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어린이날이었다. 1957년 소파 방정환 선생을 비롯한 한국동화작가협의회에서 선정한 어린이 헌장은 1988년 보건복지부에 의해 개정됐는데, 첫 문장이 이렇다.

'어린이는 건전하게 태어나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 속에 자라야 한다.'

마침 어린이날 즈음 영화 <아리아>를 봤다. 이탈리아의 젊은 감독 아시아 이르젠토의 세 번째 연출작인 이 영화는 아홉 살 소녀의 지독한 성장통을 담은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니 아이들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라야 하는가'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외국 나이로 아홉 살이면 우리 나이로는 열 살이나 열한 살쯤이겠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의 여자 아이. 우리 아이들도 초등학교 고학년에 접어들면 사춘기가 시작되고 질풍노도의 시기가 시작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 아이 아리아는 꽤 어려 보인다. 하지만 사춘기 아이들이 해봄 직한 것들을 전부, 혹은 그 이상 다 체험한다.

흡연과 음주는 물론이고, 가출과 방황, 친구들과의 동성애적 우정 관계 등. 하지만 아이의 맑은 눈과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은 것 같은 (우리가 순진한 아이에게서 어쩌면 전혀 기대하지 않을) 음주와 흡연과, 또래들과 어울려 하는 나쁜 짓에 관객으로서 당황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지나치다는, 과하다는 느낌이 관객이 갖게 되는 생각이 아닐까 싶다. 우선 아이의 행동이 지나치고, 그 아이의 부모의 방임과 폭력이 지나치고, 이기주의적인 언니들의 모습도 흔치 않다. 아무리 그래도 이 거친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아홉 살 소녀를 그냥 내팽개칠 수 있는가 하는 공분에 사로잡혀 불편해지고 과하다는 느낌이 생긴다(게다가 나는 아이가 공원에서 노숙을 하거나 어른을 놀리려다 잡히는 장면 등 몇몇 장면에서 아이가 성적 학대를 당하면 어쩌나 노심초사 하면서 보았다).

영화는 현란한 스타일과 색채, 섬세하게 잘 꾸며진 미장센, 장면들과 잘 어울리고 때로는 들뜨게 만드는 좋은 음악들로 뭔가 화려하고 거침없는 젊은 감독의 표현을 드러낸다. 또한 유명한 프랑스 배우인 샤를로뜨 갱스부르의 농익은 연기와 퇴폐미가 영화의 매력을 더한다. 그러나 영화의 그런 장점들에 끌리면서도, 대체 저런 부모나 저런 아이가 어디 있으랴 싶은 생각을 자꾸 하게 만든다.

꽤 잘나가는 피아니스트인 엄마, 유명해지려고 발버둥치는 영화 배우인 아빠, 그리고 각각 엄마와 아빠 편에 붙은 언니 둘. 엄마, 아빠가 헤어지고 나니, 어느 한쪽에서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아 길고양이에게 마음을 의탁하고 두 집을 왔다갔다 하는 아리아. 이렇게 강박적이고 건강하지 않은 정서를 가진 가족이 구성원이라면 아이에겐 어떨까. 아이가 어릴 땐 보호해주는 부모가 세상의 전부나 마찬가지인데, 부모가 불안정하고 아이보다 더 철딱서니 없이 굴고 전혀 의지가 되지 않는다면 어떨까.

아리아의 엄마, 아빠는 아이들 앞에서 상시적으로 가정 폭력을 보여준다. 부부가 치고 받고 싸우는 모습도 적나라하게 드러낼 뿐만 아니라, 기분이 내키면 아이에게도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 또한 엄마는 수시로 바뀌는 남자 친구를 집으로 불러들여 아이들이 있건 말건 애정 표시를 한다. 도대체 이런 부모들은 왜 자식을 키우는 걸까.

여성가족부가 2013년 실시한 우리나라의 가정 폭력 실태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46.1%가 지난 1년간 자녀 폭력을 행사했고, 응답자의 45.5%가 지난 1년간 부부 폭력의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영화는 시각적으로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에 가정 폭력이 과하다고 느껴지지만, 우리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렇게 가정 폭력의 비율이 높다. 그렇다면 영화의 상황은 그리 비현실적이지 않다.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며 어린 아이들이 느끼는 세상의 부당함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고 한다. 그들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끊임없이 부당함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과 관심이 늘 부족한 아홉 살 소녀는 건물 아래로 몸을 던진다. 소녀의 행동으로 그 아이가 겪는 부당함을 세상에 알리게 됐을까? 아이가 겪는 지독한 성장통을 보며, 어른으로서 어깨가 무겁다.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안전하며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책임은 어른들에게 있으니까. 어린이 헌장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어린이는 우리의 내일이며 소망이다. 나라의 앞날을 짊어질 한국인으로, 인류의 평화에 이지 할 수 있는 세계인으로 자라야 한다.'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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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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