 독약을 먹고 자결한다. 하지만 사실은 잠시 동안 숨이 끊어진 듯 보이게 하는 가짜 독약이었다. 어쨌든 상대 무림세가에서는 죽음을 택한 운가영의 행보에 화가나 약속을 깨고 주인공의 가문을 몰살시켜버린다. 사랑하는 여인이 가짜로 죽은 것을 모르는 주인공 유세옥은 멸문지화 직전 충복에 의해 몰래 빼돌려져 뼈를 깎는 아픔을 이겨내며 상승검법을 연마하면서 복수의 행보를 가는 스토리였다. 책표지에 크게 적혔던 '애정무협만화'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주인공이 쓰는 '발도(拔刀)'라는 무공도 인상적이었고 검신 양명이 구사하는 폭풍같은 검법도 신선했다.

초창기 하화백의 화풍이나 전개방식은 내내 이런 식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대공자'를 필두로 점점 과장되기 시작했다. 출판사의 압박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인기를 의식한 변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름대로의 자구책적인 요소도 분명히 내재되어 있었을 것이라 짐작만 하고 있다. 하지만 내내 천제황 화백처럼 오버액션만을 추구하지는 않았고 상당히 다양한 스타일을 반복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업(大業)', '쾌도만리행', '고수는 외로워' 등에서는 여전히 애정 또는 세상살이를 주테마로 해서 실전무협을 그려냈고 앞서 언급한 '대공자'를 비롯 '신검마검', '사대가문', '철혈대공'등에서는 과장된 무협액션을 선보였다. 하 화백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70년대 성룡의 쿵푸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의 만화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소룡 액션의 김철호 화백

김철호 화백은 무협보다는 권투나 탐정만화 전문이었다. 그리고 무협 역시도 냉정히 말하면 권법만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즙포사신'이라는 시리즈물을 발표할 당시는 이 작품보다는 '스콜피오', '슈퍼스타', '챔피언은 내 거야'등의 권투만화가 폭발적 인기를 끌며 김화백을 대표하고 있었다.

'즙포사신'은 당시에 유행하던 쿵푸영화를 닮아있었다. 세로줄 대사에 이분 특유의 스케치식 그림체가 돋보였는데 캐릭터 하나를 그려도 실제 인물을 대입해 초상화같이 그리시던 스타일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배경이나 내용은 청나라 시대로 한가지 이야기를 두권 정도로 나누어 시리즈물로 발표하고는 했다.

특이한 점은 즙포사신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내용은 분명 성룡의 쿵푸영화 판박이인데 딱 한명 주인공만은 영락없는 이소룡이었다는 것이다. 얼굴이며 스타일, 기합소리와 함께 벼락같이 나가는 주먹과 발은 이분이 얼마나 이소룡을 연구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김화백의 이소룡 사랑(?)은 다른 작품을 뒤져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권투는 물론 씨름·축구만화 등에서도 주인공의 상대역 등으로 시도 때도 없이 나오고 격투 신에서도 찢어질 듯한 기합소리와 함께 순간적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액션장면이 자주 발견되고는 했다.

무협만화가이면서 타장르 외도도 즐겼던 황재 화백

80~90년대를 풍미했던 무협만화가들 중 가장 먼저 명성을 날렸던 작가가 아닌가 싶다. 무협뿐 아니라 스포츠·현대활극 등에도 왕성한 활동을 했었던 황재 화백은 80년대만해도 전 장르에 걸쳐 이름이 높았고 전체적인 지명도 역시 매우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주인공인 용태풍의 독특한 코는 황재표 만화(?)의 상징처럼 되어있다. 부드러우면서도 끝 부분을 날카롭게 터치한 코는 명랑만화에서나 쓸 법한 모양으로 극화에서 쓴다는 자체가 아이러니 할 수도 있었다. 어쨌든 다른 만화주인공들과 확실한 구분선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고 이후 이를 모방한 다른 만화가들의 시도가 줄을 이었다. 물론 황재라는 만화가가 워낙 인기가 좋으니 그 후광효과를 노린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대표적 후발주자로는 황성 화백과 오일룡 화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오일룡 화백 같은 경우는 대학교 여름방학 때 만화가 지망생이라는 청운의 꿈을 품고 잠시 가출(?)이라는 극단책을 선택해 화실로 직접 찾아갔던 시절 "황재라는 작가가 워낙 잘 나가는 관계로 그 독특한 코를 일정 부분 모방했다"고 직접 들었던 기억이 난다. 만화가 선생님과의 첫 대면이라는 흥분감에 이야기를 하는 내내 마냥 즐거웠었다.

극화체 그림과는 너무 동떨어진 듯한 이질적인 모양의 코에 대해 안티 팬들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어쨌든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황재라는 작가의 차별성이 더욱 돋보였던게 아닌가싶다. 황재, 황성, 오일룡 3인의 화백은 주인공의 코만 비슷할 뿐 각자의 다른 캐릭터들은 철저한 차별성을 이루었으며 이같은 경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뚜렷해져갔다.

80년대 초반 당시에는 대본소를 가도 장편만화를 보기가 드물었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일본장편만화의 일부를 거의 베끼다시피 해서 탄생한 단편 만화들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길어봤자, 전·후의 2부작 아니면 상·중·하의 3부작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인기 만화가 그룹에 속했던 황 화백은 5권 이상의 장편을 자주 선보였다. 어쩌면 이후에 나올 장편들의 초석을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얼핏 생각해도 20여편이 넘는 것으로 기억되고 있는 '소림사의 영웅들'은 당시 독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자주 다니던 만화 대본소에 동일작품으로 무려 세질이 준비되어있었는데 전부 다 사람의 손을 어찌나 많이 탓던지 너덜너덜해진 모습이 떠오른다. 특히 성룡, 이소룡의 붐을 타고 쿵푸 만화 위주로 무협만화의 스토리가 돌아가던 시점에서 장풍, 강기 등 대형액션(?)이 추가된 그의 스케일 큰 만화들은 책 도둑들의 범행대상 1호로 지목되기도 했다.

80년대 중반 이후 장편 무협만화가 본격적으로 보급됨에 따라 이전의 단편전문만화가(?)들의 모습은 많이 사라져갔다. 여기에 세대교체의 바람을 타고 신성(新星)들이 속속 등장했고 새로운 환경에 무난히 적응한 이재학, 하승남, 장윤식 등의 만화가들이 강세를 보였다. 물론 황재표 만화도 전혀 꿀리지 않는 경쟁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중국 무림의 고수들과 일본낭인들과의 한판승부를 그린 '영웅의 땅', 기억을 상실한 젊은 고수가 바보로서 잠깐을 살아가다 아름다운 처자와 사랑을 나누게 되는 '용의 후예', 소림사의 일상을 세세하게 다뤘던 '사형대형', 무림을 떠난 살수가 어쩔 수 없이 강호로 다시 돌아와 개정대법이라는 내공 인식 방법을 통해 영웅으로 거듭나는 내용의 '쿵후 일진광풍', 화려한 권법만화의 진수 '일월풍' 등 황화백의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기억이 생생할 만큼 생동적이고 인상적인 내용일색이었다.

그중 유년기의 로봇에 대한 환상을 완전히 떨쳐버리게 만든 '쿵후 4대천왕'이라는 작품은 몸서리쳐질 만큼 재미있게 읽었는데 거기에 나왔던 빙백장, 화염장, 달마삼검, 교탈조화 등의 화려한 초식들이 중국무협작가 와룡생(臥龍生)의 '강설현상(絳雪玄霜)'을 모방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후에 큰 실망을 하기도 했다.

뭐니뭐니해도 황재표 만화의 최고 진수는 '쾌걸 흑나비'시리즈다. 한창 잘나갈 때 자신의 작품 한쪽에 '흑나비프로'라는 브랜드까지 걸어놓았던 그는 쾌걸 조로처럼 눈에 나비모양의 가면을 쓰고 일본군과 싸웠던 흑나비라는 애국 캐릭터를 통해 인기만화가로서의 큰 발돋움을 할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평소에는 바보처럼 굴다가 주변 사람들이 위기에 빠지면 나비가면을 쓰고 멋있게 일본군을 물리치는 영웅코드가 허영만 화백의 '각시탈'과 상당부분 닮아있는 것 같다.


태그:#대본소 만화, #무협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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