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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태곳적부터 이어진 정자전쟁입니다.
 성은 태곳적부터 이어진 정자전쟁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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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원초적이고 조용한 전쟁은 바로 이 전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들이 싸우는 전쟁터는 생명이 시작되는 원점이면서도 가장 신성한 곳입니다. 그들의 싸움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습니다.

총성도 들리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아우성도 들리지 않지만 어찌 보면 가장 치열하고 적극적인 전쟁. 최첨단 무기는커녕 어떤 재래식 무기도 없는 원초적 싸움이지만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 태곳적부터 스스로 진화하고 또 진화하면서 벌이는 집요한 전쟁입니다.

가장 원초적이고 조용한 전쟁, 가장 신성한 곳에서 아무런 소리 없이 치열하게 치러지는 전쟁은 종족 번식을 위한 전쟁, 바로 '정자전쟁'입니다.

성의 기원·진화과정 밝힌 <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

<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 (지은이 존 롱 / 옮긴이 안병찬 / 펴낸곳 (주)행성비 / 2015년 4월 17일 / 값 1만 3800원)
 <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 (지은이 존 롱 / 옮긴이 안병찬 / 펴낸곳 (주)행성비 / 2015년 4월 17일 / 값 1만 3800원)
ⓒ (주)행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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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지은이 존 롱, 옮긴이 안병찬, 펴낸곳 (주)행성비)는 고생물학자인 저자 존 롱이 3억8000만 년 전의 화석의 '성행위 장면'을 시발점으로 삼아 성(性)의 기원을 추론하고, 성(性)이 진화한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냅니다.

책은 전체 4부(PART), 'PART 1 생물학 최대의 미스터리', 'PART 2 태초에 성이 있었다', 'PART 3 성의 기원을 찾아서', 'PART 4 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로 구성돼 있습니다.

'PART 1 생물학 최대의 미스터리'에서는 페니스의 길이가 몸 길이만큼이나 되는 수컷 아르헨티나 오리(Oxyura Vittata), 발기시 몸 밖으로 돌출되는 부분이 2.5m나 되는 대왕고래, 길이 34.3cm 둘레 157cm나 페니스를 가진 남성이 있었다는 내용이 소개됩니다.

저자는 고생물학자입니다. 화석을 찾아 나서는 탐사, 찾아낸 화석을 분석하기 위한 추적과 추론(상상), 찾아낸 화석을 입증하고 논증해 나가는 과정은 지식을 총 합산한 연구과정이자 집요하리만큼 끈질긴 고군분투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입니다.

저자가 3억8000만 년 전의 화석을 발견하고, 그 화석에서 성행위 장면을 찾아내 그 화석을 과학적으로 논증해나가는 단계별 과정은 추리와 현대과학을 넘나드는 스릴을 담고 있습니다.

태곳적부터 이어온 기기묘묘한 성

다른 연구결과 또한 마찬가지겠지만 고고학자들이 밝혀내는 결과물들이야 말로 시공을 초월하는 역사의식과 해박한 과학지식을 전제로 한 연구이자 불굴의 인내가 골격이 돼 빚어지는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갑자기 개빈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그는 맥주 몇 모금을 홀짝이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가끔씩 혼잣말을 했다. 그러더니 이윽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우린 오늘, 역사상 처음으로 성행위 장면이 담긴 화석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화석에 성행위 장면이 담겨 있다고?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본문 51쪽)

성은 원초적 본능이자 소리 없는 전쟁입니다.
 성은 원초적 본능이자 소리 없는 전쟁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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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간의 섹스와 교음, 암컷과 수컷 사이의 교미라는 측면으로만 생각하는 성은 말초신경과 관음증만을 자극합니다. 하지만 성 자체는 암컷과 수컷을 가르는 구분을 넘어 종족 유지를 위한 원초적 수단이자 종족 번식을 위한 최후의 수단입니다.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종들을 모두 합치면 무려 2000만~4500만 종에 이른다고 합니다. 공식적으로 분류되는 게 5% 미만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그 수는 엄청납니다.

이름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짝짓기를 하는 방법은 물론 성기 생김새, 수정되고 출산하는 과정도 제각기 다를 겁니다. 이들 각각의 종들,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곤충이나 동물들 중에도 성개념이나 성행위 자체가 깜짝 놀랄 만큼 특이한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곤충이나 거미와 같은 졸지동물들의 성만큼 기이하고, 야수적이고 뒤틀린 것도 없다. 예컨대 빈대의 경우, 암컷의 몸을 기병도(saber, 騎兵刀) 같은 페니스로 난자하며 잔인하게 겁탈한다. 수컷 경쟁자의 고환에 자신의 정액을 이식하기 위해 동성강간(homosexual rape)을 마다하지 않는 곤충도 있다. 포유류에서 나타나는 최악의 도착적(倒錯的) 행동도 절지동물의 성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 뿐이다."(본문 137쪽)

수컷 개구리들이 암컷을 뒤에서 꼭 껴안는 후배위 자세를 취하는 건 페니스를 삽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암컷과 몸을 밀착시킴으로써 생식기 맞대기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수컷 개구리들이 암컷을 뒤에서 꼭 껴안는 후배위 자세를 취하는 건 페니스를 삽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암컷과 몸을 밀착시킴으로써 생식기 맞대기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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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많은 수컷 개구리들은 암컷을 뒤에서 꼭 껴안는 후배위 자세를 취하는데, 이것은 페니스를 삽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암컷과 몸을 밀착시킴으로써 생식기 맞대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 경우 수컷은 암컷의 생식기에 정자를 직접 뿜어 넣거나, 암컷의 생식기에서 흘러나온 알에 정자를 뿌려 수정시킨다."(본문 155쪽)

인간 사회에서도 정자경쟁은 벌어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합니다. 아주 다행히도 이런 생식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건 생리적 요인(페니스의 형태 등)보다는 행동적 요인(파트너를 대하는 태도)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고 합니다.

섹시한 책, 흥미로운 책

알면 알수록 기기묘묘한 게 성입니다.
 알면 알수록 기기묘묘한 게 성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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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 성조차도 초월하는 게 인간이기에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합니다. 원초적 성기능이 우월함보다 사회적 문화(매너와 배려 등)가 소위 '섹시함'을 결정짓는 요소임을 안다면 누구든 섹시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은 성관계를 통칭하는 몇몇 표현들의 과학적 근거와 유래는 물론 오르가즘의 실체 등을 설명합니다. 또 하나, 이 책은 남성 성기의 귀두가 또렷한 이유를 밝혀놨는데 이는 생식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진화라고 소개합니다.

책을 처음 펼칠 때는 페니스 크기 등이 노골적으로 소개돼 있어 낯이 붉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읽다 보면 흥미롭습니다. 성지식이 하나하나 쌓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동안 봤던 책 중에서 가장 섹시한 책을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이 책을 꼽을 겁니다. 말초신경을 자극할 만한 그림은 없습니다. 관음증을 출렁이게 할 표현은 한 줄도 없습니다. 하지만 가장 원초적인 이야기를 다루기에 가장 섹시하고, 가장 섹시한 이야기이기에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 (지은이 존 롱 / 옮긴이 안병찬 / 펴낸곳 (주)행성비 / 2015년 4월 17일 / 값 1만 3800원)



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 - 성의 기원을 밝히는 발칙한 진화 이야기

존 롱 지음, 양병찬 옮김, 행성B(행성비)(2015)


태그:#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 #안병찬, #(주)행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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